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가 스스로 움직이는’ 캐릭터 묘사형 상상을 재밌게 하는 방법

오늘 쓰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을 위한 메모다. 이대로 한다고 해서 뭔가 성공한다는 보장은 이만큼도 없다. 사람에 따라 전혀 효과가 없거나 안 와닿을지도 모른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자기 개성에 맞는’ 상상을 즐겁게 하기 위해 쓰는 메모다. 이렇게 한 번 써놓으면 잊어버릴 일이 없으니까.

그러므로, 여기에 있는 내용은 언제든 ‘실제로 내가 쓰는 방법’과 달라질 수 있다. 글로 정리해놓으면, 언젠가 이상하게도 ‘더 와닿는 방법’을 찾아내게 되니까.

주의사항 – 여기에 있는 건 ‘내가 좋아서 하는’ 방법일 뿐이다

여기서부터 쓰는 내용은, 얼마 전 트위터에 대충 정리한 내용을 보충한 것이다(그렇게 많이 새로 쓴 건 아니지만).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캐릭터가 스스로 움직여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상상을 좋아한다. 이러한 요소에 나한테 있는 개성을 덧붙이면, 여러 모로 다른 이들이 하기 어려운(?) 작품이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껏 그런 상상을 어떻게 해왔는지 생각하다가, 며칠 전 ‘대략 이런 식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란 게 떠올랐다. 이 뒤부터 쓰는 건 그러한 상상을 해나가는 과정이다.

캐릭터가 스스로 움직여 서사구조를 만들어나가는 상상을 ‘그냥 심심해서’ 해보고 싶은 이들을 생각하며 썼으니, 그런 걸 좋아하는 이들한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주인공과 캐릭터가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법 – ‘모든 것은 주인공한테서 시작된다’

일단, 당연한 일이지만 주인공을 먼저 생각한다.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말은, 등장인물들이 자기 문제점을 극복한다(자기를 받아들인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즉, 이걸 가장 또렷하게 보여줄 주인공이 필요하다. 1인칭 시점이라면 특히 그렇다(교류형 게임처럼).

물론, 이 주인공은 뭐든 좋으니 ‘개성’이 필요하다. 무개성 주인공은 ‘스스로 움직이기’ 어려우므로, 당연히 이 방법과는 안 맞는다. 주인공은 상상의 큰 축이기 때문에, 뭐라도 좋으니 개성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이다. 물론 ‘조금만’ 달라도 상관없다. 아무튼 멀리서 봤을 때, ‘쟨 뭔가 다른데’ 정도면 충분하다. 이 정도로도 어느 정도 감정이입을 이뤄낼 수 있다(사실 좀 특이한 주인공도 작품을 즐기는 데 생각보단 지장이 없는 편이다).

그리고 이 주인공을 ‘설명’할 캐릭터들을 배치한다. 즉, 주인공이 지닌 폭넓은 모습을 여러 측면에서 보여줄 캐릭터들을 떠올린다. 당연히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므로,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움직이는’ 캐릭터라면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그러한 ‘자잘한’ 여러 모습들을 끌어낼 수 있다면 충분하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친구는 항상 ‘주인공의 폭넓은 모습 중 하나’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작품에 들어가기 쉬운 인물유형 중 하나다.

이 방법의 좋은 점 중 하나가, 작품 속에 인물이 얼마나 필요한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묘사’를 위해 필요한 인물만 추리는 방법이므로, 쓸데없는 캐릭터, 즉 ‘작품을 움직이지 못하는’ 캐릭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방법들은 막연하게 생각하기에, 자연스레 남는 캐릭터가 나타나기 쉽다. 하지만 이 방법은 ‘주인공’이라는 강한 연결고리가 있기에(물론 헤로인 설명용 캐릭터라도 상관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다는 장점이 있다.

어느 정도 인물을 떠올렸으면, 이 인물들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같이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작품의 구성, 즉 캐릭터가 작품에서 맡는 ‘상징/역할’을 알아보기 쉬우며, 따라서 작품 이해도도 높아진다. 작품 속에서 그 캐릭터들이 어떤 톱니바퀴를 맡고 있는지를 알면, 자연스레 ‘어떻게 움직일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자기를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조언계 캐릭터는 ‘멘토’일 것이고, 메인헤로인은 주인공의 ‘주된 교류상대(상대방)’일 것이다. 작품을 엉뚱한 데로 이끌어주는, 이른바 ‘작품을 비틀어 폭을 넓히는’ 캐릭터라면 트릭스터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주인공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주인공이 뛰어넘어야 하는 ‘열등감’을 지니게 만드는 캐릭터라면 당연히 주인공의 ‘적/주된 대립상대’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캐릭터가 ‘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가’를 생각하면, 캐릭터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그리고 어떻게 ‘주인공을 묘사해줄지’를 떠올릴 수 있다. 사실 이 시점에서, 이미 작품은 완성된 거나 마찬가지다. 캐릭터들이 알아서 움직이니까.

그 다음이 무대설정 – ‘모든 것은 주인공을 위해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충분하지만, 물론, 한가지 더 꼭 필요한 게 있다. 그게 바로 무대설정(세계설정/세계관)이다. 이 무대설정만큼 캐릭터의 ‘현실감’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도 없다. 하지만, 이걸 떠올릴 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게 바로 ‘주인공을 설명할 수 있는 무대설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여러 번 실패해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만(실패 약력은 개인 상상 브랜드 (lirues Lab.)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무대설정이 주인공 묘사와 아무 상관없으면 진짜로 캐릭터와 무대설정이 따로 놀게 된다. 둘 중 공통된 게 하나도 없으니 물과 기름만큼이나 ‘못 섞이는’ 것이다. 이건 ‘상상’으로서 무척 큰 문제다. 이 둘이 자연스럽게 섞여야 비로소 하나의 ‘상상’, 즉 가상의 4차원 공간이 나타난다.

어떤 무대설정이든, 주인공에 관해 뭐든 묘사하지 않으면 무대설정으로서 가치가 없다. 주인공들은 그 무대설정에서 자연스럽게 지내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주인공한테 있어 무대설정은 사실상 현실이다. 그런 현실과 ‘물과 기름만큼’ 맞지 않다면, 무대설정은 존재가치 자체가 없다.

이건 그 무대설정 자체에 뭔가 애정이 있을 때 특히 잘 일어나는데, 무대설정한테만 애착을 지니면 아무 쓸모가 없다. 물론 무대설정만으로 개성이 드러나는 상상꾼도 여럿 있지만, 적어도 난 그 타입이 아니다(란 걸 지난 몇 년 동안 깊이 깨달았다). 그러므로, 무대설정은 어디까지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써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려는 건 무대설정이 아니라 캐릭터 묘사니까.

하지만 이 두 요소가 잘 섞여 하나가 되면, 드디어 캐릭터들은 자연스레 움직여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게 된다. 이쯤되면 글자로 써서 ‘형태’로 만들 필요조차 없다. 머릿속에서 내버려두기만 해도, 등장인물들은 스스로 움직이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기들이 스스로 ‘특수세계(작품 속 세계)’에서의 모험을 이뤄내, 자기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아무 짓도 안 한다 한들(물론 상상은 하지만).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그걸 떠올린 상상꾼 머릿속엔 그들의 현실이 있는 ‘4차원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걸 2차원으로 끌어내려 글자로 구성한 뒤, 다른 요소를 덧붙여 3차원으로 완성하면 그제야 다른 이들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만들어진다. 참고로 이 개념의 밑바탕은 내가 아니라, 우연히 다른 분의 인터뷰에서 본 뒤 ‘나도 비슷한 느낌인데’란 생각을 지니게 되어 재해석한 것이다(링크/일본어).

상징도 작품을 움직이는 요소 중 하나 – 모든 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하나의 ‘차원’을 낳는다

여기에 조금 더 ‘알면 좋을’ 것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상징, ‘메타포’의 존재다. 이 상징은 소도구(시계나 작품 특유의 아이템같은 거)를 뜻하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작품 제목이나 등장인물의 역할, 심지어 특유의 연출이나 글귀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징은 모든 것들이 하나의 톱니바퀴 비슷한 거라서, 작품은 이 톱니바퀴들의 움직임만으로 나아간다 해도 틀리지 않다. 이러한 상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주의깊게 본다면, 작품이 스스로 움직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즉, 상상꾼이 그 작품을 ‘어떻게 보이고자 하는가’가, 그대로 작품을 알아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상상이든, 상상꾼의 ‘의도’가 없으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 의도를 다른 이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상징’, 즉 수없이 많은 톱니바퀴의 존재들이다. 이런 톱니바퀴들이 상상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감각으로 안다면, 작품을 떠올리는 것도 한결 쉬워질 것이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 여기 있는 방법대로 안 해도 자기한테 재밌는 상상은 수없이 떠올릴 수 있다

지금까지 말한 건, 앞서 적은 대로 ‘내가 아마도 주로 상상해온 방법’이다. 나 역시 무의식 속에서 이것저것 상상을 ‘갖고 놀았던’ 게 대충 이런 구조로 이뤄졌단 걸 요즘들어 새삼스레 다시 깨닫게 되었다. 즉, 여기 있는 내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심지어 여기 있는 거랑 아무 상관없는 상상을 내가 직접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여기 이렇게 메모해놓는 건 ‘이게 나한테 중요하다’라 지금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내용은 일단 한 번 쓰면 머릿속에 잘 들어오며, 심지어 더 좋은 방법도 떠올리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나 역시, 그걸 기대하며 이렇게 글로 그 구조를 정리한 것이다. 지금 떠올린 내용만 최선이라 생각하지 않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상상엔 정말 많은 방법이 있다. 사람에 따라 맞는 방법이 있고, 여기 있는 방법은 그 중 ‘나한테’ 맞는 방법일 뿐이다. 상상을 떠올리는 데 최선같은 건 전혀 없으며, 여기 있는 대로 안 해도 자기한테 재밌는 상상은 당연히 떠올릴 수 있다. 여기 있는 방법이 뭐든 좋으니 ‘자기만을 위한 상상꾼’한테 자극이 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