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까닭 –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면 자기를 억지로 숨기게 된다

아마 이 글을 읽고 나서, ‘왜 저 사람은 굳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으려 하는 걸까’라 여기게 되는 사람이 몇 명은 있을 것이다. 사실 가만히 생각하면 자기 동생이 사실은 어떻든간에, 굳이 일부러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 걸 인터넷상이라 해도 막 말하고 다니다니, 괜히 튀어보이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 라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이건 인터넷상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현실에서 이런 사실을 입에 담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괜히 상황만 불편하게 만든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동생과 같이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기 얘기를 털어놓으려 마음먹었다. 내 경험상,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를 ‘억지로’ 숨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이렇게 자기를 억지로 숨기면서 ‘안 튀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는 게 무척 지치게 되어서다. 아마 이건 정말로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다면 느끼기 힘들 것이다. 자기가 당사자가 아니기에,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고 지나치게 되는 거니까.

자기와 다른 이들의 ‘평범함’이 다르다는 것

물론 평범한 집안에서 나 보통 형제자매를 뒀다면, 자기 형제자매 얘길 ‘억지로 꺼낸다’는 생각을 안 해도 될 것이다. 말해봤자 눈치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격은 둘째치더라도 ‘보통’ 형제자매를 지니고 있다(혹은 외동아들 및 딸이다). 그러니 아무 생각없이 ‘우연히’ 가족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한들 별 신경 안 써도 되고, 가족 얘길 숨기고 있다는 압박감을 안 느껴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가족’ 이 아닌 부모 및 형제자매가 있거나 자기 자신이 ‘보통’ 이 아닐 땐 문제가 커진다.

이건 나처럼 장애가 있는 동생이 있는 경우뿐 아니라, 자신이 동성애자라거나 다른 특별한 사정을 지니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 자체가 ‘보통이 아닌’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자기랑 같은 사정을 안 지녔으며 익숙하지도 않단 걸 뻔히 아는데, 쉽게 자기 얘길 꺼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나마 어릴 때(청소년기도 일단 포함)엔 이걸 안 말해도 자연스럽게 지낼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족에 관해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지게 되면 이러한 상황이 무척 답답해진다. 자기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인데, 남들한테 털어놓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보통 이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은 점점 더 ‘보통 이들처럼’ 보이는 걸 의식하게 된다. 자기가 안 이상하게 보이려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같은 경우에도, 집에서 동생이 혼자 중얼거리든 시끄럽게 굴든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보통 이들이 동생과 싸움질하는 게 당연한 것만큼이나, 내가 살아온 삶도 나한텐 특별한 거 하나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란 말이다(사실 싸움질도 보통 집안만큼 했겠지만). 물론 다른 집안 동생도 저러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내가 볼 때 동생의 행동은 전혀 놀라운 게 아니다. 벌써 20년 가깝게 봐온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어쨌든 ‘보통 동생’을 둔 바 없으며, 그에 따라 보통 동생을 둔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상상 및 상식으로 메우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아이들이 자기 집에 관해 잡담을 한다고 한들, 제대로 끼어드는 게 많이 어렵다. 아무리 상식으로 알고있다 한들 남의 집 이야기는 나한테 그저 ‘저 사람들한테 보통인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집 이야기를 꺼내면, 이번엔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할 게 뻔하다. 내 동생이야 내가 볼 땐 보통이지만, 다른 이들한텐 당연히 아닐 테니까.

즉, 나는 다른 사람들하고 어떻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면 좋을지 잘 모른다는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 이야기로 잡담을 하니 나도 그럴 수밖에 없는데, 위와 같은 까닭으로 난 자기 얘길 꺼내는 게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니 될 수 있는 대로 ‘안 이상해지려고’ 보통 사람들처럼 행동하려 하며, 자기를 자꾸만 숨기게 된다. 한 번 해 보면 알겠지만, 이건 진짜로 답답한 일이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자기를 숨겨야만 하는 걸까. 나한테는 내 삶도 그저 평범할 뿐인데.

‘튀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위에선 내 사정(동생)만 얘기했지만, 물론 이건 다른 ‘숨기고 싶은 사정’을 지닌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나름대로 ‘자기를 숨기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를 드러내는 삶을 즐겁게 여기지, 자기를 숨기고 보통 사람처럼 보이려 하는 걸 즐거워하진 않는다. 자기를 숨기면 참된 친구도 찾을 수 없고, 좋은 기회도 얻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숨기고 싶은 사정’이 있는 사람은 이것조차 이룰 수 없다. ‘남들한테 이상하게 보이기 싫다’ 나 ‘남들과 안 어색한 관계를 갖고 싶다’는 까닭만으로, 이런 사정을 지닌 사람들은 억지로 벽을 만들어 누구를 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관계는 결국 깊어질 수 없는 법인데도.

물론, 다른 이들이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주기 힘든 건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내 삶은 다른 나라 이야기일 테니까. 상대방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다른 나라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사정을 털어놓으면, ‘아, 그렇구나’란 식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솔직히 말해서, 당사자 입장에선 참으로 ‘자기가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대체 어떤 누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만으로 주위 사람들 반응이 바뀌는 걸 보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정을 지닌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안 된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앞서 말한 대로, 자기를 숨기고 사는 사람은 결국 행복해질 수 없어서다. 물론 모두 밝힐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보통 이들이 거리낌없이 밝히는’ 정도로는 밝힐 권리가 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러한 ‘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에 문제가 있지, ‘당사자’들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바뀔 필요는 없지만, 보통 사람이라 한들 이러한 ‘당사자’들이 자기가 모르는 머나먼 세상이 아니라 바로 주위에 있단 것쯤은 알아야 한다. 모든 걸 짐작할 필요는 없지만, ‘그 사람들의 삶’이 드라마나 소설과 같은 상상 속의 상징이 아니라 ‘현실’이란 것쯤은 알아야 한다. 그 사람들도 분명히 보통 이들과 같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그리고 비슷한 처지를 지닌 이들을 위해서

청소년기쯤부터 ‘자기 삶을 말하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된 나는, 예전부터 자기 삶을 바탕으로 한 글을 ‘자기가 쓰고 싶어서’ 써보려 마음먹었다. 자기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실컷 털어놓는 건 정말 속이 후련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보통 이들한테 ‘이런 사정을 지닌 사람은 이런 일을 겪어왔다’는 자료가 되었으면 했다(물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쓰고 싶어서 쓴다는 거지만). 더 나아가서는, 나와 같은 입장을 지닌 이들, 즉 자폐 식구를 든 가족한테 참고가 되면 좋겠단 생각으로 썼다. 물론 난 부모도 아니고 누나 입장이기에, 어디까지나 ‘이런 일이 있었다’는 정보만 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장애를 둔 동생이 있으니까 그 장애(=자폐)에 관해선 엄청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나는 정말 놀랄 만큼 자폐에 관해 잘 모른다(사실 동생에 관해서도 자신이 많은 건 아니지만, 그건 다른 누나들도 비슷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다른 자폐, 아니 장애를 지닌 가정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도 잘 모른다. 애초에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못 만난 건 아니지만, 그게 다라고 자신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른 ‘장애를 지닌 형제자매를 지닌 사람들’이 어떤지는 나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10년 전부터, 나는 자폐에 관해 인터넷으로 제대로 검색해본 적이 없다시피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속으로, 나는 비슷한 처지를 지닌 또래가 있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고도 생각했다. 물론 정말 그럴지는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해야 할 만큼, 나한테는 동감할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장애아의 형제자매에 관한 관심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검색도 안 해 본’ 사람이 이런 글을 쓰는 것도 희한한 얘기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보다 어린, 혹은 비슷한 나잇대의 당사자들이 이 글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단 마음은 갖고 있다. 물론 죽 말하고 있듯, 이 글은 어디까지나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지금껏 시원하게 말하지 못해서, 이대로 가다간 후회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자료가 없는 장애아의 형제자매이니, 이런 글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내 입장에선 무척 고마운 일이다.

마무리 – ‘후회없이’ 죽기 위해

앞서 말했지만, 나는 보통 환경에서 자란 게 아니기에 항상 ‘자기는 다른 이들보다 특이한 게 아닐까’란 게 무서웠다. 즉, 다른 이들한테 ‘이상한 애’처럼 보이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억압이나 열등감에서도 자유로운 지금,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멋대로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으려 한다. 남들 눈치보다가 후회하느니, 차라리 이상한 눈으로 보여도 후회없이 죽는 게 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