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전까지 어제 일로 아버지랑 무척 길게 얘기했다. 틀림없이 9시 40분쯤 시작한 거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12시 반이었다는 사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자기를 위해 정리.
아버지랑 오늘 한 얘긴, 아마 오래 전부터 내가 무엇보다 하고싶었던 말이었다. 그걸 이제야 이루게 되는 것도 뭣하지만, 그만큼 난 부모님 입에서 동생이나 친척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게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하더라도.
솔직히 난 엄마가 두 번 아이를 지운 것도(터울이 네 살인 건 그냥 그렇겠구나 생각했다), 할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신 줄도 전혀 몰랐다. 물론 엄마야 나한테 말하고 싶지 않았겠지만…오해하던 것의 진실을 듣기도 하고, 참 파란만장한 이야기였다.
오늘 이야기 중 가장 중요했던 건, 아버지도 정말 동생을 시설에 보내고 싶었던 건 아니란 거였다. 아버지는 앞으로 동생이 어떻게 될지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런 시설에 맡기면 잠이나 제대로 자겠냔 말로도 마음놓기엔 충분했다.
덕택에 참 이런저런 말을 많이 했다.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걸 전 대선까지 예로 들어 말하기도 하고…나한텐 강박증이란 증세가 있단 걸 알았단 게 그랬지만. 내가 아버지를 바꿀 수는 없지만, 아무튼 책도 읽어보신다니 다행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너도 불쌍하고’란 식으로 말하는 바람에 목소리를 높였다. 난 전혀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고. 잠재력이 넘쳐나는 사람이라고. 여기에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이렇게 말하면 자의식이 지나치게 높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기가 자기를 높게 사지 않으면 아무도 날 높게 사주지 않는다. 나도 내가 손재주없고 어려운 문제 앞에서 집중력이 떨어진단 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어디서 묻힐 만큼 능력없는 존재란 생각도 안 한다. 그런 사람한테 감히 불쌍하다니, 누구 멋대로 그렇게 단정짓는단 말인가. 항상 그렇지만, 사람을 멋대로 판단하는 건 무척 좋지 않다.
아버지는 여전히 자폐를 정신병 비슷하게 보는 듯한데, 내가 그거랑 이건 다르다고 몇 번이고 말하긴 했다. 일단 하고싶은 말은 했으므로 속은 시원함. 추운데 이만 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