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갑자기 어제 떠오른, ‘동생 때문에 가장 열받았던 때’ 이야기를 할까 한다. 어쩐지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열받았던 때’라곤 했지만 이젠 10년 전 이야기고, 나 자신도 이젠 별 생각이 없다. 그래도 여기에 쓰는 건 ‘자폐를 지닌 동생이 있다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란 걸 한 번 말해보는 것도 괜찮으리란 생각과, 그냥 쓰고 싶어져서란 참 별 거 아닌 생각 때문이다. 게다가 난 당시에 굉장히 화가 나있었던 것이다. 만약 나와 같은 까닭으로 화가 날지 모르는 자폐동생을 지닌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이렇게 적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때는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즉 16살 때)쯤이었다. 이젠 정말로 10년 전쯤 일인 셈이다.
그 때 엄마는 보험 쪽에서 일할 생각으로 노트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일을 안 하게 되면서 나한테 노트북을 주게 되었다. 당시 내가 쓰던 컴퓨터는 그 때도 많이 안 좋은 사양이었는데, 윈도우 98 Se인 건 물론 하드디스크 용량이 4GB밖에 안 되는 아주 오래된 거였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99년)에 산 다음 정말로 10년 동안 써온 골동품 중의 골동품이었다. 당연히 쓸 때 무척 불편했단 건 안 말해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노트북을 새로 얻게 된 게 무척 기뻤고, 한 달동안 노트북 덕분에 무척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 때 나는 컴퓨터를 갖고 동생과 자주 싸웠는데, 덕분에 삶이 훨씬 더 편해졌을 정도였다. 물론 동생 역시 느린 컴퓨터보다는 성능이 훨씬 나은 노트북을 바랐고, 이에 따라 노트북을 만지게 되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때는 밤중이었는데, 나는 동생한테 노트북을 맡긴 다음 슈퍼에 다녀왔다. 물론 동생이 좋아하는 콜라도 끼어있었다. 동생은 콜라를 마시며 노트북을 만졌고, 그러다가 키보드 쪽, 즉 본체 쪽에 콜라를 쏟고 말았다.
참으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연히 나는 어떻게든 해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노트북은 물론 맛이 갔다. 이 때 내가 얼마나 좌절했는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뒤에 가서야 키보드에 덮개를 씌울 수 있단 걸 알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있었던 일
사실 이 뒤부터는 동생과 관련이 없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남은 일도 마저 말하려 한다.
나는 이 뒤, 당연히 노트북을 고치는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노트북을 고치지 않았다. 대신 고치는 척 나한테 속이면서 노트북을 중고로 팔아버린 것이다. 아는 아줌마가 수리한 다음 팔게 된 걸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이걸 알게 된 건, 노트북이 아줌마한테 넘어간 뒤였다. 물론 나는 여기에 무척 배신감을 느꼈다. 엄마는 분명 ‘고치려고’ 노트북을 아줌마한테 줬다 말했기 때문이다. 만약 엄마가 사실대로 고칠 여력이 없어서 팔 거라 말했다면, 나도 이렇게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즉, 이걸 다시 말하자면 나는 그 때 엄마가 거짓말을 해서 화가 났다는 말이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 동생하고는 별 관계없는 데서 화가 났다고 하는 게 더 맞다. 물론 그 계기를 만든 건 내 동생이 맞지만.
‘털어놓을 곳’이 있다는 것
지금껏 동생 때문에 가장 화났던 순간을 길게 말했는데, 결국 위에서 말했듯 동생보단 엄마한테 더 화난 순간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 때, 동생 때문에 굉장히 억울했던 건 사실이다. 만약 내가 저질렀다면 그렇게 억울하진 않았을 게 틀림없으니 말이다.
뒤에도 죽 말하겠지만, 나는 동생이 보통 애가 아니라면 안 겪어도 될 일에 고민할 때마다 묘하게 억울한 마음이 들곤 했다. 만약 나 때문이라면 모를까, 다른 누군가 때문에(그게 가족이라 해도) 자기가 귀찮은 일을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안 해도 되리란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이런 마음을 어디에 털어놓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그래서 이렇게 쓰고 나니, 나는 속이 시원해졌단 걸 느낀다. 물론 이젠 하도 오래된 일인 데다가, 새 컴퓨터를 장만했기에(09년 이야기지만) 정말로 별 생각은 안 드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한테 중요한 건 그 일을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맨 처음엔 마음속 찌꺼기를 좀 더 길게 털어놓으려 만든 블로그였는데, 이런 식으로 쓰인단 걸 생각하면 묘하게 재밌어진다.
글을 마무리지으며 – 노트북 키보드 위에 커버는 꼭 씌우도록 하자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폐를 지닌 가족이 있는 분이라면 노트북을 산 다음엔 꼭 커버를 씌우도록 하자. 사실 어쩌면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이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커버가 필요하단 걸 일이 저질러진 뒤에 알았지만, 다른 분들은 그렇게 안 되었으면 한다. 물론 이건 자폐를 지닌 가족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노트북을 갖고있는 보통 분들한테도 마찬가지다(음료수 마시며 노트북 만지다가 자칫 쏟아버리면 정말로 머리가 아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