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누구보다 먼저 행복해질 수 있는’ 용기를

나는 한 해 전, 자아가 많이 부족할 때 항상 이런 말을 마음속으로 중얼대곤 했다. 그 말이 바로 ‘다른 누구보다 먼저 행복해질 수 있는 용기를’이다.

이 말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나한테 이 말은 정말 여러모로 중요했다. 나는 그 때까지 ‘다른 누구보다 먼저 행복해지기’ 위해 용기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걸 또렷하게 ‘스스로 느낀’ 건 이 말을 알게 된 때가 처음이었다.

나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특히 보통 존재가 아닌 동생을 뒀다면 다른 누구보다 먼저 행복해지기가 힘들다. 그게 범죄처럼 느껴져서다. 하지만 그 ‘용기’를 낼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만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자기만의 길을 걷는다는 건, 누군가한테 악당, 그것도 대악당이 된다는 거니까.

그렇기에 만약 나처럼 ‘자기 혼자 행복해지기 미안한’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한 번 중얼거려보는 건 어떨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먼저 행복해질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까. 나는 물론, 이걸 보는 사람 누구라도.

내 자아가 무너졌던 순간

나는 5년 전, 자아가 크게 무너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5년 반이란 긴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자아를 되찾은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스물한 살 후반까지, 자기가 자아를 똑똑히 갖고있다 믿고 있었다. 자기는 무척 또렷한 존재이며, 앞으로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저 큰 착각일 뿐이었다.

2009년 후반(대학교 2학년 때), 나는 제대로 ‘상상꾼’이 되기 위해 작품을 쓰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는 자기 자신이 무척 불안해졌다. 과연 자기 상상을 누군가 받아줄까, 란 생각을 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자아를 아주 잃어버렸다.

그 전에도 좋아하던 건 있었지만, 그 사건 뒤로 약 5년이 넘게 나는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기한테 자신도 없었고, 확신도 없었다. 지금껏 지니고 있던 자아가 남의 상식이나 ‘부모님이 바라는 삶’에 의존한 거짓이었단 걸 깨달은 건 그 일로부터 5년 뒤였다. 그러니까 요즘 들어와서 깨닫게 됐단 말이다.

결국 나는 자기가 판단해서 자기가 결정한 것 하나 없이, 남들이 ‘그게 현실이야’라고 말하는 거나 ‘그게 상식이야’라고 말하는 걸 진짜라고 받아들였단 말이다. 실제로 고등학교 및 대학교 2학년 때까지, 나는 상상을 빼고 대개 ‘현실’이라 믿었던 데에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교과서에 그렇다 나와있으면 거기에 따라야한다 믿었고, 어른들이 ‘이게 현실이야’라고 말하면 거기에 따라서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물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현실이란 결국 우리가 멋대로 그렇다 믿는 것일 따름이니까.

이걸 다시 말하자면, 내 자아가 텅 비는 건 시간문제였단 말도 된다. 물론 내가 ‘가슴 두근대는 일, 그러니까 상상을 하며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더 뒤에 떠올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자아는 언젠가 바닥이 드러날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 5년 동안 여러 모로 몸부림쳤고, 그 결과 지금처럼 ‘밑바닥부터 쌓아온’ 자아를 얻게 되었다. 5년 전과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한 자아를.

그 당시 경험으로 지금 얻은 교훈 중 하나가 있다면, ‘자기가 생각해서 자기가 판단하는 게 최고’란 것이다. 결국 남의 말을 무작정 듣고 따라하면 자아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어떤 생각이든 마지막에 ‘자기가 생각해서 자기가 판단하면’, 그건 자기 자아가 된다.

자아가 없이 사는 것과 있이 사는 것 중 뭐가 나은가에 관해선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앞일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항상 상식이든 현실이든 ‘자기가 판단해서 자기가 결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만의 길’을 걷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 역시 21년 동안 자아가 제대로 안 자랐던 것 역시 ‘남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려 했던 거’니까. 내가 그동안 겪은 현실은, 결국 다른 이들이 ‘그렇다고 믿는’ 현실이지, ‘내가 본’ 현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무모해보인다 한들, 결국 자아가 굳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행착오하는 것, 자기가 판단해서 자기가 정하는 것, 그리고 정답만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상식이나 ‘남들의 현실’이 거기가 틀렸다 말한들, 그걸 받아들이는 건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기 자신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자아는 결코 자라지 못한다.

 

 

‘리루의 흐느적흐느적 블로그’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로 월드(https://lirues.cafe24.com)에 블로그를 새로 넣기로 했다. 주된 내용은 월드에 싣고 있던 만년소녀를 에세이식으로 바꿔서 여기에 새로 올리는 것, 그리고 트위터에서 길게 말하고 싶었는데 글자수 제한으로 쉽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보충하는 것이다. 아마 마음속에 산더미만큼 있는 찌꺼기를 뱉어내는 곳이 되지 않을까 한다.

사실 월드를 처음 재단장할 때만 해도 블로그를 할 생각은 이만큼도 없었는데, 만년소녀나 그런 글은 블로그로 쓰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 난생 처음 워드프레스도 설치하게 됐다. 아무튼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니까…존대로 쓰는 게 읽는 사람 입장에선 더 편할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이 마음 편하게 쓰고 싶기에 블로그에선 반말을 쓸 생각이다.

그리고 아마 짐작한 사람도 있겠지만, 월드 몇몇 컨텐츠(자체제작 컨텐츠) 및 이 블로그엔 애드센스를 도입했다. 즉, ‘광고를 넣어도 문제없는’ 자체 컨텐츠엔 앞으로 애드센스 광고가 들어간다. 이건 정말 내 입장에서 새로운 시도다. ‘자기만의 길’을 걷기 위한 한걸음을 떼어놓게 된 거니까.

대개 애드센스는 ‘돈을 벌기 위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월드에서도 어떻게 보면 다르지 않지만, 그거랑 조금 다른 방법으로 꾸려나가려 한다. 사실 월드에 자기가 안 바라는 다른 컨텐츠를 넣는다는 건 나도 옛날부터 죽 고민했던 거지만, 어떤 목적 때문에 한 번 달아보면 좋겠단 생각을 갖게 됐다. 그게 바로 불로소득이다. ‘가슴 두근대는 일을 하면서 아주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불로소득을 받게 되면 기분이 남다를 거 같다’는 생각에, 나는 애드센스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자기한테 크게 관심없는 소재를 써서 애드센스를 쓰는 느낌을 조금 받았는데, 나는 내가 ‘가슴 두근대는’ 게 아니면 할 생각도 없고, 월드에서 다룰 예정도 없다. 월드 및 이 블로그에서 다루는 건, 어떤 방향이든 내가 ‘가슴 두근대는’ 것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다룰 거고, 마구잡이로 뭐든 다룰 생각도 없다. ‘자기만의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이런저런 찌꺼기를 올리려 한다. 어차피 가슴 두근대는 일만 하고있다 보면 손해보는 건 전혀 없으니까. 광고를 붙이기 위해서 관심도 없는 글을 쓰면 그거야 대가를 바라게 되겠지만, 내가 월드, 그리고 이 블로그에서 하는 일은 배너가 없어도 분명 하고 있었을 일이다. 여기에 추가로 뭔가 들어오면 무척 기쁘겠지만, 그것만 바라고 하는 일은 결코 아니다.

그렇기에 애드센스는 어디까지나 ‘불로소득 시험’, 즉 ‘가슴 두근대는 일만 하며 부가로 불로소득을 얻는’ 시험으로서만 쓸 생각이지, 다른 데처럼 엄청 많은 돈을 바라고 시작하는 건 아니다. 내 입장에선 정말 조금이라도 들어오면(지급액에 다다르지 않아도) 그걸로 된 것이다. 자기가 가슴 두근대는 일만 했는데도 돈이 들어온다는 건, 내 입장에서 엄청 가능성이 보이는 일이다. 물론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애드센스를 써보기로 했다.

나는 자영업 상상꾼으로서 길을 만들어가려 생각하고 있기에, 이렇게 지금껏 해 본 적이 없는 시도가 마냥 즐겁다. 특히 ‘자기만의 컨텐츠’를 만들 수 있단 게 그렇다. 월드에 있는 컨텐츠는 내가 가슴 두근대는 것밖에 없기에, 다른 데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내용이 많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입에 담을 수 있는 컨텐츠보다는, ‘월드라서’ 가치가 있는 컨텐츠를 죽 만들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