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갑자기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진 고로, 내가 좋아하며 가장 잘하는 상상은 어떤 경향인지를 말하려 한다. 사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줄줄 늘어놓고 싶어졌냐면, 자기가 잘하며 좋아하는 상상이 어떤 경향인지 오늘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상상을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 오늘 여기에 관해 잠깐 설명하고 넘어갈 생각이다.
‘자기가 뭘 잘 하고, 뭘 좋아하고, 뭐에 가장 가슴 두근대는가’
지금껏 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제대로 깨달은 게 고작 한 해 전이었다’라 말해온 바 있다. 실제로 내가 관계 및 교류, 그리고 ‘상상 속 인간극장’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작년이었다. 거의 평생에 걸쳐 혼자 상상하는 걸 그렇게 좋아했는데도, 나는 내가 이런 것 때문에 상상하길 좋아했단 사실마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성별도 직업도 나이도 종잇조각만큼이나 가치가 없는’ 인물설정, 즉 ‘인식이 뒤틀린’ 인물설정을 좋아한다는 것 역시 고작 한달쯤 전에 깨달았다. 그와 함께 ‘부끄러운 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등장인물들이 그런 장애물을 딛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며, 아울러 자기만의 길을 걸어나갈 수 있게 되는’ 상상을 좋아한단 것도 요즘들어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면 이 요소들은 내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것들인데도, ‘이걸 좋아한다’고 깨닫게 된 건 정말 얼마 전이었다. 앞서 내가 ‘우리는 우리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고 말한 바 있는데, 정말 그 말대로였다.
그런 일들을 지나, 난 이제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 하는지, 뭐가 특기인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도 내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자기 상상에 관해 혼자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나는 내가 ‘이미 기존에 있는 평범한 상상’에 자기식 등장인물, 즉 ‘인식이 비틀린 설정’을 지닌 등장인물을 투입해서 말도 안 되는 전개로 이끄는 상상을 잘한단 걸 오늘 깨달았다. 아니, 전에도 깨달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믿고 있었을 뿐이다.
이러한 상상은 내가 몇 년 동안이나 몇 번이고 해온 상상인데, 나는 지금껏 이게 자기 특기란 것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하는 상상의 대다수가 이러한 것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상상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며(자기가 그렇다 생각하며), 그리고 내가 ‘가슴 두근대는’ 상상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걸 알게 된 게 고작 오늘이었던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는 중요한 걸 보지도 못하고 살아온 셈이다.
자기 상상에 관해 깊이 생각했더니, ‘그 상상의 특징’이 떠올랐다
사실 이걸 알게 된 건 자기 상상에 관해 깊이 생각하면서였다. 요즘들어 자기 상상에 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왜 자기는 인식이 비틀린 설정을 지닌 인물로만 상상을 구성하지 않을까. 보통인물이 섞인 것보다 그게 더 가슴 두근대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란 생각을 아까 하고 있었다. 그 때 여러가지 답을 내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자기는 평범하게 보이는 설정 및 무대에 ‘인식이 비틀린’ 인물을 집어넣어서 그 상상을 ‘전혀 짐작치 못한’ 엉뚱한 데로 나아가게 하는 걸 좋아하지, ‘인식이 비틀린’ 인물만 들어가있는 상상을 좋아한 게 아니다, 란 거였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하는 상상, 그리고 지금껏 하고 있는 오래된 상상은 모두 그러한 종류다. 심지어 나는 거의 항상 그러한 ‘평범하게 보이는 설정’을 ‘인식이 비틀린’ 인물설정으로 비틀어버리는 상상을 주로 한다. 그런데 왜 지금껏 그걸 모르고 있었을까. 자기가 잘하는 건 바로 그건데.
이렇게 해서 나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가슴 두근대는 상상을 다시 정리해보기로 했다. 이걸 깔끔하게 정리하면 ‘내가 하는 상상’이 대체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데가 재밌는지 사람들한테 알기 쉬워지리라 여겨서다. 물론, 내 상상은 결코 모든 이들을 위한 게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무척 가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그 ‘필요한 사람’이 내 상상을 눈치채기 쉬워진다. 만약 내 상상이 필요한데도 그냥 지나치고 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굉장히 아쉬운 일이 아닌가.
지금껏 말했던 걸 쉽게 정리하자면
즉, 내가 좋아하는 상상은.
- 기존에 있는 흔한, 혹은 별 특징이 없는 설정 및 무대를 지닌 상상에
- 내가 지닌 고유한 인물공법(즉, ‘인식이 비틀리는’ 설정을 지닌 인물 및 그 인물과 관계를 맺는 보통설정을 지닌 인물들)을 집어넣어서
- 그 인물들이 화학반응해 맺는 관계 및 교류, 즉 ‘상상 속 인간극장’이란 방법으로
- 맨 처음 있었던 ‘별 특징이 없는 상상’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데로 끌고 나가
- 결국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무척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온갖 장애물을 넘어서서 자기자신을 받아들이고, 나아가서는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흔한 상상에 ‘인식이 비틀리는 인물’을 넣어, 그 흔한 상상을 전혀 안 흔한 엉뚱한 데로 끌고 나가는’ 상상이란 대목은 내가 봐도 가장 알기 쉽단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지금 하고 있는 현대환상 프로젝트도, ‘상징세계’를 바탕으로 한 흔하다면 흔한 상상에 ‘인식이 비틀리는 인물설정’, 즉 햇살이나 재혁과 같은 인물을 집어넣어 흔한 상상을 ‘매우 엉뚱한’ 데로 끌고가고 있다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인식이 비틀리는 인물설정’은 아직 안 끝났다. 다른 방법으로 또 인식이 비틀리는 인물들이 나타날 예정이다.
앞으로 ‘이런 상상이 떠올랐는데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모아서 ‘상상메모’란 카테고리를 만들 생각인데, 거기에도 이런 식으로 상상한 것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어쩌면 거의 대다수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는 이런 방법을 자주 쓰기 때문이다.
‘자기 상상의 매력’을 깨닫는 게 중요한 까닭
이걸 읽는 사람이라면 대체 왜 이런 걸로 이렇게 긴 글을 썼나 궁금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이걸 알게 돼서 무척 속이 시원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건 상상꾼한테 정말 뿌듯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가 상상하는 과정’을 알아보기 쉽게 적을 수 있었단 건 정말 기쁜 일이다. 전에도 내가 ‘어떤 과정’으로 상상하는지를 한 번 정리하려고 했는데, 그 땐 이걸 깨닫지 못해서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걸 알게 되었으므로, 앞으로는 이러한 데를 중점으로 강조해나가려 한다. 자기 상상을 ‘알아보기 쉽게’ 누군가한테 보여준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건 모든 이들한테 받아들여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한테 눈에 띄게 하려고 하는 일이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사실 맨 처음 글을 쓸 때는 그냥 지금 생각하는 걸 쓰는 거라서 짧아질 줄 알았는데, 쓰고 나니 꽤 길어졌다. 그렇게 내가 ‘자기 상상’을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고 싶었던가, 란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이래뵈도 10년이 넘게 상상하는 걸 좋아했는데, 자기 상상의 특징이나 상상에 이르는 과정을 제대로 깨달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글을 쓰고 있으면, 사람은 자기가 계획했던 대로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대충 짐작한다 해도, 자기가 걷게 되는 길은 결국 짐작하던 길과는 크게 다르다. 물론 비슷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닮아있을’ 뿐이다. 나는 지금 내가 가슴 두근대는 것만 하려 생각하고 있지만, 그 결과 내가 생각하던 ‘안정감있는 길’과는 점차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길을 걷는 게 전혀 싫지 않다. 조금 무서울 때는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나한테 닥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짐작하던 길’보다는 ‘가슴 두근대는 길’을 먼저 따르려 생각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짐작하던 길은 결국 자기 멋대로 이러리라 생각했던 길일 뿐이지, ‘진짜 길’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겁이 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길을 걸으면 후회는 안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