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아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만화타임 KR코믹스는 다른 만화보다 조금 더 비싼 편이다(800엔대. 참고로 일반 만화는 400~600, 조금 비싸도 700엔을 넘지 않는 편이다). 비록 한 해에 한 번 나오는 게 기본이긴 하지만, KR코믹스를 안 사는 사람이라면 이걸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비싸냐고. 값을 내리면 더 많은 이들이 사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그래야 더 ‘이익이 가지’ 않겠냐고.
사실, 우리나라에서 KR코믹스의 인지도가 그렇게 안 높은 까닭 역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한 권에 만원이 살짝 넘는 책을 사려면 ‘애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KR코믹스를 사면서, 돈이 아깝다고 생각해본 적이 정말로 없다. 물론 비싸서 사기 어려울 때는 있지만, 그래도 KR코믹스를 사는 건 항상 즐거운 일이고, 언제나 고맙다 생각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특히 KR코믹스를 자주 사지 않는 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비싼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팬층을 굳게 만들고, 그린이, 즉 작가진들이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다.
KR코믹스가 다른 레이블보다 비싼 까닭
일단 KR코믹스가 왜 다른 책보다 비싼지 알아보자. KR코믹스는 다른 만화(대개 B6. 보통 만화 크기)와 대볼 때 조금 더 크다. 몇몇 특이한 종류, 예를 들어 일반만화를 주로 다루는 포워드 계열 작품들을 빼고는 A5판형이기 때문이다. 대신 네칸만화라서 보통 만화보다 얇기 때문에(한 해 분량을 모아도 120P밖에 안 된다. 참고로 일반 만화는 160P쯤 되는 게 대부분이다), 생각보단 책장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 편이다.
사실 이것만이라면 다른 책보다 비쌀 까닭이 없다. 네칸만화 대부분(특히 전문 출판사에서 나오는 작품)은 A5판형일 뿐더러, 이러한 판형을 지닌 작품이라 한들 KR에서 나오지 않는 작품은 그렇게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즉, KR이 다른 레이블 작품보다 비싼 덴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는 뜻이다.
KR코믹스는 책 자체도 크지만, 종이질 역시 꽤 괜찮은 편이다. 경쟁 레이블이 판형이나 다른 건 거의 비슷하지만 KR보다 조금 싼 것 역시 이 종이질 때문이다. KR은 다른 만화와 달리, 보기 편하고 질이 좋은 종이를 쓰고 있다. 이러한 종이질이 있기에, KR 특유의 매력있는 비주얼이 돋보이는 것이다.
물론 책값이 비싼 까닭은 이것만이 아니다. KR코믹스는 다른 레이블과 달리 컬러페이지가 많은데, 대개 만화에 들어있는 컬러페이지가 많아야 4쪽인 것과 대볼 때, KR은 8쪽이나 되는 컬러페이지가 있다(앞서 말한 몇몇 특이한 종류는 빼고). 게다가 이 컬러페이지엔 모두 단행본용으로 새로 마련된 그림들이 들어가 있다. 즉, 인쇄비용도 인쇄비용이지만 그린이한테 들어가는 고료 역시 다른 만화보다 더 비싸단 말이다. KR코믹스가 다른 레이블보다 비쌀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원래 단행본으로 나오는 작품엔 그린이가 여러 가지 그림을 새로 그려넣을 때가 많은데, KR코믹스는 특히 이러한 경향이 짙다. 앞서 말한 컬러페이지 및 작품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만화일 때도 있으며, 빠질 때도 있다), 그린이의 말, 그리고 책 뒷면과 책날개(앞뒤 모두. 한 쪽이나 두 쪽 모두 없을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알맹이(책 커버를 벗긴 뒤 남은 표지) 앞뒤 모두 새로 그림이 들어가는 것이다. 일단 고료가 안 나오는 듯한 알맹이를 빼더라도, 다른 만화와 달리 새로 들어가는 일러스트가 꽤 많은 편이다. 다른 만화는 책날개에 자사 레이블 단행본 정보가 들어갈 때도 많지만, KR은 책날개 모두를 ‘그 작품만을 위해’ 쓰기 때문이다. 여기에 관해선 나중에 다시 말할 때가 있을 것이다.
즉, KR코믹스가 다른 만화보다 비싼 건 큰 판형 및 종이질(비주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함+보통 만화보다 칸이 작은 네칸만화라는 특성상 책이 큰 게 더 보기 편하기 때문), 그리고 컬러페이지를 비롯해 새로 들어가는 일러스트가 다른 만화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판형은 철두철미 ‘그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쓰인다. 다시 말하자면, KR은 다른 레이블보다 작품을 패키징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싼 값이라고 ‘무조건’ 팔리는 건 아니다
물론, 누군가는 여기까지 듣고도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아무리 작품에 도움이 된다 한들, 비싸면 결국 아무도 사주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KR코믹스는 10년 전부터 죽 이러한 판형 및 값이었으며, 인기작은 ‘제대로’ 잘 팔리고 있다(어느 레이블이든 인기작과 그렇지 않은 작품은 판매량이 나뉘는 법이다). 덕택에 KR코믹스는 다른 만화보다 인세가 많은 편이며, 이 덕택에(재판으로 얻은) 인세로 하고싶은 걸 하는 작가 역시 존재한다(이건 예전에 지나가는 말처럼 본 것이라 아주 확실하진 않지만, KR이 다른 만화보다 새로 그려지는 그림이 많다는 것=고료가 많다는 걸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즉, KR은 다른 만화보다 비싸지만, 그 비싼 값에 걸맞는 ‘질’이 제대로 갖춰져있다는 것이다. 비주얼을 중시하는 KR답게 새로 그려진 그림도 많을뿐더러, 그러한 요소가 작품을 ‘매력있게’ 보이는 데 한몫하고, 무엇보다 그린이한테도 큰 도움이 된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모든 요소들이 한데모여 ‘KR코믹스 및 거기에 있는 작품 모두’를 상징하는 것이다. 즉, KR을 비싸게 만드는 요소는 ‘KR의 개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다른 만화 레이블은 이렇게 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한 해에 한 번 꼴로 나오는 책이기에, 비싸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어차피 자주 나오는 것도 아니고, 팬이라면 어느 정도 비싸더라도 ‘자기한테 필요한 작품이다’란 걸 알기에 기쁘게 돈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팬은 웬만큼 터무니없이 안 비싼 이상, 자기가 내는 돈이 그 물건의 가치와 걸맞는다는 생각만으로 충분히 지갑을 열 수 있는 이들이다. 나 역시 KR코믹스를 정가로 사고 있으며, 그 때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애초에 그 KR의 개성을 보고 싶어서 책을 사는 것이기도 하고.
사실, 아무리 그 책이 싸다고 한들, 책을 사려는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작품이라면’ 책을 살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다. 물론 조금 차이가 날 수는 있겠지만, 그 차이는 ‘그 작품을 살 가치가 있다 여기는’ 팬과 대보면 아주 약하리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레이블과 차이를 만들어서라도 ‘어느 정도 비싸게’ 파는 것이 훨씬 이득일 것이다. 수익도 수익일 뿐더러, 그렇게 해서 ‘개성’을 만들어 레이블 자체의 팬을 끌어모을 수 있으니까. 그것도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을, 그 레이블의 작품이라면 뭐든 관심을 갖는 ‘고정팬’을.
뒤에 다시 말하겠지만, 이러한 ‘고정팬’을 만드는 건 ‘그 레이블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는’ 유동독자와 대보면 훨씬 고마운 존재다. 무엇보다 ‘자기들의 작품을 사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집단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어떤 작품이든 상관없는 유동독자보다, ‘그들의 작품을 반드시 살 가능성이 높은’ 고정팬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짙어질 것이다. 이미 수많은 작품들이 세상에 나와있는 시점에서, 가장 확실하게 이익을 내려면 고정팬을 만들어 그들한테 작품을 파는 게 가장 좋으니까. 자기들이 아무리 다른 작품보다 비싸게 판다 할지라도, 그 가치를 받아들여줄 수 있고, 오랫동안 자기들 작품을 눈여겨볼 수 있으며 자기들의 ‘신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굳건한 팬한테.
결국 어떤 작품을 팔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조건 싸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한테 파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앞서 말한 대로 ‘자기들이 내는 작품에 무조건 관심을 갖고, 대부분 사줄 수 있는 고정팬’을 확보하는 것이다. 팬들은 당연히 ‘자기가 그만한 돈을 낼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면 뭐든 돈을 낼 채비가 되어있다. 비싼 만큼 책이 튼실한데, 왜 그 값을 마다하겠는가? 게다가 자기가 보고 싶은, 즉 취향에 맞는 작품을 내주는 몇 안 되는 레이블인데.
그래서 KR코믹스는 ‘조금 비싸도’ 되는 것이다. 그 판형과 그 컨셉이야말로 KR의 상징 중 하나니까.
글을 마무리지으며 –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면 ‘어느 정도 비싸도’ 큰 문제가 없다
KR코믹스는 단순히 비싸기만 한 책이 아니라, ‘이 책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할 만큼 꼼꼼하게 만들어진 ‘체험’이다. KR코믹스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기믹이 존재하고, KR코믹스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존재한다(판형은 물론, 작품 경향 자체로도). 그리고 팬(레이블의 팬이든 작가의 팬이든)은 그 경험을 위해 기꺼이 돈을 낸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여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무리 값이 싸진다 한들, ‘지금 판형’이 없어지면 팬들은 무척 서운해할 것이다. 고정팬은 싼값에 붙는 게 아니라, ‘그 레이블의 신념 및 방향성’으로 붙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작품은 ‘많은 이들한테 사기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이들한테 제대로 닿게 하는 것’이 더 중요시될 것이다. 가면 갈수록 폭넓은 작품이 늘어나는 지금, 그런 식으로 차별화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작품을 집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즉, 많든 적든 고정팬을 만드는 게 무척 중요해진다. 그 고정팬을 축으로 작품(레이블)이 굴러가게 되니까.
그렇다면 괜히 값을 싸게 하는 것보다, KR코믹스처럼 ‘살 사람을 한정짓기 위해’ 어느 정도 비싸게 하는 것 역시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정말 매력있는 작품은 팬들이 입소문을 낼 수밖에 없고, 그렇게 알려지면 누구나 ‘그 값으로’ 책을 살 테니까. 물론 이렇게 돌아온 인세가 출판사(KR편집부) 및 작가한테 큰 도움이 된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자기들의 개성이 평가받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특색있는’ 작품을 내놓는 데에도 대담해질 수 있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고정팬’, 즉 레이블한테 도움이 되는 팬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상상, 즉 작품은 단지 싸다고 해서 많은 이들이 찾는 게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세상 모든 작품은 무척 싸거나 공짜였을 것이다. ‘정말로 필요하지만 찾기 드문 것’이라면, 사람들은 대개 누구나 그 가치에 걸맞는 값을 낼 각오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이 모여, 레이블한테 있어 가장 고마운 ‘고정팬’이 만들어진다. 여기까지 온다면 아무리 취향을 타는 레이블이라 한들 ‘먹고사는’ 게 한결 편해질 것이다.
그러한 ‘체험’을 좋아하는 고정팬들을 만들 수 있다면, 누구나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하면서 매력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죽 자기네들의 방식으로 책을 내고 있는 KR코믹스처럼.
참고 : 이 뒤에 이런 책이 나와있단 사실을 알게 됐다(일본어). 제목대로 상품의 값을 올리면 판매량도 좋아진다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조금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KR코믹스에도 어느 정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