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알기 힘든 점 – 자기 생각을 ‘대놓고 마음대로 드러낸다는’ 것

어쩌면 이건 나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이들조차 알아채지 못했을 수 있는데(그게 아니라면 나만 그럴 수도 있는데), 나는 지금껏 죽 굉장히 알기 힘든 게 하나 있었다. ‘자기 생각을 남한테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무척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이걸 깨달은 건 고작 몇 년 전이었다.

아마 보통 환경에서 나고자란 이라면 이 감각을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죽 자기가 ‘자기 생각을 대놓고 말하지 못하던’ 걸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억압이나 열등감, 트라우마와는 아주 딴판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란 환경 특성상 이런 문제는 자각했다 한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기 어렵다. 마치 유전으로 얻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알레르기처럼, 이런 증상은 타고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나는 ‘자기를 숨기고’ 있었는가

아마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을 어느 정도 숨기고 지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뭘 말하면 좋을지’ 몰라서였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나는 그렇게 소심한 성격도 아니었고, 오히려 남한테 잘 맞출 수 있는 성격이다. 실제로 대학교에 다닐 때, 수업 시간에 처음 만난 이들과 분위기를 잘 이끌어서 ‘사교성 좋다는 말 많이 듣죠?’ 비슷한 말을 모르는 이한테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남한테 맞추는’ 걸 잘 할 뿐이지, 자기 생각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데엔 어느 정도 벽을 두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내가 자라온 환경이 무척 특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꽤 어릴 적부터 자기 속내를 편하게 털어놓는 데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걸어놓고 있었다. 그 때 난 그런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의식 속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단 사실을 똑똑히 깨달을 수 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 자기 속내를 시원하게 털어놓았던 게 얼마나 있었던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살아온 환경이 특수했기에 ‘뭘 말하면 되고, 뭘 말하면 안 되는지’를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남들한테 맞추는’ 걸 어릴 적부터 무의식 속에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 자신도 이제야 깨달았을 만큼, 그러한 습관은 어릴 적부터 알게모르게 들여오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난 철이 든 뒤부터 다른 이한테 마음을 터놓고 지낸 적이 거의 없고, 실제로 ‘마음속에 있는 걸 잘 안 털어놓는 거 같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기억이 좀 모호하긴 하지만.

다른 이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다는 것

왜 자기 속내를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냐면, 자기 말이 ‘보통 이들’한테 어떤 식으로 들릴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나와 다른 이들 사이에 ‘상식차’가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지금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나한테는 별 거 아닌 말이라 한들, 다른 이한테는 무척 당황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고, 안 그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보통이 아닌 환경에서 자란 내 입장에선 그걸 분별할 수 없기에, 말을 고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기 속내를 시원하게 털어놓는 걸 ‘알아서 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이것과 비슷한 생각은 전부터 죽 지니고 있었지만, 자기한테 브레이크가 걸렸단 사실을 깨달은 뒤엔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이렇게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 것’에 관해 죽 말했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 즉 자기 마음을 털어놓는 게 한편으론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걸 습관들인 사람도 아닐뿐더러, 다른 이와 지내온 환경이 다르기에 ‘상식’ 역시 달랐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가 한 말이 어떤 식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기에, 당연히 겁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조금 그런 생각이 남아있다. 용케 여기까지 걸어오긴 했지만.

하지만 그 상식차, 즉 ‘보이지 않는 벽’이 무서운데도 이런 걸 하는 까닭은, 내가 더 이상 브레이크를 건 채로는 살 수 없겠단 걸 깨달아서였다. 다른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자기 속내를 죽 ‘숨기고 있는 듯한’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이젠 그렇게 지내는 것도 지긋지긋해서였다. 다른 이한테 맞춰줄 수 있단 건 내 장점이 될 수 있다 생각하지만, 그렇게만 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괴로운 일이었다. 나 역시 자기 속내를 털어놓고, 누군가한테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권리는 있었으니까.

이미 말했듯 그건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적어도 나한테는), 그래도 난 이게 내가 넘어야 할 벽이라 생각하고 있다. 자기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선, 자기 속내를 털어놓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나와 비슷한 마음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그걸 겪었고, 지금도 그렇다 생각하고 있다. 다른 이한테는 희한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난 될 수 있는 대로 한 발짝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게 지금 내 자신이니까.

글을 마무리지으며 – 그래도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래도 다행이라 여기는 건, 나는 지금껏 죽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왔고, 그 결과 전보다는 훨씬 멀리 와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자기 속내를 편하게 털어놓고 싶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만약 이 글을 읽는 이 중 자기 속내를 내보이는 게 무서운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 조금이나마 비슷한 존재가 있다는 걸 생각했으면 한다. 다른 이들이 자기 마음을 편하게 털어놓는 것과 대볼 때 자기 처지는 부조리하다고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세상엔 당신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이 어딘가에 꼭 있다. 아주 느려도 좋으니 천천히 자기 생각을 말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기가 처음 있던 곳보다 멀리 와있단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