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주인공’이 되려는 심리에 관해

어제 아버지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조금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뜻으로 한 생각은 아니다.

모든 걸 자기한테 놓여진 환경이나 자길 괴롭게 하는 사람 탓이라 생각하면, 그거야 속은 무척 편할 것이다. 더 생각할 일도 없으니까. 자기는 불쌍한 피해자라고 치면, ‘주위가 나빠서 내가 불행하다’란 식으로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까지고 행복해질 수 없다. 자꾸만 주위에 책임을 떠넘기면, 결국 남는 건 ‘자길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다’란 사실밖에 없다. 자기가 불행하단 연극에 빠진 사람은 결국 그런 자기한테 심취하고 만다.

이렇게 말하면 진짜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위처럼 해서 가장 마음이 편해지는 건 여기 있는 나다. 하지만 난 혼자서 자기는 불쌍한 사람이다라 연극하는 게 싫다.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건 언제나 자기 한 명뿐이니까. 자기 삶 역시 그렇다.

물론 자기한테 부조리한 짓을 한 사람이 잘했단 뜻이 결코 아니지만(오히려 그딴 부조리한 짓에 더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집에 자폐인 동생이 있든 어쨌든, 거기에 모든 걸 떠넘기고 ‘난 불행한 사람이다’란 생각에 갇힌 사람에게 하려는 말이다.

생각하는 건 때에 따라 참 어려운 일이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각하기 싫어서 ‘그냥 쟨 나빠’라 책임을 떠넘기기보단, ‘왜 저런 행동을 할까’라 생각해보고 싶다.

여기까지가 어제 아버지 일로 한 생각이었다. 다른 이야 어쨌든, 나는 ‘이래서 자긴 불쌍하다’란 연극 대신 자기가 스스로 생각해서 자기만의 길을 걷고 싶다. 그게 나한테도 더 즐거운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