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스트가 이전(2001년 가량)의 고스트와 다른 까닭

아마 고스트(伺か)라는 개념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 중 가장 신경쓰이는 게, ‘2002년 시절 고스트와 2015년 지금 고스트는 뭐가 다른가’가 아닐까 한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고스트는 다 비슷하다’란 고정관념을 가진 나머지, ‘고스트’란 개념 자체를 고리타분한 것이라 여기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건 이제 너무 옛날 문화니까, 이제 와서 접해봐야 쪽팔릴 뿐이다, 처럼 말이다. 지금까지도 고스트를 다루고 있다니, 옛날 문화를 아끼는 것도 정도가 있다, 라 여기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사실 나 자신도 13년 가까이 고스트를 만져오면서, 이런 말을 우연히 볼 때가 그럭저럭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건 ‘편견 및 무지’일 뿐이라고. 앞으로 쓸 글은, 바로 그것, ‘지난 10년 동안 고스트 생태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스트가 바뀌어온 세 가지 까닭

먼저 말하자면, 지난 10년 동안 고스트 생태계는 ‘그전부터 고스트를 알고 있던’ 이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크게 바뀌었다. 그 경향을 크게 나누자면, ‘유저를 강하게 의식하는 고스트’와 ‘교류요소 강화’, 그리고 ‘개인세계관을 강조하는 작풍’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맨 앞, ‘유저를 의식하는 고스트’에 관해 말해보려 한다.

이러한 경향을 말할 때, 빼놓으면 안 되는 고스트가 하나 있다. 애드센스 특성상 스크린샷 대신 링크를 걸려 한다. 이 고스트는 54라고 한다(2002년 초반에 발표되었다).

혹시 54를 알고 있는 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고스트의 분수령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고스트 한 명만이 고스트가 가는 길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한 건 아니지만(비슷한 시기에 다른 좋은 고스트들도 나왔으므로), 적어도 54가 고스트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쳤단 것만은 확실하다고 나는 믿는다.

이 고스트, 54를 두고, 당시 어떤 개발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5월 11일. 일본어).  이 글은 54가 왜 당시 그만큼 큰 지지를 받았는가에 관해 생각한 글인데, 지금 읽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참고로 이 글을 쓴 분은 이 뒤 이 글을 바탕으로 다른 고스트를 만들며, 그 고스트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게 된다.

‘방관자’에서 ‘당사자’로 옮겨간 유저의 자리

이 글에서는, 고스트의 인기를 ‘유저한테 말을 걸고 있다’와, ‘자기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으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이걸 다시 말하자면, 결국 ‘유저를 강하게 의식하는’ 것과 ‘교류요소의 강화’가 된다.

옛날(2002년 전) 고스트는, 한 번 만져본 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유저의 존재는 의식하되, 그 밖엔 철저히 무시하는’ 경향이 짙었다. 설치하면 처음 나오는 디폴트 고스트조차 유저 자체는 의식하고 있지만, 대개 상대방(서브캐릭터)과만 이야기할 뿐, 유저를 의식하는 행동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즉, 유저는 어디까지나 ‘고스트 속 캐릭터 두 명의 대화를 듣는’ 방관자인 것이다. 물론 고스트가 유저의 의사를 들어준다거나(시간을 맞춰주는 것처럼) 오랫동안 방치하면 화내는 정도로는 유저의 존재감이 있었지만, 캐릭터한테 있어 유저는 정말로 있으나마느나한 존재였다.

하지만 54가 나온 뒤, 상황이 조금씩 바뀌었다. 고스트한테 있어 유저의 존재가 무척 ‘특별’해진 것이다. 이전까지 고스트는, 이미 말한 대로 ‘유저가 누구든 전혀 상관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54 뒤로, 고스트들은 천천히 유저를 ‘다른 이와 다른’ 존재라 받아들이게 되었다. 즉, 고스트(≒캐릭터)에게 있어 유저가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해진 것이다. 따라서 유저 입장에선 고스트를 마주보는 자세 자체가 달라지게 되었다. 지금까지처럼 그냥 구경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고스트를 대하게 된 것이다. 물론 ‘상상’이란 건 잘 알고 있지만.

물론 얼마나 의식하느냐는 고스트에 따라 다르며, 이전처럼 ‘유저를 내버려두고 상대방하고만 이야기하는’ 고스트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고스트계에서 인기가 높은 건, 어떤 방식으로든 유저를 의식하고,  유저한테 직접 말을 걸거나 유저의 의사를 파악하려 하는 고스트다. 즉, ‘누군가와 교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는 고스트들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흐름이 바뀐 데에는 고스트가 콤비에서 솔로로 옮겨갔다는 까닭 역시 크다. 아마 2002년쯤 고스트를 만진 이라면, 고스트는 당연히 메인캐릭터와 서브캐릭터 둘로 구성되어 있다 여길 것이다. 하지만 54는 그 당시 고스트로서는 무척 드문 솔로 형태였으며, 당연히 상대방이 없으니(사실 없진 않지만, 여기서는 줄인다) 유저와 교류할 수밖에 없었다. 이 뒤 솔로고스트 비율은 점차 늘어나, 지금은 유명 고스트를 비롯한 대다수가 유저를 의식하는 솔로고스트로 이뤄져있다(물론 위에서 말했듯, 콤비고스트도 여전히 어느 정도 있다).

이러한 요소는 교류형 게임에서도 아직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으며(주인공과는 교류하나, ‘플레이어’와는 교류하지 않는 작품이 압도적이다), 다른 매체에서도 이제 걸음마단계에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고스트계에서는 10년이 넘게 죽 발달해온 요소이기도 하다. 즉, 이 분야에서 고스트를 이길 매체는 드물다는 말이다(쌓아온 연도가 다르므로).

‘남의 말’이 아니라 ‘자기 말’을 하기 시작한 고스트

또한, 고스트들이 ‘자기자신’, 특히 감정에 관해 말하기 시작한 것 역시 크다. 이 역시 2002년 전 고스트를 만져봤다면 알겠지만, 고스트들은 ‘어디함께‘ 토크라 말할 수 있는 ‘특정 정형문에 유행하는 단어를 끼워넣어 우습게 만든’ 랜덤토크를 자주 하곤 했으며, 자기 자신의 감정에 관해선 그다지 말하지 않았다. 물론 대화에 따라 자기 감정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덤일 뿐이었다. 즉, 고스트들은 ‘세상이야기 및 남의 이야기’는 자주 하지만, 정작 자기에 관해선, 자기 생각 자체에 관해선 전혀 말하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54는, 그러한 ‘남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 대신 54가 말하는 건 유저, 즉 나를 자기가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고작 그런 말밖에 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 고스트, 54를 저절로 ‘아끼게’ 된다. 고스트가 자기 감정을 남김없이 우리한테 보여주기에, 우리도 54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전문계 고스트는 자기뿐만 아니라 전문소재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한다. 옛날처럼 자기들끼리 우스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고스트도 여럿 있다. 하지만 지금, 고스트들은 무엇보다 ‘자기 이야기’를 자주 한다. 어떤 일에 관해 언급한다 하더라도 자기 생각을 집어넣고, 자기를 유저한테 보여주려 한다. 고스트들은 이제 그냥 바라만보는  존재가 아니라, 실제 사람처럼 ‘교류’할 수 있는 입체적 상상으로 바뀐 것이다.

자기가 ‘고스트’란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독창적 세계관을 지닌 고스트의 등장

또한, 지금 고스트를 말할 때 절대 빼놓으면 안 될 요소가 ‘개인세계관 강조’다. 54하고는 조금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지금 고스트들 중 1/3은 개인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해도 틀리지 않다. 옛날 고스트(2002년 전)는 이러한 세계관이 옅은 편이었지만(세계관 자체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고스트’로서의 입장을 중요시할 때가 많았다), 지금 고스트들은 안 그럴 때가 많다.

즉, 옛날 고스트들은 아무리 설정이 특이하다 한들, 여기가 데스크탑이고 자기가 고스트 신분이란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고스트들 중, 자기가 데스크탑에 있다 인식하는 고스트는 그리 많지 않다. 대개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아주 딴판의 세계관(깊은 숲이나, 판타지 세계나, 전자세계처럼)에 살고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고스트와 SSP(고스트를 실행시키는 프로그램)를 매개로 해서 교류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지금 고스트들은 자기가 ‘고스트’란 상태란 것도 모른다. SSP는 그저 고스트와 우리를 이어주는 툴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고스트 상태를 인식할 때도 많다).

이러한 독자세계관은, 만화나 무료게임,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그 사람만의 상상이 돋보이는 세계관’이다. 세계관 자체가 꼼꼼하게 짜여져 있어서, 고스트는 물론 다른 매체에서도 표현할 수 있고, 무엇보다 우리가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무대설정이 따로 떼어놔도 좋을 만큼 잘 되어있고, 그것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또렷하며, 무엇보다 ‘고스트와 유저 사이’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상황설정이 제대로 되어있다. 이런 삼박자가 갖춰진 상태에서, 상상 속 인물과의 교류를 ‘체험’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옛날 고스트한테서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을 만큼 존재감있는 세계관을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지금 고스트는 이런 세계관을 바라기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즉, 고스트라는 개념 자체가 ‘상상 속 캐릭터와 교류하고, 그 세계관을 상상(체험)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고스트는 더 이상 그저 평범한 데스크톱 액세서리가 아니다. 전부터 죽 내가 말해온 것처럼, 고스트는 이미 상상을 표현하는 데 알맞은 제 3의 매체다(무료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처럼).

글을 마무리지으며 – ‘옛날 인식’은 어디까지나 편견일 뿐이다

하지만 아직, 고스트는 이러한 매체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여전히 2002년 시점에서 사고가 멈춘 이들이 많으며(그 때 뒤로 고스트를 만지지 않았기에), 이에 따라 고스트는 아직도 이 시점에 머물렀다 오해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게다가 요즘 이들은 고스트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기에, 옛날 이들의 말에 따라 진짜로 크게 오해하고 마는 상황마저 생겨나고 만다. 당연히 이건 ‘여전히 잠재력이 풍부한’ 매체한테 전혀 좋은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2015년 지금, 고스트는 전혀 2002년 고스트와 ‘똑같지 않다’. 지금 고스트는 그 때와 아주 다른 사상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당연히 발전할 여지 역시 무척 많다. 지금 고스트를 ‘옛날 것이다’라 깎아내리는 이들은 대부분 2002년에서 인식이 멈춰있으며, 고스트가 지금 얼마나 큰 잠재력을 지녔는가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한다. 만약 알고 있다면, ‘옛날 것’이라 함부로 깎아내리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교류 및 캐릭터 표현, 그리고 ‘매체’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그 옛날 인식을 지닌 이들의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기가 직접’ 고스트를 만져봤으면 한다. 특히, 될 수 있는 대로 요즘 고스트를 많이 만져보는 게 좋다. 요즘 고스트를 여럿 만져보면, 이 매체, 놀이터, 아니, 이 ‘문화’가 왜 아직까지 여러 이들에게 지지받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옛날 인식’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도.

(2016/01/04일 추가) 이 사실은 나도 쓰면서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지금 고스트는 2002년 시절과 달리 ‘남성 고스트’의 존재감이 크다는 것도 빼놓으면 안 된다. 그 당시 고스트 중 남성 고스트는 ‘없어서 돋보이는’ 존재이거나 개그용이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지금 남성 고스트는 나름의 인지도를 지니고 있으며, 고스트로서의 질도 높다. 참고로 지금 고스트 개발자 및 유저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그럭저럭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