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 이 글은 ‘관계&교류의 매력’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3-5. 교류형 게임으로 알아보는 관계*교류 – ‘주인공’이라는 캐릭터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 매력적인 ‘작품 속 세계 시뮬레이션’으로서의 교류형 게임
교류형 게임을 한 번 해 본 사람은 잘 알고 있겠지만, 이러한 게임은 기본적으로 ‘철저한 1인칭 시점’을 지키고 있다. 물론 이벤트 CG에서 필요상 3인칭에 가까운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어쨌든 ‘주인공 주관’이란 점은 그대로다. 그렇기에, 교류형 게임에서는 ‘다른 상상보다 훨씬 더 실감나는’ 상상 속 인물과의 교류를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헤로인처럼 작품 속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주인공과 플레이어와의 교류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그 눈에 비치는 세상은 각자 다르다. 예를 들어,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과 부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 둘은 물론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당연히 그들이 보고 느끼는 세상은 아주 딴판일 것이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도, 우리는 저 둘이 ‘같은 세상에서 지내고 있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교류형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체험’도 이와 비슷하다. 아무리 같은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 눈에 비친 세상은 서로 다르다. 말하자면, 우리는 제각기 자기만의 세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류형 게임은, 이 ‘제각기 다른 세상’ 중 하나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체험을, 교류형 게임은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것, 세상을 받아들이는 자세만 가지고도 눈에 비치는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통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사람일 때, 그 사람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보통 사람들과 틀림없이 차이가 날 것이다. 또한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밝은 햇살을 보며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인지에 관해 고마워하는’ 사람과, 그냥 흘려넘기는 사람 눈에 비친 세상은 당연히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어쨌든 교류형 게임을 하면, 사람들이 제각기 지니고 있는 ‘다른 세상’을 게임 속에서나마 1인칭 시점으로 체험해볼 수 있다. 특히 그 사람, 즉 주인공이 ‘특정 개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 즉 ‘또렷한 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개성이 또렷한 등장인물의 눈으로 되어있는 게임은, 마치 그 등장인물의 속까지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을 만큼 ‘실감’이 난다. 게다가 자기가 그 등장인물이 되어, 상상 속 인물과 교류한다는 특별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당연히 이러기 위해서는 ‘개성’이 필요하기에, 이러한 상상은 주인공이 어느 정도 개성을 갖출수록 효과가 있다. 물론 ‘개성’과 함께 어딘가 ‘감정이입’할 곳 역시 있어야 하지만, 여기에 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말하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까닭으로, 교류형 게임은 ‘주인공의 눈으로 바라보는 상상(세계) 시뮬레이터’라 말할 수도 있다. 주인공의 시점을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는 게임이니, ‘시뮬레이터’라 해도 이상할 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성이 또렷하지 않다 하더라도, 결국 교류형 게임은 주인공의 눈으로 바라본 상상 시뮬레이터에 가깝다. 교류형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들, 이를테면 1인칭 시점. 주인공의 마음이 드러나는 글. 그리고 음악이나 포즈CG와 같은 연출과 같은 모든 것이 ‘주인공의 시점을 재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게임들은 이런 방향과는 조금 다른 연출을 하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게임들은 이러하다.
실제로 교류형 게임은 웬만큼 짧지 않은 이상, 밖에서 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모니터 앞에 앉아 혼자 가만히 하는 걸 상정한 작품이 더 많다. 이러한 1인칭 시점을 열 시간 넘게 보여주는 게임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1인칭 시점이란 특성상, 아무래도 ‘실제 시야에 가까운’ 모니터나 텔레비전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는 까닭 역시 있다. 침대에서 누운 채 플레이할 때와 모니터 앞에 앉아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플레이할 때엔 마음가짐이나 감정이입하는 정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
아무튼 이러한 까닭이 있기에, 교류형 게임은 우리가 상상 속 인물들과 ‘교류한다’는 느낌을 다른 매체보다 훨씬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다. 교류형 게임이 ‘상상 시뮬레이터’인 이상, 상상 속 인물들과의 교류를 실감나게 묘사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야기라서다.
이미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교류형 게임에선 다른 매체에선 느낄 수 없는 ‘압도적 감정이입’을 체험할 수 있다. 얼마나 압도적인가 하면, 심지어 ‘시간이 흘러가는 빠르기’조차 플레이어가 지정할 수 있을 정도다. 웬만하지 않은 이상, 교류형 게임에선 엔터를 치지 않으면 이 장면(독백이나, 등장인물과 얘기하는 대목)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자기가 직접 게임이 흘러가는 빠르기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다른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며, ‘주인공의 시점을 재현하는’ 교류형 게임이기에 돋보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것뿐만이 아니라, 교류형 게임에선 ‘게임 속 모든 연출’ 이 주인공의 시각에 맞춰져있다. 물론 작품 속 그래픽이나 독백, 음악도 그러하지만, 심지어 보너스 모드나 인터페이스 하나하나마저도 ‘주인공의 시각에서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즉, 작품 속 세계관은 주인공이 인식하고 있는 세계관과 같으며, 그것에 따라 모든 것이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구성요소들은 주인공의 시각은 물론, 감성이나 사고방식 역시 반영되어 있을 때가 많다.
이것뿐이 아니라, 작품 속 등장인물들과의 교류법 역시 ‘압도적 감정이입’에 한몫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 속 인물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류형 게임에서 주인공의 시선=플레이어의 시선이기 때문에, 실질 작품 속 인물들은 플레이어를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 된다. 실제로 교류형 게임을 하다 보면, 모니터 너머에 있는 작품 속 인물들이 ‘우리’, 즉 플레이어와 눈길을 맞추며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철저하게 감정이입시키기 위한 게임 디자인’을 중시하는 것 역시, 교류형 게임이 지닌 큰 특징이다.
그리고, 이렇게 철저한 1인칭 시점 및 음악이나 효과음, 그리고 목소리를 알맞은 곳에 써서 ‘작품 속 주인공과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연출, 또한 이 역시 철저하게 주인공 시점에서만 서술되는 이야기(물론 작품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가끔 작품 속 인물 시점으로 바꾸는 교류형 게임 역시 있다)가 어우러져, 교류형 게임은 마치 ‘작품 속 주인공의 눈으로 작품 속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한다. 이러한 느낌은 주인공한테 개성이 있느냐 없느냐와 아무런 상관없이 받을 수 있다. 즉, ‘교류형 게임이기에’ 우리는 주인공과 완전히 같은 감각을 받을 수 있으며, 이것이 교류형 게임이 지닌 큰 특징 겸 장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류형 게임을 할 때, 가끔 ‘그 주인공이 되어 작품 속 인물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여기까지 의식하면서 게임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다른 게임보다 조금 더 특수한 성격일 때, 우리는 가끔 그러한 사실을 의식하곤 한다. 그리고 이 역시, 교류형 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대로라면 교류형 게임은 ‘자기가 감정이입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특성을 지닌 주인공(캐릭터)한테 감정이입하고 있다는 놀라움’을 선사할 수 있단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1인칭 이야기나 영화, 그 밖에 여러 매체에서도 비슷한 느낌은 받을 수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 교류형 게임은 ‘궁극에 가까운 1인칭 시점’을 중시하는 매체다. 그렇기에, ‘자기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같던 캐릭터를 이해하게 되거나, 언뜻 봐도 만들어진 것같은 느낌을 받는 캐릭터한테 감정이입하게 되는’ 충격은 다른 매체보다 훨씬 더 강할 수 있다.
물론, 많은 교류형 게임들은 ‘보편성을 지닌’ 주인공을 중시한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감정이입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는 많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류형 게임에서 그러한 ‘생각지도 못한 감정이입’을 겪고 크게 놀랄 수 있는 것이다. 지금껏 자기가 ‘동감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에 동감하게 되었을 때 받는 충격은 누구한테나 큰 법이니까. 그 ‘동감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것이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러한 까닭으로, 교류형 게임은 사실 ‘작품 속 인물’뿐만 아니라, ‘작품 속 인물이기도 한 주인공’과 플레이어와의 교류 역시 즐길 수 있다 할 수 있다. 만약 플레이어가 주인공한테 감정이입을 했다면, 그건 주인공과 플레이어가 서로 마음을 텄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다. 서로 마음을 트는 행위는, 결국 ‘교류’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교류형 게임은 이러한 체험까지 할 수 있게 해 주는 몇 안 되는 상상매체 중 하나다.
여기까지 말하면, 누군가는 ‘다른 매체에서도 그러한 체험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보통 이야기나 만화, 영화같은 매체를 예로 들면서. 물론 그 말은 맞지만, 2014년 현재,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을 가장 강조할 수 있는 매체는 교류형 게임이다. 즉, 이러한 감정이입을 가장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매체는 교류형 게임이라는 말이다.
이건 다른 매체들과 교류형 게임을 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설과 같은 ‘이야기’에도 1인칭 시점은 있지만, 이러한 1인칭 시점을 강조하는 연출이 교류형 게임보다 떨어지는 편이다. 그리고 만화나 영화처럼 ‘영상미를 중요시하는’ 매체에서는, 오히려 완전 1인칭 시점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이 드물다. 교류형 게임이 완전 1인칭 시점을 중요시해온 것과는 무척 다른 모습이다.
물론, 교류형 게임이 아닌 다른 장르에서도 1인칭에 가까운 시점은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레이싱 게임이나 FPS같은 장르에서는 1인칭 시점을 중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게임들은 교류형 게임처럼 ‘상상 속 인물과의 관계’를 중요시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작품 속 주인공과의 감정이입’이란 점으로 보면 교류형 게임이 조금 더 강점을 보인다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특징을 입에 담는 교류형 게임 플레이어는 그리 많지 않다. 이건 어디까지나 글쓴이의 생각이지만, 아마 교류형 게임 주인공 중 ‘특징적 성격’을 지닌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러한 특징이야말로 교류형 게임이 ‘왜 게임인지’ 말해주는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흔히 이런 게임을 일컬을 때 많은 이들은 ‘게임이 아니다’라 하지만, 글쓴이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왜냐면, 다른 매체들은 이러한 교류형 게임의 특징을 절대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만화든, 영화든, ‘감정이입’에서 교류형 게임한테 따라올 매체는 사실상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교류형 게임은 ‘영상, 음악, 그리고 ‘글자” 모두를 써서 ‘1인칭 시뮬레이션’을 극대화시킨 유일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점을 모두 갖추면서 ‘1인칭’을 중요시한 매체는 지금 현재 교류형 게임뿐이다.
그렇기에, 교류형 게임은 ‘소설의 변종’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궁극의 1인칭을 체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라 하는 것이 더 걸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의 생각이지만, 게임은 결코 대단한 게 아니다. 쓰레기통에 휴지를 구겨넣는 것조차 게임이고, 게임 속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조차 게임이다. 자꾸만 ‘게임의 정의’라는 테두리를 안으로 좁히다 보면, 결국 그 테두리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은 매우 줄어들 것이다.
물론 이건 글쓴이의 생각일 뿐이지만, 이러한 ‘게임의 정의’라는 테두리는 좁히는 것보다 알아보기 쉽게 넓히는 게 훨씬 재밌지 않을까 한다. 결국 좁혀봤자 얻는 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자잘한 걸 따지면서 머리만 아픈 것보단, ‘게임의 정의를 넓혀서’ 이런저런 즐거움을 맛보는 게 훨씬 더 신나는 일이라는 게 글쓴이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게임은 이래아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생각 밖의 ‘놀이”를 찾아낼 수 있는 길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