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상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유독한 가정’, 그리고 ‘유독한 부모’에 관한 얘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아마 이 말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보다 더 많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무엇보다도 친근한 개념일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 주위엔 유독한 가정, 그리고 유독한 부모가 무척 많으니까.
어째서 상상에선 ‘유독한 가정’과 ‘유독한 부모’가 많이 나오는가
우리는 상상, 즉 드라마나 이야기, 만화나 게임같은 매체에서 ‘집안에 문제가 있어’ 성격이 비뚤어진 인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부모님이 아이를 학대하거나, 평온한 집안이 아니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이 아이를 무시하는 가정 말이다. 그런데 이걸 보고 있으면 어쩐지 이상하지 않은가? 대체 어째서 이렇게 ‘유독한’ 집안이 상상 속에 유달리 많이 나오는 것일까? 모든 집안이 저렇게 유독하진 않을 텐데 말이다.
이 ‘유독한 가정’이라는 개념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건 이 책에서였다(이야기가 좀 다른 데로 새지만, 이 책은 억압이나 열등감 관련 내용도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나 자신이 많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이 개념을 알게 된 다음, 나는 억압이나 열등감을 만들어내는 건 결국 거의 대부분이 가정문제 때문이라는 사실 역시 알게 된다. 대다수의 억압이나 열등감은 결국 부모로부터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랑과 관련되어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속 엄마’를 만들어서 자기가 그 사랑을 직접 얻는 게 가장 빠르다(자세한 건 다음에 올릴 ‘억압과 열등감을 해결한 방법 3’에서 다룬다). 즉, 모든 문제는 거의 대부분이 가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그렇게나 많은 등장인물들이 집안에 문제를 갖고있는 것도, 알고보면 참으로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결국 사람이 일으키는 문제 대다수엔 ‘유독한 가정, 그리고 부모’가 있다
이걸 알고 나면, 결국 이 세상에 일어나는 거의 대다수의 문제, 특히 개인이 일으키는 문제는 이 ‘유독한 가정’, 다시 말해서 ‘유독한 부모’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 유독한 가정과 유독한 부모는, 아이의 행복감이나 억압, 열등감은 물론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혼자서만 살아나갈 수 없기 때문에, 집안이 불안해지는 건 자기 자신이 불안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어린아이는 살아나가기 위해 부모의 눈치를 보고, ‘부모의 마음에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가 제대로 자아를 키울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대체 자기가 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아이, 즉 ‘세상, 그러니까 부모한테 휘둘리기만 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이다. 자기 목숨을 포기하는 사람이 요즘들어 늘어나는 것도, 누군가한테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대다수는 유독한 가정, 그리고 유독한 부모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유독한 가정과 유독한 부모는, 결국 어떻게 보면 ‘물려받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독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사랑받지 못했고 자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가 많기에, 결국 자기 자식한테까지 같은 아픔을 되물림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자아가 없기에 항상 남의 눈에만 신경쓰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식한테도 ‘남들 눈에 잘 보이는’ 걸 강요하고 만다. 이렇게 해서 유독한 가정은 되물림되고, 이걸 끊기 위해서는 누군가 크게 마음먹는게 필요해진다. 그리고 대개 이런 역할을 맡기 가장 좋은 건, 부모가 아니라 자식이다. 자식이 부모의 애정을 언제까지고 바라고 있는 이상, 이 쇠사슬은 좀처럼 끊기 쉽지 않아서다.
이러한 유독한 가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자기가 그 집안과 거리를 두는’ 방법뿐이다. 유독한 가정은 결국 자기자신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모님 말씀이 진리다’나 ‘부모님 말이 무조건 옳다’는 말은 굉장히 근거가 없다. 그건 그저 우리가 자기 멋대로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일 뿐이다. 우리는 부모님이 말하는 것과 다른 길을 걸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유독한 부모’한테 사랑을 받으려고, 우리는 자아까지 포기할 필요가 없다(특히 다 자란 어른은 더더욱 그렇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이 유독한 가정이라는 개념은 ‘자기만의 길’을 걷는 데도 굉장히 큰 장애물이 되며, 이 유독한 가정을 대하는 방법을 익히는 게 자기만의 길을 걷는 지름길 중 하나라 해도 틀리지 않다. 나 역시 처음엔 그렇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서 집안이 절반쯤 유독한 가정에 가까워졌고, 그 밖의 다른 특수한 사정도 겹쳐서 자아가 제대로 굳어지지 않은 채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만큼 이 유독한 가정 및 부모는 한 사람의 삶, 그리고 자아를 만들어나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이 이러한 ‘유독한 가정, 그리고 부모’를 가볍게 여기지만, 내 생각에 이건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도 아니고, 그대로 내버려둘 문제도 아니다. 아마 시간이 많이 지나면, 이 문제는 무척 중요하게 다뤄지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여러 모로 할 말이 많은 소재이기 때문에, 여기에 관한 이야기는 생각나는 대로 조금씩 이어가려 한다. 게다가 이 유독한 가정은 ‘상상’, 즉 사람이 캐릭터로 바뀌는 순간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기에, ‘사람이 캐릭터가 되는 순간’에서도 여기에 관한 이야기가 여럿 나오리라 생각한다. 결국 사람의 억압이나 열등감과 같은 ‘자아를 만들어나가는 데 안 좋은 영향을 주는’ 요소는, 대다수가 이 유독한 가정 및 부모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관련 책 : 독이 되는 부모가 되지 마라
맨 처음 소개한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지금 검색해 보니 좀 더 또렷한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온 모양이다. 그것도 올해 2월. 고작 한 달 전이라니, 마치 지금을 노린 듯한 시기인데…
나 역시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차례만 봐도 대체 유독한 부모가 뭔지에 관해선 똑똑히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지금 여유가 없다면, 이 책의 차례라도 한 번 보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