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상상과 관련된 작품(소설이나 만화나 영화처럼)을 평가할 때 ‘구성이 탄탄하다’거나 ‘주제가 깊다’, ‘글을 잘 썼다’는 식으로 얘기할 때가 있다. 물론, 그건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을 평가할 때 그럭저럭 기준이 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상이 넘쳐흐를 만큼 많은 이 시대에서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상상 자체의 강한 개성, 그리고 무엇보다 ‘몰입할 수 있는지 어떤지’다. 다시 말하자면, 상상을 만나는 이들이 자기 멋대로 ‘해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지 어떤지가 전체 완성도보다 훨씬 중요하다.
여기에 관해,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말해보려 한다.
상상의 매력을 나타내는 건 그 작품의 ‘인력’
사실 우리는 남의 상상(작품)을 볼 때, 만든이, 즉 작가가 바라는 대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 작품을 좋아한다 한들 우리는 당연히 만든이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멋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이게 문예에 가까운 작품이라면 그나마 만든이의 바람대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말 자기 멋대로 상상하기 쉽다.
즉, 모든 작품은 만든이의 바람과 상관없이 ‘보는 사람 멋대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모든 대목을 만든이의 의도대로 ‘해석하게’ 하고 싶다면, 상상이 아니라 논문이나 보통 글, 텔레파시를 배우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우리가 상상을 좋아하는 건, 결국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즉, 상상의 가장 큰 매력은 완성도도 뭣도 아닌,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 상상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인력도 중요하다. 얼마나 다른 상상과 대볼 때 완성도가 낮든, 그 상상만의 ‘인력’, 즉 끌리는 힘이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 상상한테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상을 접하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완성도가 아니라, 그 상상한테서 인력이 느껴지는지 어떤지(즉, ‘몰입’할 수 있는지 어떤지)라 할 수 있다.
작품의 약점조차 ‘재해석’ 할 수 있는 인력의 힘
이 해석은 작품한테 정말 큰 힘이 될 수 있는데, 만약 이러한 요소가 있다면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는 고정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완성도만으로도 팬은 얻을 수 있지만, ‘인력’이 있다면 특히 작품을 좋아해주는 팬을 만들기 쉬워진다.
게다가 이러한 인력이 매력으로 바뀌어, 다른 이들이 작품을 접하려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해석의 자유이든 인력이든 작품한테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작품의 매력을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단 점에서 보면 퍽 중요하다 할 수 있다.
해석과 몰입은 언뜻 보면 동떨어진 말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이 둘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자기 멋대로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작품에 빠져들어야 하고(만약 그러기 어렵다면, 굳이 자기 멋대로 해석할 의욕도 안 날 것이다), 작품에 빠져들게 되면 얼마나 작품 속 모순이 크든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넘겨버리기 때문이다. 즉, 이 둘은 상호작용하면서 작품의 존재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 두 개념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까닭으로는, 아무래도 이런 요소가 중요하다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라 생각된다. 즐기는 사람 입장에선 그냥 보이는 것만 느끼면 되니까. 하지만 아무리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한들,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있다. 해석과 몰입 역시 그 중 하나다.
그리고 이 해석과 몰입은 작품의 매력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의 ‘약점’을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어떤 작품이든 완벽할 수는 없기에 시스템이나 작품 자체에 헛점이 있는데, 몰입이나 해석은 이러한 헛점을 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품에 세계관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모순이 존재한다 치자. 하지만 그 작품에 인력과 해석의 자유가 있다면, 이 작품을 좋아하는 팬은 이러한 모순을 어느 정도 넘길 수 있다. 그 작품이 ‘그 정도의’ 모순으로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눈에 어떻게 보이든, 팬은 그 작품에 몰입하고 있기에 모순을 자기 나름의 해석으로 ‘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모두 알고 있듯, 이 세상에 완벽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래도 깜짝 놀랄 만큼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 한들, 다른 이들이 무조건 몰입해주는 건 아니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순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특유의 인력을 높여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자유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력은 글을 갈고담는 것보다, ‘작품의 매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높이는 게 훨씬 쉽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 완성도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작품의 매력(=인력)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진짜 존재하는 것도 아닌 상상에 억지로 몰입하느니 차라리 완성도있는 작품을 보겠다고. 그거야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에 깊게 빠져드는 건, 그 작품의 매력이 무척 빼어나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하게 되기에, ‘인력’의 힘은 대단한 것이다. 아무리 뭔가에 푹 빠지는 게 어려운 이라 한들, 자기와 파장이 맞는 건 무엇이든 몰입할 수 있다. 비록 그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이라 할지라도.
앞서 말했듯, 사람이 어떤 작품에 몰입하느냐는 당연히 각자 다르다. 즉, 사람에 따라 자기한테 맞는 작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리 매니악하며 개성이 강하기 이를 데 없는 작품이라 한들, 그걸 반기는 이는 어딘가에 꼭 있다. 특히 요즘처럼 폭넓은 상상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흔한 작품은 이제 다 나왔기 때문에, 개성이 강한 상상이 주목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상상의 매력을 결정짓는 건 그 작품만의 매력(인력)이지, 완성도가 아니다. 물론 완성도도 큰 역할을 하지만, 그것만이 중요한 건 아니란 말이다.
그러므로 상상을 좋아하는 이들이 마음속에 둬야할 건, ‘어떻게 자기 매력을 좀 더 알기 쉽게 드러낼 수 있을까’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게 글을 더 잘 쓰려 연습하는 것보다 조금 더 ‘재밌고 보람있는’ 일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