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이 갑작스레 히트하는 과정 및 내 생각 (생각날 때마다 부풀릴 예정)

트위터에 생각을 정리하면서 시작한 글이며, 제목대로 생각날 때마다 부풀릴 예정이다. 또한 부풀릴 때마다 트윗도 새로 하려 생각하고 있다(물론 이 글 링크를 넣어서).

글의 특성상 정리가 덜 될지도 모른다는 점 미리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글쓴이는 이 글이 키메라가 되리라 짐작하고 있음).

 

 

어떠한 작품이 유행할 때, 즉 상승기류를 탈 때 그 작품은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이의 것’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즉, ‘나만 이 작품이 좋다 생각하는 게 아니었구나’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몇몇 개인들이 ‘나만 이 작품의 이런 점을 좋아하는구나’라 생각하던 게, 붐이 일어난 뒤, 즉 상승기류를 탄 뒤 그 작품은 ‘다른 사람들한테도 감명깊은 것’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작품이 흐름을 타게 되는 건, 개개인의 팬들이 큰 흐름으로 묶이게 되었으니까, 즉 ‘자기와 비슷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단 걸 알게 되었으니까’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겠지만, 여기서는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어떤 작품이 상승기류를 타려면 위와 같은 까닭으로 ‘계기’가 있는 것이 좋다.  여기서 말하는 계기란 ‘개개인의 감상이 ‘유행’까지 올라가기 위한 방법’을 뜻한다. 즉, 자기가 이 작품에 가지고 있는 좋은 느낌이 ‘자기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 즉 세상의 흐름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 ‘계기’라 할 수 있다. 그 전까지 개인의 취향이었던 것이 ‘지금 세상이 바라는 요소’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계기가 일어나는 상황엔 여러가지가 있지만, 특히 인터넷과 연관된 것, 그리고 누구나 쉽게(무료로)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 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기본무료 스마트폰 게임 및 TV 애니메이션이 그러하다. 이러한 매체는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기에, 감상이 인터넷에 올라가기 쉬우며(트윗처럼)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따라서 흐름, 즉 ‘유행’이 만들어지는 것도 쉬워진다.


왜 인터넷으로 쉽게 퍼지는 게 히트요인이 되냐면, 인터넷은 ‘자기말고 다른 이들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가장 알기 쉬운 매체이기 때문이다. 트위터의 리트윗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즉, ‘나만 이 작품을 이렇게(좋게) 여기는 게 아니구나’란 걸 RT수로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비슷한 생각을 지닌 다른 이가 편한 마음으로 RT하게 되고, 이게 화학반응을 일으켜 큰 인기를 끌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RT수가 그다지 많지 않다면 ‘튀어보일까봐’ 망설일지도 모르지만, RT수가 100~1000을 넘기면 그보단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RT할 수 있을 것이다. 무척 솔직히 말해서 나도 그렇다. 적은 RT수일 때 RT하는 건 사람에 따라 생각보다 훨씬 더 망설여지는 일이다. 그 트윗에 얼마나 공감한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많은 RT를 받는 트윗은 ‘자기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닌 점’을 담은 게 많음. 예를 들어 ‘양치한 다음 뭘 마시면 쓴맛이 난다’란,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에 가까운 트윗이 그럴지도 모른다.

이걸 보면서 생각했는데, 사실 ‘이런 건 나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엔 전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같은 생각을 지닌 이가 많은 요소는 내가 여기는 것보다 훨씬 많지 않을까. 자기가 매니악하다 여겼던 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지 않을까.

물론 그걸 언제나 ‘다수’라 잘라말할 순 없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단 훨씬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 힘을 얻을 수 있을 만큼은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한다.


이걸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크던 작던 ‘소수존재’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누구나 어떠한 점에서는 ‘별난’ 구석이 있는 것이다. 남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구석이.

우리한테는 각자 ‘남들과 조금씩 다른 데’가 있다. 사람에 따라 크고 작은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 말고도 이런 사람은 있을까’라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작게는 ‘찍먹 사이에 낀 부먹’ 부터, 크게는 말할 수 없는 여러 사정까지, 아무튼 우리는 어떠한 점에서 틀림없이 소수존재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건 자기뿐인가’란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한다. 이 역시 내 생각이지만.


이 말을 다시 하자면, 누구나 ‘소수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점에서 다수에 들어가기도 하고, ‘나만 그런지도 모르는’ 소수존재가 되기도 한다.

lab에서 ‘마이너리티’란 말을 쓰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마이너리티란 결코 ‘흔히 생각하는 소수자’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아무리 대개 다수에 들어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소수존재’가 될 때는 있다.

다수라 일컬어지는 이들의 약한 점만 소중한 게 아닌 것처럼, 소수라 일컬어지는 이들의 약한 점만 소중한 건 아니다. 이건 글과 별 상관없지만 난 두 가지 모두 그려나가고 싶다. 어느 한쪽만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사실 이 말은 ‘작품이 갑자기 유행하는 흐름’과 큰 상관은 없지만, 나는 이게 무척 재밌게 느껴졌다. 이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냥 재밌다 여긴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는데, 만약(자기가 다수라 생각하는 사람이라 한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 자기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같은 성질의 불안이나 약한 점을 지니고 있단 걸 알면(같은 까닭이 아니라 할지라도) 새로운 계기가 되지 않을까 했다.

이건 말로 하기 많이 어려운데…앞서 말한 대로 ‘다수이든 소수이든 힘들어하는 데엔 가볍고 무겁고가 따로 없다’고 해야 할까. 생각하긴 쉬운데 글로 말하긴 어렵다. 좀 더 또렷하게 말할 수 있음 좋을 텐데.


그리고 여기서 다시 맨 처음 이야기했던 주제, 즉 ‘작품이 갑자기 유행하는 흐름’으로 돌아가자면, 결국 우리는 ‘약한 마음으로 서로 이어진’ 존재가 아닐까, 라 생각한다.

우리는 제각기 남한테 들키고 싶지 않은 약한 점이 있다. 그게 남이 볼 때 얼마나 하잘것없든, 자기자신한테는 큰 문제가 된다. 서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다르지만, 그 무게는 모두 똑같다. 자기한테 약점이 있으므로, 우리는 서로 공감하는 것이다.

물론 공감이 이해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건 어렵지만, 딱히 남의 약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들, 그게 자기와 같은 무게이리라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도 대략 이런 게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서로 약점으로 이어져 있으며, 어떤 작품이나 사상이 갑자기 히트하는 배경엔 이러한 약점이 ‘공감받았다’. 즉 이어져있단 걸 깨닫게 되었다. 란 것도 있지 않을까란 말이다. 물론 이건 해 본 생각 중 하나이므로 덮어놓고 믿을 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