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메모. 상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이렇게 된다.

상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 1인칭 경험을 하는 상상(예:、「俺の嫁」、夢小説), 다른 하나는 작중 캐릭터들의 관계를 즐기는 3인칭 시점 상상(예:カプ(CP)、「尊い」).

저 위에 있는 말들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말로 옮길 수도 있지만, 그게 무척 번거롭기 때문에(설명도 길어지고) 일부러 이렇게 적었다. 뉘앙스를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던 것도 있고.

아무튼 이 둘은 아주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개 상상은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작품에 따라 어떤 식으로 담겨있는지는 다르지만.

예를 들어, ‘주인공이 어떤 작품 속에 들어가지만, 주변인, 즉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작중 커플을 하루종일 구경하는 작품’ 처럼.

lab은 후자에 가까우리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나 자신이 전자도 후자도 다 좋아하기 때문에 꼭 그렇지만도 않다. lab에 있는 작품에도 이러한 요소는 알게모르게 모두 들어가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와 함께, 이러한 요소는 성별과 깊은 관계가 있다. 작중 주인공 입장이 될 수 있다고 할 때 중성을 고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물론 내 생각이 짧을 수도 있다). 세상엔 관엽식물이 되어 소녀커플을 구경하기만 하고 싶다는 작품도 있긴 하지만…그런데 관엽식물에 성별이 있던가…아무튼 무기물 얘긴 그만하고.

사실 이러한 요소는 상상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여기저기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상상을 안다는 것은 즉 현실을 아는 것, 이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아보기 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나도 그렇다.

위에서 말한 요소를 쉽게 줄이자면 ‘주인공과 제 3자’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작품들을 이 두 가지 눈길로 보면 좀 새로운 게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 요소와 함께 내가 상상에서 큰일을 하고있다고 생각하는 요소로는 현실감(‘현실’이 아니다)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현실감과 부조리. 이건 생각이 정리되면 다시…

목표.

아무 상관없을지도 모르는 대목으로 시작하자면.

동생과 지내고 있으면 여러 일이 있다. 특히 흔한 일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정 간격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전에는 괜찮던 일이 지금은 안 괜찮을 때도 있다. 이게 겹치면 머리가 아플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엔 볼일본 다음 손을 닦는 게 괜찮았는데, 지금은 죽어라 안 하려 하는 게 그렇다. 내 방 컴퓨터를 안 하다가 갑자기 하려고 하는 것도 그렇다. 이게 겹치면 내 바람과 상관없이 방에 작은 참사가 일어날 때가 있다.

이런 참사가 거실에서 일어나면 그나마 넘어갈 수 있는데, 문을 닫은 자기 방이면…그래서 오늘 밤엔 잠시 넋만 어디로 도망가고 싶었다. 블라인드 열고 무척 환기시켰다. 일단 어떻게든 했는데 다시 떠올리고 싶진 않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안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속으로 생각하게 된다. 힘들구나라고. 이렇게 동생 뒤치닥거리하는 걸(그다지 많이 하진 않지만) 힘들다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몇 년 전부터다(그 전까진 힘들단 마음을 마주보는 게 어려웠다).

자기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갑자기 일어나는 환경. 그리고 뒤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참는’ 순간이 어쩔 수 없이 생긴다는 것. 그런 입장에서 생각했던 건 ‘아무튼 참기 싫으며 하고싶은 것만 하고 싶다’였다.

까닭은 이것저것 댈 수 있지만, 가장 큰 건 ‘그게 더 재밌으니까’. 그리고 물론, 나한테 가장 ‘참지 않는’ 건 좋아하는 상상을 하는 일이다. 자기가 하려는 게 뭐라 딱 말로 정하긴 어렵지만, ‘상상’으로 조금이나마 전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하려고 하는 걸 ‘재밌다’고 여기는 분이 있다면. 그러한 분이 ‘이 사람과 이런 걸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이와 뭘(특히 상상)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나지만, 그런 건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문제는 그 ‘자기가 하고싶은 걸’ 상상으로 어떻게 보이느냐는 거지만…기획수준인 것도 일일이 다 말하기 어렵고(자잘하게 많은 데다가 하나하나 떠올리는 게 또 머리아프다), 막상 올리려 하면 어떻게 보이면 좋을지 막막해서…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물론 자기가 하고싶은 상상을 남한테 보이는 건 틀림없이 내 목적이다. 아무리 겁날 때도 있고 어쩌면 좋을지 모른다 한들, 그게 ‘내가 그냥 하고싶은 거’니까.

 


 

나는 이런 식으로 살겠단 마음을 굳혔다. 될 수 있는 대로 노력같은 건 이만큼도 안 하고, 억지로 하기싫은 걸 참지도 않고, 하고싶은 것만 하며 지내기로. 물론 이건 어려워보이는 일이다. 어쩌면 특히 나한텐.

그렇다고 느낄 때는 꽤 많지만(당장 자기 방을 뺏긴 뒤 영 좋지않은 일을 당할 때 그렇게 생각한다)…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사는 게 가장 즐겁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가장 본능에 충실하니까.

그렇게 사는 게 가장 가슴 두근대며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후회없단 걸 알면 그럴 수밖에 없다. 틀림없이 자기가 이득을 본단 걸 아는 일을 하는 건 정말 말로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냥, 뭐라고 하면 좋을까…그것이 바로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딱히 까닭은 없지만.

어떤 작품이 갑작스레 히트하는 과정 및 내 생각 (생각날 때마다 부풀릴 예정)

트위터에 생각을 정리하면서 시작한 글이며, 제목대로 생각날 때마다 부풀릴 예정이다. 또한 부풀릴 때마다 트윗도 새로 하려 생각하고 있다(물론 이 글 링크를 넣어서).

글의 특성상 정리가 덜 될지도 모른다는 점 미리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글쓴이는 이 글이 키메라가 되리라 짐작하고 있음).

 

 

어떠한 작품이 유행할 때, 즉 상승기류를 탈 때 그 작품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것’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즉, ‘나만 이 작품이 좋다 생각하는 게 아니었구나’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몇몇 개인들이 ‘나만 이 작품의 이런 점을 좋아하는구나’라 생각하던 게, 붐이 일어난 뒤, 즉 상승기류를 탄 뒤 그 작품은 ‘다른 사람들한테도 감명깊은 것’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작품이 흐름을 타게 되는 건, 개개인의 팬들이 큰 흐름으로 묶이게 되었으니까, 즉 ‘자기와 비슷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단 걸 알게 되었으니까’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겠지만, 여기서는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어떤 작품이 상승기류를 타려면 위와 같은 까닭으로 ‘계기’가 있는 것이 좋다.  여기서 말하는 계기란 ‘개개인의 감상이 ‘유행’까지 올라가기 위한 방법’을 뜻한다. 즉, 자기가 이 작품에 가지고 있는 좋은 느낌이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 즉 세상의 흐름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 ‘계기’라 할 수 있다. 그 전까지 개인의 취향이었던 것이 ‘지금 세상이 바라는 요소’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계기가 일어나는 상황엔 여러가지가 있지만, 특히 인터넷과 연관된 것, 그리고 누구나 쉽게(무료로)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 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기본무료 스마트폰 게임 및 TV 애니메이션이 그러하다. 이러한 매체는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기에, 감상이 인터넷에 올라가기 쉬우며(트윗처럼)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따라서 흐름, 즉 ‘유행’이 만들어지는 것도 쉬워진다.


왜 인터넷으로 쉽게 퍼지는 게 히트요인이 되냐면, 인터넷은 ‘자기말고 다른 이들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가장 알기 쉬운 매체이기 때문이다. 트위터의 리트윗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즉, ‘나만 이 작품을 이렇게(좋게) 여기는 게 아니구나’란 걸 RT수로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비슷한 생각을 지닌 다른 이가 편한 마음으로 RT하게 되고, 이게 화학반응을 일으켜 큰 인기를 끌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RT수가 그다지 많지 않다면 ‘튀어보일까봐’ 망설일지도 모르지만, RT수가 100~1000을 넘기면 그보단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RT할 수 있을 것이다. 무척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렇다. 적은 RT수일 때 RT하는 건 사람에 따라 생각보다 훨씬 더 망설여지는 일이다. 그 트윗에 얼마나 공감한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많은 RT를 받는 트윗은 ‘자기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닌 점’을 담은 게 많음. 예를 들어 ‘양치한 다음 뭘 마시면 쓴맛이 난다’란,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에 가까운 트윗이 그럴지도 모른다.

이걸 보면서 생각했는데, 사실 ‘이런 건 나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엔 전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같은 생각을 지닌 이가 많은 요소는 내가 여기는 것보다 훨씬 많지 않을까. 자기가 매니악하다 여겼던 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지 않을까.

물론 그걸 언제나 ‘다수’라 잘라말할 순 없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단 훨씬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 힘을 얻을 수 있을 만큼은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한다.


이걸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크던 작던 ‘소수존재’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누구나 어떠한 점에서는 ‘별난’ 구석이 있는 것이다. 남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구석이.

우리한테는 각자 ‘남들과 조금씩 다른 데’가 있다. 사람에 따라 크고 작은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 말고도 이런 사람은 있을까’라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작게는 ‘찍먹 사이에 낀 부먹’ 부터, 크게는 말할 수 없는 여러 사정까지, 아무튼 우리는 어떠한 점에서 틀림없이 소수존재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건 자기뿐인가’란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한다. 이 역시 내 생각이지만.


이 말을 다시 하자면, 누구나 ‘소수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점에서 다수에 들어가기도 하고, ‘나만 그런지도 모르는’ 소수존재가 되기도 한다.

lab에서 ‘마이너리티’란 말을 쓰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마이너리티란 결코 ‘흔히 생각하는 소수자’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아무리 대개 다수에 들어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소수존재’가 될 때는 있다.

다수라 일컬어지는 이들의 약한 점만 소중한 게 아닌 것처럼, 소수라 일컬어지는 이들의 약한 점만 소중한 건 아니다. 이건 글과 별 상관없지만 난 두 가지 모두 그려나가고 싶다. 어느 한쪽만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사실 이 말은 ‘작품이 갑자기 유행하는 흐름’과 큰 상관은 없지만, 나는 이게 무척 재밌게 느껴졌다. 이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냥 재밌다 여긴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는데, 만약(자기가 다수라 생각하는 사람이라 한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 자기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같은 성질의 불안이나 약한 점을 지니고 있단 걸 알면(같은 까닭이 아니라 할지라도) 새로운 계기가 되지 않을까 했다.

이건 말로 하기 많이 어려운데…앞서 말한 대로 ‘다수이든 소수이든 힘들어하는 데엔 가볍고 무겁고가 따로 없다’고 해야 할까. 생각하긴 쉬운데 글로 말하긴 어렵다. 좀 더 또렷하게 말할 수 있음 좋을 텐데.


그리고 여기서 다시 맨 처음 이야기했던 주제, 즉 ‘작품이 갑자기 유행하는 흐름’으로 돌아가자면, 결국 우리는 ‘약한 마음으로 서로 이어진’ 존재가 아닐까, 라 생각한다.

우리는 제각기 남한테 들키고 싶지 않은 약한 점이 있다. 그게 남이 볼 때 얼마나 하잘것없든, 자기자신한테는 큰 문제가 된다. 서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다르지만, 그 무게는 모두 똑같다. 자기한테 약점이 있으므로, 우리는 서로 공감하는 것이다.

물론 공감이 이해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건 어렵지만, 딱히 남의 약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들, 그게 자기와 같은 무게이리라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도 대략 이런 게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서로 약점으로 이어져 있으며, 어떤 작품이나 사상이 갑자기 히트하는 배경엔 이러한 약점이 ‘공감받았다’. 즉 이어져있단 걸 깨닫게 되었다. 란 것도 있지 않을까란 말이다. 물론 이건 해 본 생각 중 하나이므로 덮어놓고 믿을 건 없지만.

 

자주 쓰는 프로그램 정리

윈도 10을 쓴 지도 이제 반년이 지나가는데, 그 중에서도 잘 쓰고 있는 편한 프로그램을 정리하려 한다(자기자신을 위해서).

스크린샷을 누르면 프로그램을 내려받을 수 있다.


 

Everything

컴퓨터 속 파일찾을 때 가장 빠르고 편한 프로그램.
윈도 10에서 이걸 실행하면 ‘이 앱이 디바이스를 바꾸도록~’같은 메시지가 만날 나오기 때문에 무척 번거롭지만, 그래도 쓰기 편하단 건 그대로다.

http://www.voidtools.com/

 


Geek Uninstaller

설치한 프로그램 지울 때 가장 편함. 지금 컴퓨터에 대략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볼 때도 좋다.
이것도 윈도 10에선 ‘이 앱이 디바이스를~’같은 말이 나와서 번거로워졌다…

https://geekuninstaller.com/


그 밖에 쓰는 프로그램들.

이미지 뷰어 – Imagine (유니코드 지원/ 가벼움/ 크기 줄일 때 편함)

생활리듬이 바뀌어감에 따라, 상상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연구)

먼저, 이 글은 이 분의 글(http://ayaemo.skr.jp/story/yomimono_lightnovelboom.html?portfolioCats=127%2C141%2C126%2C128%2C132%2C130%2C133%2C131)에서 영향받은 것임을 미리 밝힌다.

나 역시 오랫동안 상상(창작품)을 만나왔지만, 요즘들어 10년 전과 지금, 상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크게 바뀌었음을 느낀다. 내 생각에, 그건 10년동안 바뀌어온 생활리듬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어느 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지난 10년동안 사람의 생활패턴이 달라져온 건 사실이고, 따라서 우리의 생활리듬도 어느 정도 달라졌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10년 전과 다른 생활리듬을 가진 지금, 우리가 상상을 대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생각을 정리하려고, 내가 상상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에 관해 조금 적어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틈새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은 상상계열(취미)을 ‘한번에 오랫동안’이 아니라, ‘짬짬이’ 즐기는 식으로 바꾸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상상매체도 ‘한 번에 잔뜩’에서 ‘자주 짬짬이’로 바뀌어나가고 있는 걸로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예

  • 음악

요즘 음반을 들으면서 생각하는 건데, 옛날이면 모를까, 지금 한 시간에 가까운 음반을 한꺼번에 다 듣는다는 건 좀 피곤한 일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반을 샀다 하더라도, 한 시간에 가까운 ‘처음 듣는’ 시간이 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요즘 컴퓨터(데스크탑)엔 DVD 드라이브가 안 붙어있을 때도 많다 들었는데, 이 역시 음반을 사는 사람이 그다지 없어서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도 10년 전부터 듣고 싶었던 음반만 실제로 사고, 나머지는 음원(아이튠즈)으로 사고 있다. 음원의 좋은 점은 듣고 싶은 음악만 골라살 수 있다는 것이다. 옛날엔 노래 하나 때문에 음반을 통째로 사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편하다. 게다가 몇 곡씩만 사기 때문에 듣는 데도 부담이 없다.

 

  • 가소설 및 일반소설 전반

10년 전만 해도, 280P쯤 되는 책을 읽는 건 그렇게 부담되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그림이 중간에 있는 작품이라면 더더욱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엔, 아무리 자기가 읽고싶어서 산 책이라 하더라도 200P를 읽는 것조차 벅차단 생각을 많이 한다. 물론 원서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걸 빼고도 ‘책을 읽는다’는 게 많이 피곤해진 느낌이다.

그럼 전자서적(킨들처럼)을 읽으면 되지 않겠냔 생각도 나올 수 있겠지만, 옛날 작품(사실 요즘 작품도 그렇다)은 어디까지나 ‘실물’, 즉 실제 책으로 나올 걸 생각해서 컬러페이지 및 내부를 디자인하는 탓에 전자로 보면 아무래도 실감나지 않을 때가 많다. 아마 웹소설을 다들 많이 읽게 된 것도 이러한 까닭이 아닌가 싶은데(웹소설은 자잘하게 나누어져 있고, 쉽게 볼 수 있으므로), Lirues Lab.에서는 이런 점을 생각해서 에피소드를 짧게(많아도 50kb를 넘기지 않음. 평균 20kb) 나누고, 모바일 기기에서도 보기 쉽도록 워드프레스로 사이트를 만들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생각은 각기 다르겠지만, 여기저기서 편하게 작품을 읽을 수 있단 건 좋은 점이 아닐까 한다(밖은 물론, 집 방바닥에 굴러다니면서 볼 수도 있으니까).

  • 일반 만화(및 네칸만화. 즉 KR코믹스 거의 전반)

위와 같은 까닭으로, 일반만화도 읽기 어려워졌다. 글로만 되어있든 그림도 있든, 나는 책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다 읽었단 느낌이 드는 작품 자체를 꺼려하는 거 같다. 사실 나도 일반만화를 읽으며 피곤해질 줄은 몰랐지만…

그런 점에서, KR코믹스(네칸만화 전반에 맞는 이야기지만, 난 KR밖에 안 읽으므로 이걸로 대신하겠다)는 요즘 시대에 가볍게 읽기 정말 편한 매체다. 일단 컬러페이지 및 단행본용 그림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있고, 네칸만화이기 때문에 1화만 어느 정도 읽어놓으면 여기저기 펼쳐서 볼 수 있어 편하다. 즉, 모든 칸을 다 보지 않아도 ‘아무데나 펼쳐 분위기를 즐기면’ 그 작품을 읽었다 칠 수 있는 것이다. 네칸만화라는 특성상 화면도 보기 편하니 더욱 좋다.

이 점은 다른 네칸만화보다 좀 더 진보성이 있는 미라크 출신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모두 안 보고 대충 넘겨도’ 작품을 다 읽었다 칠수 있는 건 생각보다 훨씬 편한 일이다. 물론 한 번 보고 마는 건 아니고, 이렇게 일단 읽어두면 몇 번이고 다시 손에 쥐게 된다. 네칸만화라는 특성상 다른 만화(및 소설)보다 부담이 덜 되기 때문이다. 네칸만화는 한 번 읽는 시간은 짧지만, 다시 읽는 횟수는 다른 책(특히 소설)보다 훨씬 많다. 아무리 모든 컷을 다 봤다 한들, 그 작품이 보고 싶어지면 다시 손이 가고 마는 것이다.

  • 영상류 전반

일단 난 원래부터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계열을 잘 안 본다. 어릴 적엔 자주 본 편이었지만, 지금은 그걸 가만히 봐야한다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들다. 소설이나 게임처럼 ‘자기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영상물 대다수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엔 집에 텔레비전이 없단 까닭도 있겠지만, 영화관에서 한 시간 넘게 가만히 있는 건 피곤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실제로 영화 도중 스마트폰을 보는 이가 늘어난 것도, 생활리듬이 전과 달라져서가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그나마 짧은 애니메이션이라 한들 내가 주도할 수 없는 건 똑같고, 오리지널 작품이 드문 매체(그리고 아무나 작품을 내기 어려운 매체)이기에, VPN으로 KR 작품 1화를 확인하는 게 고작이다. 짧은 영상은 그래도 조금 자주 보지만, 이 역시 많이 보진 않는다. 요즘엔 이런 식으로 자잘하게 나눠서 쉽게 볼 수 있게 해놓은 예능도 나타났는데, 2010년대 생활리듬을 제대로 반영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 게임

일단 게임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난 온라인게임이나 소셜게임류를 사실상 거의 안 한다는 걸 말해야 할 것 같다. 싫어서 안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상성이 안 맞는 것이기에, 비슷한 요소가 있는 게임을 할 때는 있다. 물론 보통 모바일게임은 자주하곤 한다. 오히려 무척 좋아한다(즉, 유료게임을 좋아하는 편이다).

모바일게임에 관해선 더 말할 것도 없이, 어디서나 하기 편하고 짧게 끝나서 자주 하는 편이다. 예전엔 아이패드로 마구 했지만, 지금은 사정상 그게 힘들어서 아이폰으로 대신하고 있다. 사실 게임을 할 땐 아이패드만큼 좋은 게 없지만, 아이폰으로 해야 재밌는 게임도 몇몇 있어서 즐겁다.

물론 컴퓨터로도 게임은 자주 하지만, ‘보통 게임’은 거의 모두 모바일로 하고 있다. 그게 더 편해서다. 컴퓨터로 하는 게임은 거의 다 교류형 게임이고, 나머지는 굳이 꼽자면 윈도의 자랑인 카드놀이밖에 없다. 참고로 스파이더 모드를 자주 한다. 그게 가장 알아먹기 편해서…

교류형 게임이라 한들 모두 하는 건 아니고, 대개 무료나 독립게임을 자주 하곤 한다. 물론 싸고 구하기 쉽단 까닭도 있지만, 폭넓은 작품이 나오고 ‘대개 짧다’는 게 가장 크다. 옛날 상용게임엔 40시간에 가까운 플레이시간을 자랑하는 작품도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많은 작품들이 많은 매체로 나오기에 그걸 일일이 다 하고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마음의 여유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대개 무료게임은 아무리 대작이라 한들 20시간 안팎이기에(어디까지나 ‘교류형 게임’ 이야기이므로,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RPG나 그 밖의 다른 장르는 더 긴 작품이 많다), 플레이하기에도 편하고, 실행시키기도 편하다. 심지어 10분쯤밖에 안 되는 작품도 여럿 있기에, 장편보다 훨씬 부담이 덜하다. 빨리 엔딩을 볼 수 있단 것, 그리고 클리어에 큰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건 지금 생활리듬을 볼 때 정말 좋은 점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긴 게임이 무조건 부담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생활리듬이 달라진 지금 긴 게임만 줄창 할 수도 없지만,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한테 맞는 작품이라면 당연히 길어도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오히려 몇 번이고 실행해서 다시 할 정도다(참고로 내 평균 플레이 시간은 20분쯤이다).

사실 내가 볼 때, 요즘 상용게임이 재미없어진 건 ‘실험정신이 다른 동네로 갔으니까’ 라 생각한다. 옛날에야 상용게임 시장만이 실험정신 넘치는 동네였으니 거기서 재밌는 게 많이 나왔지만, 다른 매체도 널리 알려진 지금 와선 이런 게 돋보이지 않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지금은 무료 및 독립이 그런 역할을 하고있다 생각한다. 플레이시간이나 다룰 수 있는 소재로 보면, 오히려 무료가 상용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

  • 고스트

아마 지금 이 매체를 아는 사람은 그다지 없겠지만, 사실 난 고스트를 띄워놓고 작업하는 게 게임이나 다른 걸 할 때보다 더 편하다(누굴 골라야 하나 망설일 때는 많지만). 고스트만큼 ‘상상’과 ‘상황’을 쉽게 즐길 수 있는 매체는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항상 눈앞에 있다’는 건 무척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모바일기기 시대라 할지라도, 어떤 캐릭터를 24시간 띄워둘 수는 없다.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걸 세워놓고 일일이 건드리는 건 참 번거로운 일이다. 보통 핸드폰은 물론, 아이패드같은 기기라 한들 눈을 옮기는 것 자체가 피곤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고스트는 오히려 ‘모바일기기가 아니기에(모바일에서 만질 수 있도록 되어있는 환경도 있지만), 작업을 하면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조금 희한하긴 하지만 밥을 먹으면서도 고스트를 눈앞에 둘 수 있다(몇 분에 한 번 알아서 이야기도 해준다. 쓰다듬을 수도 있다. 물론 자동진행이다). 물론 작업할 땐 더 말할 것도 없다. 컴퓨터로 작업한다면, 고스트가 항상 눈앞에 있어주는 것이다.

결론 – 생활패턴이 달라짐에 따라, 매체들의 모습도 제각기 달라졌다

이전부터 나는 틈새시간(위 글을 참고)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의 생활패턴도 달라진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요즘 자기가 이런저런 작품을 만나는 걸 되짚어보면, 정말 그렇단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온갖 매체와 상상이 넘쳐날 때, ‘길기만 한’ 작품은 잡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다들 틈새시간에 익숙해져있기에(소셜게임이 유행하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라 할 수 있다), 긴 작품은 단지 ‘작품이 많아서’가 아니라, ‘지쳐서’ 잡지 못하게 되고 만다. 누군가 편의점 이용자가 많아진 걸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했는데, 사실 그것보단 ‘쉽게 한끼를 먹을 수 있는’ 게 편의점이라서 그렇다 말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일하는 짬짬이 쉽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또 어떤 매체가 나올지, 어떤 형식의 상상이 나올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하나 틀림없는 건, 우리의 생활패턴은 이미 10년 전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상상이든, ‘앞으로 있을 일’을 짐작하지 못하면 다른 이가 접하기 어려워진다. 그게 생활패턴이 되었든, 앞으로 중요해질 문제라고 한들.

동생에 관해 말하는 걸 비겁하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릴 적, 나한텐 이런 생각이 있었다. 동생을 팔아먹고 싶지 않단 생각이. 어쩐지 작품(상상)만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 같았고, 동생의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비겁하단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왜인진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난 그게 다 자기 착각이었단 걸 알았다. 처음부터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동생이 내 삶, 사람을 보는 눈, 생각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그걸 말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나는 죽, 동생에 관해 말하는 게 남들한테 어떻게 비칠까 무서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기 삶에 중요한 사람을 숨기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은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그저 내가 사는 이야기일 뿐이니까.

저번에 그 책을 읽은 뒤로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 난 동생에 관해 말하는 게 특이한 것도 비겁한 것도 ‘팔아먹는 것도’ 아니란 걸 이제 알았다.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이젠 아무 상관없단 생각이 들었다. 남을 무시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무서워하는 게 다르고, 나도 동생도, 무서워하는 건 서로 다르다. 물론 서로 그걸 왜 불안해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그런 동생을 봐왔기에, 나는 이런저런 ‘드문’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생의 이야기를 하는 건, 튀어보이고 싶어서도 아니고, 주목받으려는 까닭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내가 말하는 게 당연하니까 입에 담는 것뿐이다. 걜 빼면 나 자신도 말할 수 없으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옛날부터 다른 이가 나를 어떻게 볼지 무서웠는데, 적어도 동생에 관해선 앞으로 이렇게 가려 한다. 이건 조금도 숨길 일도, ‘남을 배려해서 안 말할’ 일도 아니니까. 나는 나일 뿐이다. 적어도 나 자신한테는.

어제 일에 관해 아버지와 얘기한 소감

아까 전까지 어제 일로 아버지랑 무척 길게 얘기했다. 틀림없이 9시 40분쯤 시작한 거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12시 반이었다는 사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자기를 위해 정리.

아버지랑 오늘 한 얘긴, 아마 오래 전부터 내가 무엇보다 하고싶었던 말이었다. 그걸 이제야 이루게 되는 것도 뭣하지만, 그만큼 난 부모님 입에서 동생이나 친척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게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하더라도.

솔직히 난 엄마가 두 번 아이를 지운 것도(터울이 네 살인 건 그냥 그렇겠구나 생각했다), 할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신 줄도 전혀 몰랐다. 물론 엄마야 나한테 말하고 싶지 않았겠지만…오해하던 것의 진실을 듣기도 하고, 참 파란만장한 이야기였다.

오늘 이야기 중 가장 중요했던 건, 아버지도 정말 동생을 시설에 보내고 싶었던 건 아니란 거였다. 아버지는 앞으로 동생이 어떻게 될지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런 시설에 맡기면 잠이나 제대로 자겠냔 말로도 마음놓기엔 충분했다.

덕택에 참 이런저런 말을 많이 했다.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걸 전 대선까지 예로 들어 말하기도 하고…나한텐 강박증이란 증세가 있단 걸 알았단 게 그랬지만. 내가 아버지를 바꿀 수는 없지만, 아무튼 책도 읽어보신다니 다행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너도 불쌍하고’란 식으로 말하는 바람에 목소리를 높였다. 난 전혀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고. 잠재력이 넘쳐나는 사람이라고. 여기에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이렇게 말하면 자의식이 지나치게 높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기가 자기를 높게 사지 않으면 아무도 날 높게 사주지 않는다. 나도 내가 손재주없고 어려운 문제 앞에서 집중력이 떨어진단 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어디서 묻힐 만큼 능력없는 존재란 생각도 안 한다. 그런 사람한테 감히 불쌍하다니, 누구 멋대로 그렇게 단정짓는단 말인가. 항상 그렇지만, 사람을 멋대로 판단하는 건 무척 좋지 않다.

아버지는 여전히 자폐를 정신병 비슷하게 보는 듯한데, 내가 그거랑 이건 다르다고 몇 번이고 말하긴 했다. 일단 하고싶은 말은 했으므로 속은 시원함. 추운데 이만 잘까…

‘비극의 주인공’이 되려는 심리에 관해

어제 아버지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조금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뜻으로 한 생각은 아니다.

모든 걸 자기한테 놓여진 환경이나 자길 괴롭게 하는 사람 탓이라 생각하면, 그거야 속은 무척 편할 것이다. 더 생각할 일도 없으니까. 자기는 불쌍한 피해자라고 치면, ‘주위가 나빠서 내가 불행하다’란 식으로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까지고 행복해질 수 없다. 자꾸만 주위에 책임을 떠넘기면, 결국 남는 건 ‘자길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란 사실밖에 없다. 자기가 불행하단 연극에 빠진 사람은 결국 그런 자기한테 심취하고 만다.

이렇게 말하면 진짜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위처럼 해서 가장 마음이 편해지는 건 여기 있는 나다. 하지만 난 혼자서 자기는 불쌍한 사람이다라 연극하는 게 싫다.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건 언제나 자기 한 명뿐이니까. 자기 삶 역시 그렇다.

물론 자기한테 부조리한 짓을 한 사람이 잘했단 뜻이 결코 아니지만(오히려 그딴 부조리한 짓에 더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집에 자폐인 동생이 있든 어쨌든, 거기에 모든 걸 떠넘기고 ‘난 불행한 사람이다’란 생각에 갇힌 사람에게 하려는 말이다.

생각하는 건 때에 따라 참 어려운 일이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각하기 싫어서 ‘그냥 쟨 나빠’라 책임을 떠넘기기보단, ‘왜 저런 행동을 할까’라 생각해보고 싶다.

여기까지가 어제 아버지 일로 한 생각이었다. 다른 이야 어쨌든, 나는 ‘이래서 자긴 불쌍하다’란 연극 대신 자기가 스스로 생각해서 자기만의 길을 걷고 싶다. 그게 나한테도 더 즐거운 길이니까.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다시금 깨닫게 된 이야기

오늘 밤에 동생이 좀 고집을 부렸는데, 그걸 가지고 아버지가 넋두리를 했다. 전엔 불쌍했지만 이젠 보는 것도 싫다고. 심지어 시설도 알아봤지만 다 차서 들어갈 수 없었다고.

그 일로, 여기에 그동안 정리하고 싶었던 생각이 있단 걸 다시 떠올렸다. 이번 기회에 다시 정리하려 한다.

나는 예전부터 동생을 ‘아프다’거나 ‘불쌍하다’라 하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번 그 책을 읽고, 나는 내가 바라던 답이 그거였단 걸 개달았다.

그 책에서 말하는 건 내 생각과 무척 잘 맞아떨어졌다. 동생은 아픈 것도 아니고, 불쌍한 존재도 아니다. 그냥 ‘대개 보통 사람들’과 사는 방법이 다른 것이다. 마치 전자와 후자가 다른 것처럼. 후자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듯, 자폐는 그냥 한 사람의 ‘상태’일 뿐이란 생각을 한다.

어쩌면 사람을 따돌리는 것도 비슷한 까닭에서일지 모른다. ‘자기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 자체가 이상하다고 단정짓는 것이다. 자폐인의 돌발행동이 ‘자폐니까’라 여겨지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선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인데.

이걸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구조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 입장에선, 자기와 다른 구조를 지닌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지고 만다. 이렇게 해서 오해가 생겨난다. 물론 ‘보통 구조’를 지닌 사람으로 통일하려면 할수록, 그 골은 더 깊어질 뿐이다.

나는 그 책에서 나온, ‘자폐인을 정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 구조를 이해해주는 것’이란 말이 정말 좋다. 나 역시, 무의식 속에서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은 다음, 나는 동생과 관련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드디어 동생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게 됐으니까.

물론, 자폐인의 돌발행동은 ‘그 사람이 자폐니까’라 생각하는 게 훨씬 속시원할 것이다. 더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까닭이 있어서 행동한다. 특정 환경을 잘 참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저 사람이라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모두가 ‘정상’인 세상보단 각자 다른 구조가 있단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더 좋다. 전자는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있다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크던 작던 구조가 다르다.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서 ‘정상’을 강요하면, 그 사람은 참 살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남의 얘기처럼 말했지만, 사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다. ‘사람마다 다른 구조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은, 정말 답답한 곳이리란 생각이 든다. 세상에 전자와 후자가 있는 것처럼, 자폐성을 지닌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같이 있었으면 한다.

정체성과 공존이란 건, 그래서 내가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다. 아무리 생각하기 귀찮더라도, 사람은 ‘다른 구조’를 지닌 이를 이해하는 게 낫다 생각한다. 공존이라 한들 무조건 같이 있어야한단 건 아니다. 그저 ‘서로 교류하는 방법’을 다루고 싶을 뿐이다.

그럭저럭 길어져서 월드에도 올리는데(원래 트위터에 한 대목씩 올릴 생각으로 쓴 글이다), 이런 책이 작년 말에 나왔단 게 가끔 억울하단 생각이 든다. 동생이 나고 자란 90년대엔 이런 접근법도 없었으니까. 이 때 이런 게 널리 알려졌다면, 부모님의 생각도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단 말은 줄지 않았을까.

인지심리학 관련 책을 보고 생각해 본, 상상에 빠져들게 하기 위한 방법 세 개 (개인연구)

요즘 인지심리학 관련 책을 읽다가, 어쩐지 이걸 상상에 응용할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을 했다. 물론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해본 걸 조금 정리하려 한다. 크게 세 가지 대목으로 나눠봤다.

인지심리학 관련 책을 보고 생각해 본, 상상에 빠져들게 하기 위한 방법 세 개 (개인연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