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소수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걸 깨달은 이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상이란 단지 즐기는 것만이 아닌, ‘소수자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이들한테 그럴 필요는 없지만, 상상이라는 도구를 써서 ‘소수자’를 드러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이건 무척 중요한 뜻을 지닌다. 상상에선 ‘현실에선 할 수 없는’ 것이라 한들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주류매체만큼 ‘소수’와 걸맞는 매체도 없다

사실, 소수자, 그것도 ‘자기를 뺀 비슷한 이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존재감이 없는 소수자가 상상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자기같은 소수자가 있을 곳은 대중문화, 즉 주류문화에서 찾기 어려워서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기를 ‘소수자’라 생각하는 이들, 특히 ‘자기 이야기’를 하는 매체를 찾지 못한 이들은 비주류문화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라면 자기 이야기도 할 수 있을 테니까. 크게 눈에 띄지도 않으면서 주류와 달리 ‘자유로운’ 비주류문화는, 소수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특히 주류문화에서 ‘자기가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찾지 못한 소수자는 비주류문화로 눈길을 돌린다. 거기서라면 적어도 주류문화보다는 자기와 가깝게 느껴지는 인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비주류문화에선 ‘이런 인물이 현실에 있을 리 없다’는 말을 들을 만큼 기발하거나 극적 사정을 지닌 인물이 자주 나오는데, 이건 어떻게 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비주류인물, 즉 소수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당사자, 즉 비주류인물 입장에선 ‘현실 속 상식’대로 행동하는 주류인물보다 이런 비주류인물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안 보인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소수자다

소수자는 낱말로만 보면 무척 특별한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자기 생각과 맞는 매체가 지금 어디에도 없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 역시 소수자라 할 수 있다. ‘자기와 비슷한 감성이나 의견이 잘 안 보인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도 물론 소수자다. 소수자란 결국 ‘자기 생각과 맞는 이를 찾는 게 어려운 사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와 비슷한 환경에 놓인 이를 찾기 힘들다면 그 역시 소수자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잘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도 소수자다.

사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소수자 중 한 명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다. 나 역시 자라온 환경상 ‘자기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게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엔 여러 배경을 지닌 이들이 있지만, 아무리 살아온 배경이 다르다 한들 ‘서로 비슷하다’란 것만 알면 별 문제는 없다. 그렇기에 난 상상에서 주로 다뤄지는 ‘특별한 배경이 있거나, 아니면 보통 이들과 조금 다른 사람’, 특히 여자애들을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이 서로 비슷하니까.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지만, 상상 속에서 주로 다뤄지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성격이나 배경을 지닌 인물’, 특히 여자애들은 결코 ‘현실감이 없다’고만 잘라말할 수 없다.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이들과 다른 삶을 살거나 다른 길을 걸으려 하는 사람 입장에선 그 캐릭터들이 훨씬 감정이입하기 쉬워서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다. 상상은 보통 이들을 위한 것이지만, 그와 함께 ‘소수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수자들 입장에선 보통 이들을 위한 ‘주류작품’보단 자기들과 좀 더 가까운 ‘비주류작품’에 이끌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비주류작품을 사랑하는 이들 중엔(여러 모로) 별난 이들이 많은지도 모른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 어떤 뜻으로든 ‘소수자’를 다루는 작품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짧게 정리해봤지만, 물론 상상은 보통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보통 이들 역시 상상을 ‘즐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상상을 좋아하는 이들 중엔, ‘주류문화’에선 아무도 자기들 이야기를 안 해 주니까, 그나마 자기들 이야기를 해주기에 가깝게 느껴지는 비주류작품을 좋아하는 소수자들도 분명 있다. 아마 내 짐작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단 훨씬 많을 것이다.

즉, 상상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소수자 입장에선 ‘자기들 이야기를 해주고, 자기들 생각에 맞는 걸 보여주는 유일한 매체’이기도 한 것이다. 소수자들 입장에서 자기들한테 딱 맞는 작품을 할 수 있는 매체는 무척 반가운 존재다. 지금 상상은 그러한 소수자들의 마음 역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이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상을 깎아내리거나 우습게 볼 때가 있는데, 앞으로 상상의 ‘소수자들을 위한’ 모습은 점점 더 도드라지지 않을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진 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소수자’들은 언젠가 상상이 지닌 그런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