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돌을 던지는 라이프워크

요즘 드디어 깨달은 게 있어서, 여기에도 정리한다.

6월 뒤로 줄곧 생각하다가, 요즘 느끼는 게 있다. 나는 두 가지 까닭이 겹쳐서, 세상 및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잘 알 수 없었다. 하나는 보통이 아닌 환경(자폐 동생)에서 자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시절, 두 번이나 이상한 애 취급을 받은 것이었다.

만약 하나씩만 겪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둘을 모두 겪었기 때문에 나는 세상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으면 좋을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상식이라 여기는 행동’을 했고, 누군가의 말에 기댄 채 ‘반박당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 오랫동안 자기자신을 돌봤던 건 그러한 까닭이다. 이런 식으로 ‘남들이 볼 때 괜찮아보이는 행동’만 하면,언젠가 자기가 무너질 거 같았다. 그래서 살기 위해 ‘자기축’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끝에, 자기한테 왜 강박증이 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그걸 깨달은 게 10년을 훌쩍 넘은 지금이란 건 참 우스운 이야기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았단 건 틀림없이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다(종교와는 아무 상관없지만). 요즘 나는, 자기 생각을 돌로 만들어 물가에 던진 뒤, 그 반응으로 다른 이들이 보는 세상을 깨닫는 게 라이프워크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가에 돌을 던져 어떤 게 돌아올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몰랐던 ‘진짜’ 세상을 알고, 내가 믿고 있던 ‘거짓된 사실’을 깨뜨릴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즐겁다. 너무 늦게 이런 생각에 다다른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이걸 알기 위해 헤맸던 거라 믿고 있다.

물론 여기서 생각이란, ‘상상’. 즉 Lirues Lab.을 말한다. 아직 던질 돌은 많이 남아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억압과 열등감을 푸는 데 도움을 받은 책

전에 ‘내가 억압 및 열등감을 푼 방법’이란 이름으로 글을 세 점 이 카테고리에 올린 바 있는데, 여러 생각 끝에 일단 글을 모두 내리기로 했다. 거기에 적힌 내 경험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아무래도 다른 분의 방법을 적은 거다 보니 저작권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생각해서였다.

나 자신은 어디까지나 ‘이런 방법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쓴 거였지만, 애드센스를 쓰고 있는 이상 다른 이가 무료로 공개한 방법(및 책으로 낸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었기에 글은 내렸지만, 광고를 뺀 다른 방법으로라도 공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중이다. 어떤 식으로 공개할지에 관해선 조금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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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5년 전, ‘이건 나 자신이 아니다’라고 잘못 믿게 된 까닭

오늘은 조금 짧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참고로 이 글은 전에 썼던 ‘내가 자신을 잃어버렸던 순간‘과 관련이 있다. 오늘 갑자기 여기에 관해 뭔가 떠올랐기에, 정리하는 차원에서 잠깐 적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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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싶은 책만 읽는 즐거움 – 책꽃이에 있는 책만 봐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전집을 몇 질 사 주셔서 책읽는 게 노는 것만큼이나 편했고, 지금도 사고싶은 책을 고르거나 사서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좋아하지, 모든 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읽고 싶은’, ‘관심이 있는’ 책만 갖고 싶지,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고싶은 건 아니다. 지금 관심없는 책을 읽어봤자 시간만 날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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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안 건강한’ 걸 자랑한다 – 건강과 의욕의 관계

우리는 가끔 다른 이가 자기가 ‘건강하지 못한’ 것, 즉 막사는 걸 자랑하는 걸 듣게 된다. 오늘 몇 시간밖에 못 잤다, 운동한 적도 별로 없다, 와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어쩐지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왜 사람들은 자기가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는’ 걸 자랑하는 게 아니라, ‘잘 못 자고 건강이 나쁜’ 걸 자랑하려 드는 걸까?

‘하기싫은 일’을 하니까 건강하지 않은 걸 핑계삼아 땡땡이치려 한다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잘 보면,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단 걸 알게 된다. 즉, 자기가 안 건강한 걸 자랑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고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자기가 하고싶은 일만 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건강하거나 즐겁단 걸 자랑한다. 또한 억지로 남의 말에 따라 사는 사람과 다르게, 자기 몸 건강에도 무척 신경쓰며 살게 된다.

그 까닭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은, 몸이 안 좋아지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몸이 안 좋으면 하고싶은 일도 마음껏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기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자기가 하고싶은 일만 골라서 하는 사람은 여러 모로 건강에 신경쓸 수밖에 없다. 잠도 제때 자고, 음식도 좋은 걸로 먹으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만 입에 담게 된다. 어차피 안 좋은 얘길 해봤자 도움이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 자기가 즐거웠던 일,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주로 입에 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와 정반대인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자기가 하기싫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거야 건강이 나쁘단 걸 자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할 말이 그것밖에 없을 거고, 무엇보다 ‘건강이 나빠지면 하기 싫은 걸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즉, 다른 이들한테 이상하게 안 보인 채 땡땡이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 삶이 재미없는 걸 건강하지 못한 삶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게 된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정리하자면, 사람은 결국 자기가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살 때 가장 즐거우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만약 즐겁게 사고 싶은 사람이라면, 될 수 있는 대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사람, 즉 안 건강한 걸 자랑하기만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게 좋다. 그런 사람과 죽 만나다 보면 자기한테도 그런 ‘건강하지 못한’ 기운이 옮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즐겁게 살고 싶을 땐, 될 수 있는 대로 자기가 하고싶은 일만 골라서 하는 게 좋다. 즉, 하기싫은 일은 될 수 있는 대로 안 하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단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식으로 하기싫은 건 아예 안 하는 게 훨씬 더 살기 편한 법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이렇게 해보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운이 나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혼자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흔히 인터넷에선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지내거나 친구가 없는 걸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곤 한다. 그런데 이런 글들을 죽 보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대체 왜 ‘혼자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걸까? 다른 이들이 손가락질하니까? 그런 사람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니까? 아니면 자기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오래 전부터 여러 모로 혼자있는 데 익숙해져서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내 입장에서 보면, 혼자되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 따라선 ‘자기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혼자있는’ 것 역시 다른 이들과 있는 것만큼 소중할 수 있다. 나 역시 살아온 환경 덕분에 ‘혼자되는’ 게 전혀 이상하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다.

그럼, 아래부터는 여기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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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한 가정’, 그리고 ‘유독한 부모’에 관한 이야기

오늘은 ‘상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유독한 가정’, 그리고 ‘유독한 부모’에 관한 얘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아마 이 말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보다 더 많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무엇보다도 친근한 개념일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 주위엔 유독한 가정, 그리고 유독한 부모가 무척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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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

흔히,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취미)을 직업으로 가지면 여러 모로 고생한다는 말을 한다. 즉 좋아하는 게 직업이 된다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걸 한다면, 그걸 어떤 식으로 하든 지겨울 일이 전혀 없다.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두근거려서, 괴로운 마음조차 가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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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아가 무너졌던 순간

나는 5년 전, 자아가 크게 무너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5년 반이란 긴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자아를 되찾은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스물한 살 후반까지, 자기가 자아를 똑똑히 갖고있다 믿고 있었다. 자기는 무척 또렷한 존재이며, 앞으로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큰 착각일 뿐이었다.

2009년 후반(대학교 2학년 때), 나는 제대로 ‘상상꾼’이 되기 위해 작품을 쓰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는 자기 자신이 무척 불안해졌다. 과연 자기 상상을 누군가 받아줄까, 란 생각을 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자아를 아주 잃어버렸다.

그 전에도 좋아하던 건 있었지만, 그 사건 뒤로 약 5년이 넘게 나는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기한테 자신도 없었고, 확신도 없었다. 지금껏 지니고 있던 자아가 남의 상식이나 ‘부모님이 바라는 삶’에 의존한 거짓이었단 걸 깨달은 건 그 일로부터 5년 뒤였다. 그러니까 요즘 들어와서 깨닫게 됐단 말이다.

결국 나는 자기가 판단해서 자기가 결정한 것 하나 없이, 남들이 ‘그게 현실이야’라고 말하는 거나 ‘그게 상식이야’라고 말하는 걸 진짜라고 받아들였단 말이다. 실제로 고등학교 및 대학교 2학년 때까지, 나는 상상을 빼고 대개 ‘현실’이라 믿었던 데에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교과서에 그렇다 나와있으면 거기에 따라야한다 믿었고, 어른들이 ‘이게 현실이야’라고 말하면 거기에 따라서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물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실이란 결국 우리가 멋대로 그렇다 믿는 것일 따름이니까.

이걸 다시 말하자면, 내 자아가 텅 비는 건 시간문제였단 말도 된다. 물론 내가 ‘가슴 두근대는 일, 그러니까 상상을 하며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더 뒤에 떠올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자아는 언젠가 바닥이 드러날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 5년 동안 여러 모로 몸부림쳤고, 그 결과 지금처럼 ‘밑바닥부터 쌓아온’ 자아를 얻게 되었다. 5년 전과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한 자아를.

그 당시 경험으로 지금 얻은 교훈 중 하나가 있다면, ‘자기가 생각해서 자기가 판단하는 게 최고’란 것이다. 결국 남의 말을 무작정 듣고 따라하면 자아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어떤 생각이든 마지막에 ‘자기가 생각해서 자기가 판단하면’, 그건 자기 자아가 된다.

자아가 없이 사는 것과 있이 사는 것 중 뭐가 나은가에 관해선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앞일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항상 상식이든 현실이든 ‘자기가 판단해서 자기가 결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만의 길’을 걷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 역시 21년 동안 자아가 제대로 안 자랐던 것 역시 ‘남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려 했던 거’니까. 내가 그동안 겪은 현실은, 결국 다른 이들이 ‘그렇다고 믿는’ 현실이지, ‘내가 본’ 현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무모해보인다 한들, 결국 자아가 굳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행착오하는 것, 자기가 판단해서 자기가 정하는 것, 그리고 정답만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상식이나 ‘남들의 현실’이 거기가 틀렸다 말한들, 그걸 받아들이는 건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기 자신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자아는 결코 자라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