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을 쓰기 앞서, 갑자기 ‘그러고 보니 내 동생이 어떻게 말하는지 적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모르는 사람은 모를 거고, 쓸 가치가 있다 생각했기에 조금 적어보려 한다.
다른 곳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내 동생은 정말로 자기 말하고 싶을 때만 남한테 말을 거는 성격이다. 사실 하는 말 자체는 충분히 많지만, 대부분이 자기가 신나서 중얼대는 소리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위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동생이라 한들, 자기가 필요하면 말한다. 그것도 몇십 분 간격을 두고 꼬박꼬박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어떤 말버릇인가
대충 그 말버릇을 간추려보자면 이러하다.
0. 억양이 다르다.
이건 뒤에 있는 말들을 하기 위한 전제라서 이렇게 말하는데, 다른 이들이 자연스러운 억양으로 말한다면(감정을 억양에 싣는다면), 내 동생은 당연히 남들이 이상하거나 말거나 자기 마음대로 말한다. 즉, 억양을 싣는 방법이 보통 이들과 다르다. 적어도 내 귀엔 그렇게 들린다.
사실 나도 이 억양이 왜 특이한지 쉽게 말하기 어려운데, 아무튼 보통 이들과 다르다 생각한다(오랫동안 같이 있다 보니 분간하기 어렵지만). 왜 이런 억양이 되는지는 뒤에서 다시 말하겠다.
- 1인칭이 자기 이름이다.
- ‘자기가 듣고싶은 말’을 한다.
- 존댓말과 반말에 아무 뜻을 두지 않는다.
순서대로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 1인칭이 자기 이름이다.
즉, 보통 이들이라면 ‘나는~’이란 식으로 말을 시작하는데, 내 동생은 ‘XX(동생 이름)이’라 자기를 지칭한다. 동생과 20년 넘게 같이 지내왔지만, 지금껏 걔가 ‘나는’ 이란 식으로 자길 일컬었던 걸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대체 왜일까 나 역시 이번 기회에 한 번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1인칭이 ‘다른 이들을 의식해서’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느 나라든 1인칭은 다른 이들한테 자기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의식하게 만드는 표현이고, 특히 일본은 1인칭이 다른 나라 말보다는 훨씬 폭넓은 편이다. 그리고 이 1인칭은 사람마다 하나씩만 쓰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나눠쓰는데, 이 ‘상황’을 보면, 결국 다른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해서 1인칭을 바꾸고 있단 걸 알 수 있다.
즉, 내 동생처럼 다른 이들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를 이만큼도 의식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1인칭을 ‘의식해서’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를 지칭할 때 당연히 자기 이름이 가장 편할 수밖에 없다. 괜히 ‘나’나 ‘저’를 나눠쓰는 것보단 훨씬 쉬우니까.
사실 내 동생이라 한들 길가에서 괜히 큰소리 안 지르는 정도는 할 줄 알지만, 적어도 다른 이한테 자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거의 의식하지 않는 걸로 보인다. 아마 생각컨대, 내 동생한텐 이만큼도 필요없기 때문이 아닐까.
- ‘자기가 듣고싶은 말’을 한다.
아마 이게 다른 이들과 큰 차이일 텐데, 보통 이들은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한다. 즉, 다른 이한테 전하고 싶은 말을 하지, 듣고싶은 말을 자기가 직접 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 동생은 다르다. 동생이 하는 말의 거의 대부분은 자기가 ‘듣고싶은 말’이나 그것과 비슷한 말이다. 예를 들어 배고프므로 누나가 슈퍼에 좀 가줬으면 할 때, 다른 이라면 ‘슈퍼 다녀와’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 동생은 ‘슈퍼 갔다올게’라 협박한다. 즉, ‘자기가 듣고싶은 말’로 다른 이와 의사소통하는 것이다(물론 모호한 말투도 좀 있지만, 대개 이런 느낌이다).
참고로 이 때 사정이 있어서 알았다 한 뒤 뒤로 미루면, 정기적으로 와서 같은 말을 한다. 동생 특유의 압박인 셈이다. 만약 보통 동생이라면 물론 누나가 이러진 않겠지만, 걔를 직접 보내버리면 어떻게 될지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항상 내가 간다(뭐든 마구잡이로 사오는 건 아니지만, 자기 먹고싶은 걸 대개 다 들고오는 것도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휴일 아침에 꼭 먹어야 하는 라면을 못 먹으면 나한테 와서 ‘라면 끓여줄게’라 협박한다. 자기 생활패턴을 기가 막히게 기억하고 있는 애인지라, 그걸 못 지키면 어떻게든 지키려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아침에 듣기 싫은 텔레비전을 엄마가 아이패드로 보고 있으면 ‘안 할 거예요’라 말한다. 이 존댓말에 관해선 아래에서 자세히 말하려 한다.
- 존댓말과 반말에 아무 뜻을 두지 않는다.
이 역시 보통 이들이라면 알기 어려운 대목이지만, 내 동생은 존댓말과 반말의 차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까닭은 위에서 죽 말해온 것과 같다 생각된다. 즉, 자기 뜻만 전하면 아무 상관없다 여기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뭐라 생각하든 걔한텐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니까.
즉, 동생은 누구한테 존댓말을 하고 반말을 해야 할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나인 나한테도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서 쓴다. 반말을 하기도 하고 존댓말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만약 자기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볶음을 내가 좀 살펴보고 있으면(고기가 남았는지 확인하려고), 그걸 귀신같이 알아채곤 ‘왜요’라 말을 건다. 물론 이건 자기가 먹을 돼지고기 건들지 말라는 말이지, 그 행동이 궁금해서인 게 결코 아니다. 동생한텐 정말 존댓말과 반말을 분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냥 뜻만 전해지면 그걸로 끝이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 아무튼 관심법만 익히면 된다 (아마도)
이렇게 쓴 글을 보면 알겠지만, 동생의 의사소통은 보통 이들과 크게 다르다. 자기가 필요할 때 아니면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잘 안 하며(아마 죽 비슷한 질문공세에 시달렸기 때문인 듯하다), 누구한테 말을 거는 것 자체를 잘 안 한다. 신나면 혼자 중얼거리므로 목소리를 들을 일은 많지만, 말을 거는 일 자체는 굳이 말하자면 드문 편이다.
이걸 다시 말하자면, 동생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동생과 살아온 지도 20년이 넘기에, 지금은 가족 모두가 어느 정도 관심법을 익히고 있다. 동생이 필요한 걸 미리 마련해두는 것이다. 아마 다른 집안에서 동생을 본다면 대체 뭘 바라는 건지 알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20년이 넘게 같이 있으면 어느 정도 빨리 알아챌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통 이들과 의사소통법이 참으로 다른 동생이지만, 아무튼 오래 살다 보면 그런 동생과도(조금)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전혀 쉽지 않으며, 특히 동생같은 사람을 처음 봤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얘가 대충 어떤 식으로 마음을 전해오는가를 보면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적어도 싸우는 일이 드물 만큼은.
다음엔 이 글을 바탕으로 조금 더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