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나는 상상이 재밌는 까닭이란 ‘인식의 비틀림’에 있다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사람이 캐릭터가 되는 순간이란, ‘보통 사람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순간이라고도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 궁금한 걸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대체 사람의 인식을 비트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여기에 관해선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이번에 말하려 하는 건 제목대로 나이나 성별, 혹은 직업처럼 ‘가장 고정관념이 강한’, 그리고 ‘가장 모호한’ 대목을 비트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왜 그 인물의 인식을 비트는지는 뒤에서 자세히 말하려 한다.
‘나이, 상상, 그리고 직업’이 사람의 인식을 비틀 수 있는 까닭
앞서 사람의 인식을 비트는 요소로 나이 및 성별, 그리고 직업을 들었는데, 이 세 가지 요소는 고정관념도 강하지만, 그 이상으로 ‘아주 모호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누구나 구별하기 쉽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구별하기 어려운 요소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나이는 언뜻 보기에 쉬워보이지만(자기 나이를 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사실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모호한 개념이다. 특히 빠른 생일 개념이 있어서, 학교에서의 나이감각과 졸업한 뒤의 나이감각이 묘하게 달랐던 우리나라는 더더욱 그렇다. 즉, 빨리 입학하는 것처럼 ‘사회에서 인식하는 나이’와 ‘실제 나이’가 다르면 이 ‘나이’란 개념은 무척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모호한 까닭은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나잇값 못한다’는 말을 듣곤 한다. 즉, 아무리 나이가 많다 할지라도 그 나이에 걸맞는 행동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센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억압이나 열등감의 정도에 따라 ‘그 나이와 맞지 않는’ 걸 바라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응석부리고 싶은 욕망이 남아있지만, 유독한 부모 때문에 이런 걸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죽 ‘응석부리고 싶다’는 어린아이의 욕망을 가지게 된다. 결국 나이와 실제 정신이 맞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가야 하는 삶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있기에, 못 본척하는 ‘자기 모습’
성별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자기가 ‘어떤 성별이 되고 싶은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그 성별의 ‘인식’, 즉 사회의 상식에 걸맞는 존재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즉, 우리는 자기가 어떤 성별이고 싶은지에 관한 자각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가 그 성별에 걸맞은 존재인지에 관해선 장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여성이라면 ‘얌전해야 한다’는 사회의 인식이 있지만, 대다수의 여성은 자기가 저렇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남성은 ‘언제나 강해야 한다’는 사회의 인식이 있지만, 아마 대다수의 남성 역시 이렇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자기가 ‘어떤 성별이다’란 자각이 있다 한들, 자기가 정말로 ‘그 이미지에 걸맞은’ 존재인지에 관해선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자기가 ‘그런 성별’이라 믿고 있기에,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자기 진짜 모습’ 역시 존재한다. 여성이라 한들 폭력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남성이라 한들 약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성별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에, 그런 감정을 못 본 척하거나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 믿으려 할 때가 많다. 자기한테 그런 데가 있다는 사실마저 부정하려 드는 것이다.
직업 역시, ‘선입견’을 바탕으로 인식을 비트는 요소 중 하나
직업 역시 이러한 ‘인식의 비틀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직업에 항상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다.
예를 들어 변호사처럼 번듯한(것처럼 보이는) 직업이라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굳을지도 모르고, ‘저 사람이라면 놀 줄도 모를 거고, 자기 사적 감정도 잘 안 드러날 거다’라 믿을지도 모른다. 동네 건달을 본다고 하면 ‘저 사람이 진심으로 울 수나 있을까’라 생각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무척 신성한 존재라면 ‘인간미라곤 전혀 안 느껴질 거야’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 역시, 당연히 우리가 생각지 못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직업만 가지고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인 것이다. 직업은 어디까지나 ‘직업’일 뿐, 그 사람의 성격이나 경향까지 보여주는 건 아니다. 즉, 이러한 인식을 비틀기만 해도 충분히 우리는 놀라움과 신선함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 세 가지 요소를 섞어, ‘인물’을 ‘캐릭터’로서 깊이 그린다
지금까지 이 세 가지 요소와 ‘인물의 인식을 비트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셋은 하나씩만 써도 무리가 없지만 두세개쯤 섞어서 써도 좋다. 오히려 이러한 요소들을 섞는 게 신선함과 충격을 더해줄 수도 있다. 인식의 비틀림은 짙으면 짙을수록, 충격이 크면 클수록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세 가지를 섞으면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상상조차 이뤄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인물의 인식을 비트는’ 설정은, 그 인물을 좀 더 깊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인식을 비트는 설정을 쓰면,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에 관해 깊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래 전부터 사랑받은 고전작품을 보면, 이렇게 ‘인식을 비트는’ 인물설정이 꽤 많이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이러한 인식의 비틀림은 상상뿐만 아니라, 현실 자체를 그리는 수단으로서도 뛰어나다는 말이다.
다음엔 사람이 캐릭터로 바뀌는 순간 자체에 관해 좀 더 이야기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