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관한 내 생각

오늘은 어떤 매체에서든 주로 다뤄지곤 하는 ‘일상’에 관해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여기에 관해선 전에 나름대로 생각하던 게 있었지만, 기회가 없어서 미처 정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 이 ‘일상’의 해석이 폭넓어졌단 걸 느끼기에, 자기 생각을 확인할 겸해서 짧게 글을 써보려 한다.

참고로 이 글은 여기 (앞편/뒤편) 에 있는 KR코믹스 편집장 인터뷰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직접 읽어보면 ‘일상의 매력’에 관해 이것저것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일상=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길

‘일상’은 보통 사람들이 가볍게 넘기기 쉽지만, 사실은 어디에나 있고, 그렇기에 소중한 것이다. KR코믹스의 주된 소재, 대부분의 교류형 게임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쓰는 곳, 그리고 고스트와 유저가 만들어가는 나날 역시 이 ‘일상’이다. 일상만큼 ‘관계’ 및 ‘교류’와 깊은 관계를 맺는 장면은 없다는 말이다(실제로 이 ‘일상’은 등장인물들이 교류하며 관계를 맺는 장면을 일컫는다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데 이 일상을 가만히 보면, 결국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길’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걸 알 수 있다. 대개 드라마틱한 장면은 어쩔 수 없이 방향성이 비슷할 수밖에 없는데, 이 ‘일상’에선 만든이의 개성, 그리고 자기만의 세계관이 가장 잘 드러나게 된다. 드라마틱한 전개와 관계없는 ‘평온한’ 장면이 주로 이뤄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만든이가 세상을 보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평범한 나날’의 상대성 – 작품 속 세계관에 따라 ‘보통 나날’은 달라진다

이러한 ‘일상’은 보통 이들에게 ‘평범한 나날’과 같은 뜻이겠지만, 이 ‘평범하다’라는 말 역시 각 무대설정에 따라 달라진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지내는 이들과 전쟁으로 엉망진창이 된 세상에서 지내는 이들의 ‘보통 나날’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상은 ‘그 세계관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한 모습’이지, 결코 ‘별 것도 아닌 평범한 나날’들이 아니다. 사실 이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사람에 따라 ‘자기한테 있어 보통의 나날’을 보내는 모습은 무척 달라질 수 있다. 밖에서 죽 지내는 이와 병원에서 죽 지내는 이의 ‘보통 나날’이 다른 것처럼.

즉, 일상이란 ‘그 세계관에서의 상식’이지, 결코 ‘평온한 나날’만을 다룬 장면이 아니다. 그 세계관에서 ‘특별하지 않은 보통 나날’들을 다룬 것을 바로 일상이라 하는 것이다. 그 일상에선 매일같이 벌어지는 전쟁으로 집들이 부서질 때가 있을지도 모르고, 하루종일 병원 안에서만 지내야만 하는 나날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그 세계관에서 그러한 일은 결코 ‘특별한’, 즉 기억에 남는 날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건 그 세계관에서 정말로 ‘매일’ 일어나기에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일들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일상’은, 작품 속 인물들에게 ‘상식’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즉, 이 일상에서는(작품 속 세계관을 기준으로 할 때) 말도 안 되는 일이나 비현실에 가까운 일이 일어나는 게 드물고, 대개 그들의 짐작을 벗어나지 않는 일만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 작품의 개성이나 매력을 알려면, 이러한 ‘일상’을 깊게 보는 게 가장 빠르다. 여기에서 이뤄지는 ‘상식’을 기준으로 ‘비상식’에 가까운 전개가 이어지는 것이므로.

글을 마무리지으며 – 겉보기와 다른 ‘일상’의 깊이

참고로 나는 이 글을 쓰려고 대충 생각을 정리할 때, ‘이런 나날이 죽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작품 속 인물들이 무의식 속에서 여기는 모습이야말로(우리 눈에 평범해보이는지 어떤지는 둘째치고) 일상이 아닐까, 란 생각도 했다.

물론, 예를 들어 전쟁에서의 ‘일상’은 구성원들 입장에서 최선은 아니겠지만(구성원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평온한’ 일상을 마음속으로 바랄 것이므로), 어쨌든 ‘이 이상 위험한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 여길 수 있단 점에서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즉,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 이상 위험해지진 않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일상이 아닐까, 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좀 모호한 느낌이라서, 일단 위에선 뺐다. 각 작품 속에서의 ‘일상’은 나 역시 관심이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아직 생각해야 할 게 많다. 이렇게 보면 일상이란 게 가벼이 느껴지는 것과 달리 얼마나 깊고 묵직한지 다시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