교류형 게임을 만들기 위한 메모.

정리되지 않은 글이란 걸 미리 밝힌다.

흔히 말하는 정가게임(중가 및 염가가 아니라)을 머릿속에 둔 메모다.


BGM 종류

(보컬곡류를 빼고) 23~25개쯤.

일상
시간대 (아침/낮/저녁/밤)
비밀스런 장면
시리어스
개그?

포즈CG 표정을 위한 자료 (고스트의 쉘 규격을 참고)

00 일반
01 민망해함
02 놀람
03 불안
04 침울
05 웃음
06 눈을 감음
07 화냄
08 비웃음 (캐릭터와 안 맞는다면 쓴웃음으로 바꿀 수 있음)
09 민망해하면서 화냄

시스템 관련

이 글 참고.

고스트 미니게임 실황용(?) 기획자료.

진짜로 할지 할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일단 머릿속에 있는 걸 정리함.

하려고 마음먹은 까닭.

트윗에 고스트에 딸려오는 미니게임을 하나씩 올리다가, 오늘 우연히 뭘 보고 ‘이거 유튜브 실황영상에 꽤 걸맞는 소재 아닌가?’란 생각을 했으므로.

어떻게 하는가.

트윗한 것처럼 고스트와 미니게임을 하는 걸 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림. 플레이시간은 짧은 게 대다수이므로 편집은 그다지 안 해도 될 듯. 고스트의 대사(토크)는 보이스툴로 음성을 붙이는 게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하고 있음. 물론 이런 실황영상은 하는 사람의 반응 및 설명, 그리고 비명(?!)이 있어야 재미있는 게 사실이므로 실제 음성도 집어넣는 게…좋을 것이다(발음에 자신이 없음/녹음한 자기 목소리 듣는 게 민망한 사람).

망설이는 까닭.

  1. 애초에 유튜브용 영상을 만든 적도 올린 적도 없음. 고스트는 화면 녹화할 때 특수설정을 해야 제대로 될 때가 있어서 불안함.
  2. 음성을 녹음할 기기가 없음. 스마트폰으로 녹음하는 기능 어디 없을까…
  3. 위에서 말한 대로, 이걸 쓰는 사람은 녹음한 자기 목소리(나 마이크로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게 민망함. 어차피 다루는 고스트는 전부 옆동네산이므로 외국어로 말해볼까 생각하고 있음(?!). 물론 뒷일은 전혀 생각지 않고 이런 말을 하는 거지만…
  4. 이게 사실 가장 진지한 고민이지만, 저작권에 관한 걸 특히 망설이고 있다. 사실 이건 지금 고스트의 스크린샷을 트윗할 때도 느끼고 있는 거지만…
    개인이 만든 작품은 다 그렇지만, ‘이걸 올리면 안 되지 않을까’라 여기게 될 때가 많다. 물론 애드센스를 쓰는 월드는 말할 것도 없지만(일단 내 나름대로 대책은 하고 있는데, 그래도 걱정될 때가 꽤 있다), 아무리 트위터라 해도 스크린샷을 올리는 걸 안 좋아하는 만든이가 있으니까. 예를 들어 무료게임 중에선 중요장면이나 모든 장면의 스크린샷을 웹에 올리지 못하게 하는 만든이도 있다(앞서 나온 중요장면은 실제로 올릴 때 조심하는 게 좋은 대목이긴 하지만).
    고스트 역시 이런 저작권 언급 때 ‘웹에 스크린샷을 올릴 수 있는지 어떤지’를 말할 때가 많은데, 대개 괜찮은 편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앞서 말한 무료게임처럼 ‘중요한 장면을 올릴 수 있는가 없는가’ 역시 마찬가지다(미니게임 실황만이라면 중요한 장면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건 고스트 스크린샷을 트윗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반쯤 시험삼아 스크린샷을 트윗하고 있지만 ‘이걸 올리는 건 관두는 게 좋겠다’라 여기는 건 안 올리려 하고 있다. 중요장면도 그렇지만, 남한테 말하면, 다른 데에 올리면 어쩐지 안 될 것만 같은 건.
    굳이 이런 게 아니라도 민감한 문제인 건 틀림없으므로 고민하고 있음.
  5. 이건 이거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 만약 진짜 하게 된다면 자기 목소리도 들어가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하는데(위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사는 집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물론 빌라이므로 다른 사람들 생각도 해야겠지만, 그것보다 집안, 특히 동생놈이 문제. 안 그래도 요즘 민감해서 잘못 큰소리를 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손을 꼬집힐지도 모르고, 잘못하면 물릴지도…
    그럼 동생놈이 요즘 자주 자는 밤에 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땐 부모님이 주무시므로 함부로 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 때 큰소리를 내면 동생놈이 일어날지도 모르고…결국 괜찮은 시간대가 없다.
    만약 이걸 어떻게 한다고 치면 따로 나와사는 게 가장 좋으리라 생각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어떻게 될 거같지 않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건 이거대로 중요한 문제…

결론

실황 자체와 아무 상관은 없지만, 남의 컨텐츠로 뭘 하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무튼 일단 좀 생각해보려 함.

고스트와 게임

마지막 업데이트: 19년 01월 31일

고스트에 미니게임이 붙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된 일이다. 처음에는 미니게임이란 말처럼 가벼운 요소가 많았지만(물론 미궁탐험처럼 꽤 복잡한 요소를 구현한 고스트도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본격 RPG에 가까운(안) 미니게임, 심지어 ‘게임이 주된 요소이며 고스트는 덤’처럼 느껴지는 고스트도 생겨났다.

이러한 미니게임은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고스트(캐릭터)의 묘사를 맡고있다는 점, 교류요소를 두텁게 한다는 점에서도 한데 모아볼 가치가 있다. 고스트의 미니게임에 테이블게임이 특히 눈에 띄는 것도 어쩌면 그러한 까닭일지 모른다.

나 자신이 알아보기 쉽게 이러한 미니게임을 한데모아 정리하고 싶었던 고로, 트윗한 #고스트와_게임 태그를 모아 글로 다듬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모두 정리하려 했지만, 미니게임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거나 나한테 없는 고스트의 미니게임은 담지 못했다.

전부터 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한 번 이런 식으로 해보려 마음먹었다. 시간이 되는 대로 하나씩 집어넣을 생각.

각 고스트에 들어간 미니게임은 물론 다른 고스트 역시 가지고 있을 수 있다(기능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여기서 드는 건 어디까지나 예시라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이 글 말고도 참고로 하면 좋을 링크 : Ghost TOWN의 ミニゲーム  태그

이 글은 앞으로도 여러 번 업데이트할 생각이다.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걷게 된다는 것.

이 글은 어제 동생놈한테 엄청 휘둘린 뒤 생각했던 걸 정리한 것이다.


 

어떤 특수한 상황에 있을 때(혹은 특수한 사정을 지닌 이를 가까이 두었을 때), 큰 벽으로 다가오는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눈앞에 닥친 상황을 견디기 어려운 것. 다른 하나는 자기의 동반자가 그런 상황에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에 관한 두려움.

바로 어제 겪은 일로 생각하게 된 이야기인데, 이건 굳이 우리 집안만의 사정이 아니라, 좀 더 넓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아픈 이가 있는 가족이나, 부위와 상관없이 장애를 지닌 이가 있는 가족이나, 그밖에도 ‘별난’ 사정을 지닌 가족 모두한테 대략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다.

누구나 처음 어떤 길로 들어서려 할 땐 이상을 지닌다. 그 길이 ‘보통 사람이 걷는 길’이 아니면 아닐수록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쉽게만 느껴졌던 이상은, 위에서 말한 큰 벽에 부닥치고 만다. 내가 현실을 몰랐던 걸까. 이 이상은 이루지 못할 것이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어려운 길을 서로 각오했다 한들, 실제로 겪어보면 자기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을 때가 많다. 때로는 ‘당사자가 아닌데도’ 마음이 무너질 만큼 힘들 때도 있다. 물론 자기가 힘든 것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같이 있는 ‘상대방’, 즉 가족이 지치면 어떡하지, 란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도 믿고 서로 보듬어줘야하는 동반자(파트너)를 믿기 어려워진다는 것.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불안해야 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이건 ‘내가 견디기 어려운’ 것보다 더 힘들 때도 있다. ‘내가 아닌 이’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까.

실제로 겪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거칠다는 것. 이상과 현실의 차이. 사람들이 ‘현실’이란 말에 담는 게 모두 진짜 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겪은 사람이 볼 때 지금 한 말은 실제 현실과 꽤 가깝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한다. 물론 나도 사회생활에 가까운 현실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사실 내가 이런 말을 하지만, 동생놈의 누나인 나보단 부모님, 즉 아버지와 엄마가 그걸 더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내가 여기에 적은 것보다 훨씬. 여기에 적는 게 망설여지는 것도 있을 만큼 부모님이 걸어온 길은 가파랐다. 심지어 처음부터 각오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떠밀려서’ 걷게 된 길이었다.

그런 길을 스스로 걸으려는 이한테 ‘현실을 알라’고 하는 말은, 그걸 입에 담은 이가 무슨 뜻으로 그랬든 대략 이런 걸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현실’이란 말에 담는 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위에서 말한 것 역시 그런 ‘현실’ 중 하나라고.

그렇기 때문에, ‘그 힘든 길을 넘어선’ 이는 그 길이 어떤 길이든 속으로 무척 존경하곤 한다. 비록 다른 길이라 한들, 그 길이 얼마나 가파른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물론, 위에서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똑똑히 알면서도 그리로 걸어들어가는 이들 역시 응원한다.

비주류의 길을 걷는다는 것. ‘평범함’과 동떨어진 길을 걷는다는 것. 그게 어떤 길이라 한들, 걷기로 마음먹는 것도, 걸으려는 마음을 먹으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걸 넘어선 이들이 눈부시게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난 속으로 몇 번이고 그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누군가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까닭은.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딱 25일(12월 시작부터 해서)이란 게 가끔 무척 아쉽다. 그 분위기를 딱 25일만 즐길 수 있다니. 크리스마스만큼 겨울이다 싶은 때가 없는데, 겨울이 시작하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뒤 겨울이 한참 남았는데 갑자기 사라진다. 게다가 그 다음은 새해…

25일이 무척 짧다 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처럼 크리스마스인데 좀 더 맛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루하루 가는 게 묘하게 아쉬운 그런 느낌.

이것과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자면, 편히 지낼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단 건 혼자있기 싫단 게 아니다. 오랫동안 혼자서 이것저것 한 고로 혼자서 있을 때도 무척 편함. 동생놈 덕분에 특히 더더욱 그랬다. 혼자서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이 없으면 오히려 적응 안 될 듯.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서 지내왔으므로 딱히 꼭 누군가와 알고지내야 한다는 건 아닌데, 모처럼 있을지도 모르는 좋은 인연을 옛날에 겪은 일 때문에 괜히 차버리는 건 그다지 하고싶지 않아서다. 딱히 누구랑 가까이 지내는 걸 싫어하는 성격도 아니고…

다른 이들과 어울릴 일이 있을 때도, 남은 자기를 다 보여주는 거 같은데 나는 그러는 게 무척 어려워서 결국 벽을 느끼고 만 적이 몇 번 있다. 다 보이고 싶단 말은 아니지만, 자기가 마음편할 만큼은 보이며 지낼 누군가가 있음 좋겠단 생각을 함.

물론 혼자 이것저것 해왔으므로 남의 생각에 휘둘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좋은 점도 여럿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한테 솔직해지는 건 아직도 망설여지는 데가 있다. 어떤 무리와 친해지면 그 무리의 주장에 따라가야 하는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뭐 그런 거.

지금 생각해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생각이긴 하지만. 혼자 지낸 덕분에 갈라파고스화가 심해져서 그런 두려움도 있음. 자기가 화장하는 걸 안 좋아하는 여성은 엄청 희한하게 보일 게 틀림없고…물론 원래 희한한 사람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로서, 게임같은 건 나 혼자 만들 수 없다. 뭔가 재밌는 걸 하고 싶을 때, 나 혼자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힘을 빌려야 할 때는 여럿 있다. 따라서 누군가 믿고 같이 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란 생각은 한다. 뜻이 맞는 이와 희한한 걸 하고 싶음.

피할 수 없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

그저 속으로만 생각하는 거라면 망설일 건 어디에도 없다. 자기가 속으로 하는 생각을 자기 멋대로 서술하는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남한테 어떻게 보일지 모른다는 걱정도, 그 밖의 여러가지 생각도, ‘자기 생각’에서 끝낸다면 고민할 건 결코 없다.

그게 ‘자기 생각’에서 끝나는 이야기라면.

그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기 앞날’을 만들어가게 될, ‘자기자신을 만들어나가는 데 피할 수 없는’ 존재란 걸 알게 되면, 여기서 끝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자기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피할 수 없단 걸 안다면, 자기가 하려는 걸 ‘남한테 보여야’ 한다는 걸 알게 되니까.

남들이 보이는 곳에 글을 쓴다는 것도 대략 그렇다. 실제로 얼마나 남이 봤는가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을 만들었단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생각 중 하나라면 그럴 가능성을 만들 까닭이 없다. 자기가 괜히 실수하는 것보단 그냥 멀리서 남의 생각을 보는 게 더 안전하다.

하지만 자기가 하는 생각이 ‘자기를 만드는 데 피해갈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언젠가는 그 생각을 남한테 보이는 식으로 내보여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무리 남한테 보이는 게 무섭다 한들, 이걸 더 이상 미룰 수도, 피할 수도 없단 걸 알게 된다.

월드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것도, 작품을 하는 것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없는 걸 하는 것도, 무섭지만 조금씩 뭔가 해보는 것도, 대략 이러한 까닭이다.
피할 수 없는 것과 맞선다는 건 솔직히 꽤 무섭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 대단한 걸 하고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키라판에 나오는 참 좋은 표정(?) 정리

지금까지도 가끔 보일 때마다 트윗했지만, 원작을 잘 살린 재밌는 표정, 아무튼 인상깊었던 표정들을 정리했다. 규칙성은 없음. 작품 및 캐릭터가 늘어남에 따라 새로 뭔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별 상관은 없지만, 키라판 관련으로 찍은 스크린샷 중 ‘어쩐지 먹히는(?!)’ 것들도 뒤에 정리했다. 이런 걸 트윗으로 흘려보내기만 하는 건 아까우니까.

(12/13 덧붙임) 핸드폰으로 직접 올렸더니 이미지 크기가 엄청 불어난 관계로 몇몇 이미지를 지우거나 크기를 바꿨다.

 

이런 식으로 자기 생각을 쓰는 까닭.

자기가 하고싶은 걸 이런 식으로 적으면 좋은 게, 나 자신이 ‘이걸 하고싶다’는 걸 똑똑히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 마음이라고 해도 이렇게 안 쓰면 모르고 넘어갈 때가 있다.

하나 더 꼽자면 자기가 뭘 하는지 알리는 것. 내가 이런 걸 하고싶어하는 사람이란 걸 알려야 힘이 되어줄 이가 나타날 테니까. 지금 내 주위엔 그런 이가 없으므로 이렇게 씨를 뿌려놓는 수밖에 없다. 즉 복선.

라고 한들 남한테 자기 얘기하는 게 몸에 안 익은 사람이라서 이런 걸 쓸 때마다 엄청 긴장하지만…그래도 이런 걸 하고싶단 말을 안 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게되고 만다.

소셜게임과 과금(뽑기요소)의 존재의의

예전에 소셜게임에 엄청 과금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건 좀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몇 번 비슷한 말을 트윗하기도 했지만), 요즘, 그 과금이 ‘캐릭터를 사는’ 것이란 걸 깨달은 뒤 전과 다른 눈길로 바라보게 되었다. 불법복제같은 까닭도 있지만.

여기서 과금이라 하는 건 아이템도 있겠지만, 대개 ‘자기가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소셜게임에 관해 이것저것 보면서, 사람들이 뽑기에서 바라는 건(무기가 아니라) 캐릭터, 그리고 ‘자기가 조작할 수 있는’ 캐릭터란 걸 깨달았다. 서포트가 아니라 플레이어 캐릭터.

이러한 까닭도 있어서, 최고 레어리티(별 다섯 개나 SSR이나 그런 거)를 지닌 캐릭터는 오리지널 그림이 따라오기도 하고, 전용 에피소드가 붙어오기도 한다. 이 역시 ‘캐릭터한테 과금한다’는 증거 중 하나. 이런 요소가 없으면 뽑기에 매달릴 까닭이 많이 줄어드는 듯하다.

물론 지금 이 시대에, 뽑기요소를 넣는 거 말고 가장 효율성있는 수익구조를 만들기 어려우므로 이러한 요소가 돋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결국 지금 생각해보면 작품 자체가 아니라 ‘캐릭터’한테 과금한다는 방식이 지금을 사는 이들한테 와닿아서가 아닐까, 란 생각을 한다.

게임 자체는 기본무료. 스마트폰(및 다른 휴대기기)으로 어디에서나 편한 자세로 짬짬이 플레이할 수 있음. 이러한 기본무료 구조는 가장 뛰어난 광고라고도 할 수 있음. 수익구조는 ‘캐릭터를 사게’ 만드는 방식으로 만듦. 물론 온라인게임 특유의 수익구조도 있지만.

전에 다른 이가 했던 말으로 소셜게임을 생각해보면 대략 그런 느낌이다. 이 역시 시대의 흐름인 거 같음. 게임에 몰두하는 기준이 온갖 곡예플레이를 하던 것에서 이벤트 상위에 자리잡으려는 마음가짐으로 바뀐 것처럼, 게임이 더 이상 ‘게임을 잘하는’ 이들만의 것이 아니게 된 것처럼.

사실 여기까지 생각한 다음에, 왜 자기가 소셜게임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지(지금도 엄청 과금할 생각까진 없다)도 같이 깨달았다. 애초에 난 ‘캐릭터를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캐릭터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소셜게임보다 더 효율성있는 매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뭔지 이걸 보는 분들한테 말할 것까지도 없을 거 같지만, 고스트나 KR계(지금은 키라판이 있지만)가 그러하다. 딱히 과금을 안 해도 폭넓은 캐릭터들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단 걸 아는 입장에서, 캐릭터한테 엄청 과금하는 매력이 좀 안 와닿았다. 물론 뽑기로 나오면 좋지만.

앞으로 lab이 나아가려는 길. (1)

 

우리말로 우리나라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몇 년이 넘게 하면서 특히 느끼게 되는 건, 누군가의 말대로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는 것이다. 이건 우리나라에서 나온 가소설을 보면 알기 쉬울지도 모른다.

‘지금 와닿는, 하고싶은 상상요소’를 작품에 집어넣고 싶어도, 그게 우리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란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하기 무척 어렵다는 말이다. 마치 남의 나라 꽃을 그대로 우리나라 꽃밭에 심은 느낌.

이런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결국 이러한 ‘옆동네에서 흔히 쓰이는, 지금 와닿는 상상요소’를 쓰려면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한테 그러한 요소는 뭘 뜻하는가, 라는 해석을.

자기한테 그 요소가 와닿는 까닭, 특히 ‘지금’ 와닿는다고 느낀 까닭. 그 밖에도 여러가지. 처음부터 뿌리내린 문화를 다루는 게 아니기 떄문에 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말하면 대략 짐작할 수 있겠지만, 온갖 시행착오 끝에 내가 하는 작품들도 이러한 점을 의식하고 있다. 그와 함께 ‘처음부터 그러한 문화가 쌓여온 옆동네’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도 하고 있음.

‘처음부터 하나하나씩 그러한 문화가 뿌리내린 옆동네’와 ‘그러한 문화가 갑자기 들어오게 된, 하지만 ‘지금 와닿는’ 요소로 받아들이는’ 우리나라. 밑바탕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떠올리는 과정은 달라진다.

그런 점을 스스로 느끼면서 익혀가고 싶음. 따라서 여전히 시행착오가 이어지겠지만, 이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써나가려 한다. 원래 그러고 있었지만.

요즘 다중언어 트윗이 되었으면(각 트윗마다 지원하는 언어를 바꿀 수 있는 식으로) 하고 바랄 떄가 가끔 있다. 정말 그런 기능이 생긴다 한들 번거로워서 모든 트윗을 다중언어로 하진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