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에 관해 말하는 게 ‘부담’되는 까닭 – ‘주목’받는 두려움

저번에 ‘자기에 관해 말하지 못하게 되면 자기를 숨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는데, 사실 이것 말고도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두려운 까닭은 또 있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면, 어쩔 수 없이 ‘주목’받고 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보통 가정에서 자란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특별해진다. 그러한 까닭으로, 나는 바라든 안 바라든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주목’받는 불편함

나는 옛날부터 자기 이야기, 즉 동생을 비롯한 가족이야기를 꺼내는 게 묘하게 불편했다. 물론, 하기 싫었던 건 아니다. 전에 말했던 대로, 나는 자기 이야기를 시원하게 꺼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건, 자기가 이런 말을 꺼내면 주목받을 게 뻔해서였다. 주목받는 것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지금 이렇게 인터넷상에 자기 이야기를 줄줄 털어놓고 있지만, 사실 이러기로 마음먹는 데에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공백기 전, 그러니까 10년 전 중학생 때 인터넷에서 활동할 때도 내 이야기를 입에 담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어릴 때 자기 집안 일을 입에 담으려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도 안 묻는데 굳이 털어놓을 까닭이 없어서였다. 이건 인터넷상은 물론이며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내 동생과의 나이차가 꽤 있기 때문에(네 살, 사회로 보면 다섯 살 차이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동생을 ‘특별하게’ 볼 까닭이 나한테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동생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강하게 의식하게 된 건 고등학교로 넘어와서부터니까.

나는 고등학교 즈음부터 인터넷 활동에서 거리를 두게 되었는데, 그 때쯤부터 자기 동생에 관한 이야기, 즉 ‘자기 이야기’를 강하게 의식하기 시작했다. 이 땐 동생도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기에,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또한 동생이 가족한테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도 이쯤부터다).

하지만 나는 자기 이야기를 꺼내야 할 즈음에도, 그걸 입에 담는 데 묘하게 저항감을 갖고 있었다. 중학교 때까지 이 이야기를 제대로 입에 담은 적이 한 번도 없다시피한데다가, 다른 이들이 자기가 할 말을 얼마나 불편해할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나한테 그런 이야기는 ‘하면 괜히 주목만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에도 말하겠지만, 나는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많이 무서웠던 것이다.

어째서 자기만 그런 ‘용기’를 내야 하는가

아마 전에도 비슷한 얘길 했겠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 집안 이야기를 꺼내는 데 그렇게 망설일 필요도, 용기를 낼 필요도, 각오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특히 그 집안이야기가 지극히 평범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가 집안, 즉 자기이야기를 꺼내려면 어떤 ‘평범한’ 얘기를 하든 전혀 평범하지 않게 되어버리고 만다. 나한테는 흔한 이야기라 한들, 다른 사람들한텐 전혀 평범하지 않아서다. 게다가 이런 걸 입밖에 내면, 나는 순식간에 ‘특이한 존재’가 된다. 고작 자기이야기 하나 꺼낸 걸로 ‘특이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는 겪어보지 않으면 잘 안 와닿을 것이다.

이런 까닭이 있기에 나는 자기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 때문에 자기가 주목받는 건 불편하기도 했지만 많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털어놓는 건 오래된 바람 중 하나였지만, 나는 인터넷에서조차 그걸 시원하게 털어놓는 게 어려웠다. 자기가 별 거 아닌 글을 올린다고 한들 모든 이들이 주목할 것만 같아서였다. 실제로는 물론 전혀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다(애초에 이 블로그, 아니 나를 아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다).

그런 식으로 살다 보니, 나는 ‘자기자신’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무서워졌다. 안 그래도 다른 이들과 ‘다른’ 자기가 항상 불안했는데, 이런 식으로 주목까지 받게되는 건 부담되어서다. 그 결과는 앞서 말한 것과 같다. 자기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를 ‘숨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나는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기에 느끼게 되는 불편함

사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주목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놓인 환경은 결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한테 누가 생각해도 거리가 먼 환경에 놓여있으니, 그런 말을 꺼내면 주목받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굉장히 내 바람과 다른 일이라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묘한 분위기가 되는 상황에서, 누가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어떤 행위가 금지당하거나 기피당하면 더더욱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런 불편한 분위기를 느꼈기에 더더욱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싶어졌다.

내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한 까닭 중엔, 다른 이들이 ‘저 사람 관심받고 싶어서 저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단 게 무서워서, 란 것도 있었다. 앞서 말한 대로, 자기 이야기를 꺼내면 어쩔 수 없이 주목받게 되기 때문이다. 고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이들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그런 생각을.

하지만 난 그런 관심은 어떻게 되든 좋으니, 그저 ‘자기를 위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기 삶을 글로 쓰는 것만으로도 눈치보는 것만은 하기 싫어서다. 나한테는 자기 생각을 정리할 권리가 있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걸 털어놓을 권리가 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로 별걸 말하는 건 아니지만(앞서 쓴 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자기 얘길 쓰는 걸 망설일 만큼 그런 ‘분위기’가 무서웠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사람에 따라 이 카테고리(만년소녀)에 있는 글은 불편할지도 모르고, 위화감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얘길 하고싶은 만큼 털어놓지 못하는 삶처럼 숨이 막히는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다 죽고싶진 않기에,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걸 편하게 이런 식으로 남겨볼 생각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