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까닭 –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면 자기를 억지로 숨기게 된다

아마 이 글을 읽고 나서, ‘왜 저 사람은 굳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으려 하는 걸까’라 여기게 되는 사람이 몇 명은 있을 것이다. 사실 가만히 생각하면 자기 동생이 사실은 어떻든간에, 굳이 일부러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걸 인터넷상이라 해도 막 말하고 다니다니, 괜히 튀어보이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 라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인터넷상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현실에서 이런 사실을 입에 담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괜히 상황만 불편하게 만든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동생과 같이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기 얘기를 털어놓으려 마음먹었다. 내 경험상,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를 ‘억지로’ 숨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이렇게 자기를 억지로 숨기면서 ‘안 튀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는 게 무척 지치게 되어서다. 아마 이건 정말로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다면 느끼기 힘들 것이다. 자기가 당사자가 아니기에,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고 지나치게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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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싶은 책만 읽는 즐거움 – 책꽃이에 있는 책만 봐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전집을 몇 질 사 주셔서 책읽는 게 노는 것만큼이나 편했고, 지금도 사고싶은 책을 고르거나 사서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좋아하지, 모든 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읽고 싶은’, ‘관심이 있는’ 책만 갖고 싶지,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고싶은 건 아니다. 지금 관심없는 책을 읽어봤자 시간만 날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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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안 건강한’ 걸 자랑한다 – 건강과 의욕의 관계

우리는 가끔 다른 이가 자기가 ‘건강하지 못한’ 것, 즉 막사는 걸 자랑하는 걸 듣게 된다. 오늘 몇 시간밖에 못 잤다, 운동한 적도 별로 없다, 와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어쩐지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왜 사람들은 자기가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는’ 걸 자랑하는 게 아니라, ‘잘 못 자고 건강이 나쁜’ 걸 자랑하려 드는 걸까?

‘하기싫은 일’을 하니까 건강하지 않은 걸 핑계삼아 땡땡이치려 한다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잘 보면,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단 걸 알게 된다. 즉, 자기가 안 건강한 걸 자랑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고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자기가 하고싶은 일만 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건강하거나 즐겁단 걸 자랑한다. 또한 억지로 남의 말에 따라 사는 사람과 다르게, 자기 몸 건강에도 무척 신경쓰며 살게 된다.

그 까닭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은, 몸이 안 좋아지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몸이 안 좋으면 하고싶은 일도 마음껏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기한테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자기가 하고싶은 일만 골라서 하는 사람은 여러 모로 건강에 신경쓸 수밖에 없다. 잠도 제때 자고, 음식도 좋은 걸로 먹으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만 입에 담게 된다. 어차피 안 좋은 얘길 해봤자 도움이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 자기가 즐거웠던 일,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주로 입에 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와 정반대인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자기가 하기싫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거야 건강이 나쁘단 걸 자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할 말이 그것밖에 없을 거고, 무엇보다 ‘건강이 나빠지면 하기 싫은 걸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즉, 다른 이들한테 이상하게 안 보인 채 땡땡이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 삶이 재미없는 걸 건강하지 못한 삶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게 된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정리하자면, 사람은 결국 자기가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살 때 가장 즐거우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만약 즐겁게 사고 싶은 사람이라면, 될 수 있는 대로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사람, 즉 안 건강한 걸 자랑하기만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게 좋다. 그런 사람과 죽 만나다 보면 자기한테도 그런 ‘건강하지 못한’ 기운이 옮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즐겁게 살고 싶을 땐, 될 수 있는 대로 자기가 하고싶은 일만 골라서 하는 게 좋다. 즉, 하기싫은 일은 될 수 있는 대로 안 하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단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식으로 하기싫은 건 아예 안 하는 게 훨씬 더 살기 편한 법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이렇게 해보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운이 나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혼자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흔히 인터넷에선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지내거나 친구가 없는 걸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곤 한다. 그런데 이런 글들을 죽 보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대체 왜 ‘혼자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걸까? 다른 이들이 손가락질하니까? 그런 사람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니까? 아니면 자기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오래 전부터 여러 모로 혼자있는 데 익숙해져서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내 입장에서 보면, 혼자되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 따라선 ‘자기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혼자있는’ 것 역시 다른 이들과 있는 것만큼 소중할 수 있다. 나 역시 살아온 환경 덕분에 ‘혼자되는’ 게 전혀 이상하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다.

그럼, 아래부터는 여기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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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며, 가장 잘하는 상상 – ‘언뜻 보기엔 보통 설정’에 ‘인식이 비틀린’ 설정을 지닌 인물을 투입

오늘은 갑자기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진 고로, 내가 좋아하며 가장 잘하는 상상은 어떤 경향인지를 말하려 한다. 사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줄줄 늘어놓고 싶어졌냐면, 자기가 잘하며 좋아하는 상상이 어떤 경향인지 오늘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상상을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 오늘 여기에 관해 잠깐 설명하고 넘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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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한 가정’, 그리고 ‘유독한 부모’에 관한 이야기

오늘은 ‘상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유독한 가정’, 그리고 ‘유독한 부모’에 관한 얘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아마 이 말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보다 더 많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무엇보다도 친근한 개념일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 주위엔 유독한 가정, 그리고 유독한 부모가 무척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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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

흔히,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취미)을 직업으로 가지면 여러 모로 고생한다는 말을 한다. 즉 좋아하는 게 직업이 된다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걸 한다면, 그걸 어떤 식으로 하든 지겨울 일이 전혀 없다.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두근거려서, 괴로운 마음조차 가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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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캐릭터가 되는 순간’을 쓰기 앞서

이 글은 현실을 상상으로 바꾸는 과정, 즉 ‘사람이 캐릭터가 되는 순간’에 관한 내 생각을 줄줄 적은 내용으로 되어있다. 즉, 쉽게 말하자면 ‘리루에스의 상상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상상론이지, 이 카테고리에서는 어려운 말은 이만큼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나 자신이 혼자 멋대로 죽 생각한 상상에 관한 자기 생각을 때로는 길게, 때로는 조금 짧게 써보려 한다.

흔히 상상과 현실은 아주 동떨어진 거라서, 둘 사이엔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 생각에, 상상과 현실은 오히려 가장 가까운 데에 있다. 이 둘은 철저하게 나눠져있지만, 사실은 가장 가까운 곳에 찰싹 붙어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깊게 영향을 받으며, 상상은 현실에 따라, 또 현실은 상상에 따라 크고 작게 모습을 바꾼다. 비록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건 상상 속 존재인 ‘캐릭터’, 그리고 현실 속 존재인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이 둘은 철저하게 나눠져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존재다. 아니, 사실 사람과 캐릭터는 하나의 ‘상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이 상식이 아닌, ‘자기만의 특별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순간, 바로 그 때가 ‘사람이 캐릭터가 되는 순간’이니까.

이 ‘사람이 캐릭터가 되는 순간’은,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사람한테라도 찾아올 수 있다. 그 사람이 아무리 평범해보인다 한들, ‘특별한 데’는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데’, 즉 상식에서 벗어난 점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한 데’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람이 아니라 ‘캐릭터’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현실이 ‘상상’으로 바뀌는 걸 볼 수 있게 된다.

여기서는 이렇게 사람이 캐릭터로 바뀌는 순간, 즉 ‘현실이 상상으로 바뀌는 순간’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상상이나(특정 요소를 지닌) 상상에 관한 내 생각을 적어나가려 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생각이며, 다른 이들한테 동의를 바라고 쓴 글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상상이란 요소, 그리고 ‘캐릭터와 사람’이란 요소를 새롭게 보고 싶은 사람한테는 그럭저럭 괜찮은 읽을거리가 되지 않을까 한다. 또한, 만약 내 상상을 몇 점 만나본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은 그러한 내 상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도움이 되는’ 것이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글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나는 상상 속 인물들의 관계와 교류로 이끌어나가는 ‘상상 속 인간극장’에 가까운 상상, 그리고 등장인물의 설정이 ‘보통 인식과 비틀어진’ 상상을 특히 좋아한다. 여기서 등장인물의 설정이라 하는 것은 성별이나 직업이나 나이와 같은 요소들이 종잇조각만큼이나 가치가 없는, 즉 ‘모호해지는’ 설정을 말한다. 즉, 이런 요소들이 보통 이들이 지닌 인식과 비틀어진 모습을 보여주는 상상을 잘 한다는 말이다. 만약 이런 상상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글은 물론 내 상상(지금이라면 ‘현대환상 프로젝트’) 역시 한 번 만나보면 좋지 않을까 한다.

만년소녀를 쓰기 전에

전에 월드에서 쓰고 있던 만년소녀를 에세이로 바꿔쓰기로 했다. 이렇게 바꿔쓰기로 한 까닭은, 자기가 관계나 교류 없이는 상상을 하는 의미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렇게 하면 내가 더 쓰기 편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쓰는 양이 늘었음 늘었지, 줄진 않을 것이다.

이 만년소녀는 말 그대로 수필에 가까운 글이기에, 당연히 나 자신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내가 살아온 환경이 있는 그대로 들어간다는 말이 된다. 이 글을 쓰는 데 용기가 필요없었냐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난 어쩐지 이 글이 무척 쓰고 싶었다. 누가 이상한 눈길로 날 바라본다 하더라도(그게 안 무섭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쓰고 싶었다).

내 동생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자폐를 가지고 있다.

 

굉장히 솔직히 말해서, 나는 대체 왜 이런 사실을 당당히 말할 수 없는지 무척 안타까워했다. 다른 집안이 가족들과 때때로 싸우고 다투는 것처럼, 우리 집 역시 마찬가지일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난 이런 걸 당당히 말하는 게 무서웠다. 그런 말을 조금이라도 하면 분위기 파악하라고 다른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릴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마음속에 남은 ‘찌꺼기’들을, 오직 나만을 위해 이 카테고리에 줄줄 늘어놓기로 했다. 물론 다른 이들의 생각을 바꾸거나 비슷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이 글, ‘만년소녀’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만을 위해 쓰는 글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지금껏 참았던 여러가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해보려 한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걸 정리하는 겸해서.

사람은 자기랑 다른 처지에서 살아온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건 아무래도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삶을 모르기에 이해하는 것도 힘든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잡게 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삶 역시 상상할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지금껏 이해하지 못했던 누군가를 이해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이 카테고리에서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겠지만, 부디 여기있는 글이(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주위에 있는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