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

흔히,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취미)을 직업으로 가지면 여러 모로 고생한다는 말을 한다. 즉 좋아하는 게 직업이 된다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걸 한다면, 그걸 어떤 식으로 하든 지겨울 일이 전혀 없다.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두근거려서, 괴로운 마음조차 가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잘 모른다

이 말을 하면 이상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이건 매우 당연한 이야기다. 우린 누구나 진심으로 ‘가슴 두근대는’ 일을 하면 피곤한 줄도 모르고 그 일에 열중하게 된다. 그런 일을 그냥 하든 자기만의 길을 걷기 위해 하든, 안 힘든 건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가슴 두근대는’ 일은 우리가 흔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취미와는 조금 다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취미’와 ‘가슴 두근대는 일’이 비슷할 때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은 진심으로 자기 자신과 깊이 얘기해보지 않으면 본인조차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오래 전부터 상상을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대체 ‘왜’ 상상을 좋아했는지 알게 된 건 이제 한 해도 안 지났다. 작년 6월쯤, 혼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게 종이에 길게 적어가며 진지하게 생각한 뒤에야 나는 ‘상상 속 인물들 사이에서 화학반응한 관계 및 교류’가 좋아서 상상을 하게 됐단 걸 깨달은 것이다. 물론 그전까지도 의식은 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또렷이 ‘스스로 느낀’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 뒤, 나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상상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전엔 대체 왜 자기가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지 몰라서 불안했는데, 이제 그런 일로 불안한 건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그 까닭은 자기가 ‘왜 좋아하는지’를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관계 및 교류를 좋아한다는 걸 똑똑히 깨달았기에, 나는 자기가 가슴 두근대는 상상을 마음 편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내가 ‘상상 속 인간극장’을 하고싶었단 걸 알게 된 건 작년 11월이었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오랫동안 상상을 좋아했다 한들, 자기가 ‘이런 데’가 좋아서 상상하길 잘했단 건 전혀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이걸 알게 된 뒤, 나는 전보다 훨씬 더 상상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자기가 상상을 사랑하는 까닭을 알게 되어서다.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가, 한 달쯤 전에 나는 왜 내가 ‘성별이나 직업, 그리고 나이가 종잇조각만큼이나 가치가 없는’ 상상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인식(상식)이 비틀어지는 그 순간’을 좋아하기에 그런 상상에 끌리게 된 것이다. 내가 등장인물 설정과 관련된 ‘인식의 비틀림’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거의 평생동안 상상하는 걸 알게모르게 좋아했던 나지만, 그렇게 중요한 걸 깨달은 건 고작 한달 전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나서, 나는 자기가 가슴 두근대는 일만 하고 살기 위해서는 굳이 공모전같은 걸 안 해도 되리란 걸 알게 되었다. 가슴 두근대는 상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공모전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지금껏 필승요소, 즉 눈에 보이는 책을 만드는 것만이 지름길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어디까지나 수단 중 하나일 뿐이었던 것이다. 내가 바라는 건 위와 같은 ‘가슴 두근대는 상상’만을 하며 돈 걱정없이 지내는 거였지, 책을 내는 작가란 직업에 매달리는 게 아니었다.

자기가 ‘정말로 바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이걸 보면 알겠지만, 사람이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즉 ‘자기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바라는 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때가 많다. 물론 무의식 속엔 똑똑히 새겨져 있겠지만, 그 무의식을 해석하고 ‘알아채는’ 건 자기자신이 의식 속에서 직접 해야 할 일이다. 이걸 모르면 당연히 자기가 뭘 바라고 어떤 것에 가슴 두근대는지 알 리가 없다. 자기에 관해서 수박겉핥기식으로 알고 있으면, 평생 가도 자신감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자아조차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자기가 가슴 두근대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 한낱 취미, 즉 인터넷 서핑이나 게임하고 글을 쓰는 것이라고만 알고 넘어가기 쉽다. 하지만 게임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게 좋다 한들, ‘왜’ 그걸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는 건 무척 중요하다. 그래야 자기가 그 활동으로 뭘 바라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어서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가 바라는 것’, 즉 ‘가슴 두근대는 것’을 깨닫게 되면, 앞으로 자기가 나아갈 길이 크게 달라질지도 모른다. 만약 글을 쓰는 게 좋은 사람이라 한들, 자기가 글을 쓰고싶은 진짜 까닭을 알게 된다면 글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자기 바람을 이룰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실 가만히 생각하면, ‘가슴 두근대는 일’을 하는 데 굳이 글을 쓰는 방법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까닭이 ‘누군가한테 자기 처지를 전하고 싶어서’라면, 우리는 공모전이 아니더라도 인터넷에 글을 써서 ‘자기 처지를 전하는’ 가슴 두근대는 일을 이뤄낼 수 있으니까.

자기만의 길을 걸으려면, ‘자기랑 깊이 말해보는’ 게 필요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 자기 무의식, 즉 ‘자기자신’과 깊게 얘기해봐야 한다. 그냥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종이에 적어보고 ‘깨닫는’ 것 역시 무척 중요하다.

이건 다른 누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가 마음속으로 죽 바라고 있었던 삶, 즉 ‘가슴 두근대는 길’을 아는 건 결국 자기 자신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수단’, 즉 취미라 생각하는 것만을 자기가 좋아하는 거라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좋아하는 건 수단이 아니라, 그 수단을 쓰고 있는 까닭인데도.

물론 이건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가 걷고 싶은 길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가 정말로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 알려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과 몇 번이고 깊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한다. 나 역시 ‘가슴 두근대는 삶’을 살고 싶었단 걸 알게 된 지 한 해도 채 지나지 않았다. 자기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싶은지 알지 못하면, 결국 남들이 가라고 하는 길만 무조건 따라가게 된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물론, 나 역시 아직 자기자신과 얘기하는 걸 그만둔 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답과 가까워진 것과 아예 모르고 있는 건 틀림없이 큰 차이가 있다. 어쨌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깨닫게 된 뒤부터 상상에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자기 상상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자기가 왜 상상을 하는지조차,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거나 ‘인터넷 서핑이나 온라인 게임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한다면, 한 번 자기자신과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지금껏 몰랐던 ‘새로운’ 자기자신이 그 안에 숨겨져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