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 X POINT 11. 이름없는 괴물사냥꾼

승혁은 문득, 자기가 엉뚱한 곳에 와있단 걸 깨달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 음식점에서 갑자기 여성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을 텐데, 지금은 마치 아무도 없는 듯한 잔잔한 느낌만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하늘이 천천히 노랗게 물드는 걸로 봐서, 지금은 저녁인 듯했다. 어쩐지 승혁은 그 하늘을 언젠가 본 거 같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승혁은 뒤늦게 자기가 어떤 건물 옥상 위에 서있단 걸 깨달았다. 자기 자신을 확인해보니, 일단 ‘원래’ 자신인 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자기 모습인 것도 아니었다. 대략 짐작하건대, 이건 고등학생 시절 자기 모습인 듯했다.
게다가 뒤늦게 깨닫긴 했지만, 그 옥상엔 다른 누군가도 같이 있었다.
“저…”
말을 걸려 하다가, 승혁은 그게 누군지 알아챘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 가장 보고싶은 사람, 가장 되찾고 싶은 사람이 자기한테 등을 보인 채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저 뒷모습으로 볼 때, ‘그 아이’도 자기처럼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게 틀림없었다. 그 때 그 애의 모습은 어땠더라. 승혁은 흐릿한 기억을 되돌아보려 애썼다. 물론 제대로 떠오른 건 하나도 없었지만.
아무튼,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이제 하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노랗게 물든 세상으로, 승혁은 천천히 나아갔다. 자기 몸조차 금빛으로 물들 듯한 잠잠한 하늘이었다. 어쩐지 승혁은 이 느낌이 정겨우면서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승혁은 드디어 그 곳에 다다랐다.
그 아이가 옆에 있는, 옥상 난간에.

“여긴 어쩐 일이야?”
물어보고 싶은 건 한둘이 아니었지만, 승혁의 입에서 나온 건 고작 그런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여기가 어딘지부터가 문제였다. 갑자기 묻고싶은 게 너무나 많아져서, 뭐부터 말하면 좋을지 알 수조차 없었다.
이럴 땐 어쩌면 좋을까.
승혁은 흰 난간에 팔을 괸 채, 잠시동안 생각에 잠겼다.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풍경은 승혁의 기억 속에도 있었다. 바쁘게 사느라 잊어버렸지만, 한때 승혁이 지냈던 곳이었다. 승혁은 여기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그 아이’를 만났고, 그렇게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바로 옆에 있었지만, 승혁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승혁은 그 아이의 느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빼면 뭔가 위화감이 있었다. 중요한 걸 잊은 듯한 느낌. 승혁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만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있지. 하나만 물을게.”
그래서 승혁은 다시 입을 뗐다. 어떤 답이 돌아올지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실을 다시금 깨닫기 위해서.
“왜 여긴 바람이 하나도 안 부는 거지? 약한 바람조차 안 불잖아. 게다가 하늘도 멈춰있고. 이건 대체…”
“꿈이니까.”
“응?”
“이건 꿈이니까. 그지?”
“자, 잠깐. 무슨 소리…”
그 말을 끝으로, 승혁은 자기가 의식을 잃고있단 걸 깨달았다. 가만히 생각하면 그랬다. 흐르지 않는 하늘. 이만큼도 불지 않는 바람. 이상하리만치 노란색이 도드라진 세상. 그리고 갑작스런 옛날 모습.
아, 이건 꿈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 즈음, 승혁은 정말로 ‘정신을’ 차렸다.

“뭐야, 그렇게 졸렸어?”
미래의 말에, 승혁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자기가 누워있는 곳은 그 이상한 음식점에 놓인 소파였다. 대충 볼 때, 나머지 아이들도 여기서 밥을 먹고있는 듯했다.
“다들 뭘 먹는 거야?”
“뭐긴 뭐겠어. 저녁이지. 댁이랑 똑같은.”
“그걸 다같이 먹는다고?”
승혁은 몸을 일으켜서, 그 광경을 가만히 살폈다. 대체 언제들 자리에 앉았는지, 다들 밥, 즉 치즈라면을 먹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아까 승혁이 먹은 것에 감명받아서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반숙달걀을 반으로 가른 뒤 적셔서 먹고있는 듯했다. 자기가 아무 생각없이 먹은 걸 따라하는 아이들을 보며, 승혁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특히 노을은 저 모습으로 남들을 따라하며 먹고있었던 탓에 어쩐지 우습게 여겨졌다.
“그건 그렇고 댁은 무지 잘 자대. 처음 온 가게가 그렇게 편해?”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이 뭐라는 거야?”
“아니, 나도 이렇게 댁이 배포가 클 줄은 몰랐지. 그건 그렇고…”
그 말과 함께, 미래는 몸을 일으킨 승혁한테 파란색 통을 내밀었다. 그 정체모를 음료수를 보고, 승혁은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또 뭐야?”
“코코넛워터. 여기 명물이니까 이거나 마시고 속 좀 달래시지?”
“그딴 걸 왜…아야!”
승혁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누군가 자기 얼굴 쪽으로 방금 그 코코넛워터 팩을 던져댔다. 어이가 없어서 그 쪽을 보니, 아까 전까지 자길 끌어안고 있던 이 가게 사람 중 하나였다. 아마 저 사람이 대표인 듯했다.
“이게 감히 코코넛워터를 무시해?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왜 이런 거 때문에 댁한테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애당초 마셔봤어야…”
“그럼 마시고 말하면 되지, 왜 처음부터 그래?”
“댁들은 나랑 뭐가 하고싶은 거야?”
어이없어하면서도, 일단 승혁은 그 코코넛워터를 입에 댔다. 목구멍으로 그걸 넘기자,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맛이 똑똑히 느껴졌다. 지금 당장 뱉고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자기 입맛에 안 맞는 건 틀림없었다.
“자, 마셨으니까 말해도 되지? 왜 이런 걸 준 거야?”
“남의 집 명물을 이런 식으로 막 말해도 돼? 니가 코코넛워터 맛을 알아?”
“아니까 이러잖아. 진짜!”
대체 코코넛워터의 어디가 좋아서 저러는 거지. 승혁은 이제 기가 찰 따름이었다. 자기네들이 맛있다는 건 둘째치고, 왜 무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런단 말인가. 그렇게 승혁이 어이없어하자, 미래가 중간에 끼어들어선 상황을 정리했다.
“아, 그러니까 이걸 먼저 말해야지. 여기 애들은 코코넛워터에 엄청 자존심을 걸고 있거든. 그러니까 니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어. 뭐, 지금은 처음이지만…”
“자부심?”
“그래. 불만있나? 아, 그러고 보니…”
여자는 이제야 뭔가 깨달았는지, 승혁을 가만히 쳐다봤다. 마치 지금껏 누구랑 말싸움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단 모습이었다.
“아니 잠깐만. 아까 그 귀여운 애 아냐? 갑자기 왜 이렇게 비뚤어졌어?”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아, 내가 안 말했던가? 그러니까 네가 귀엽다 생각한 이 친구가 지금 어떤 상황인가 하면…”
“그런 것도 인 말해줬단 말이야?!”
어이없어하는 승혁은 둘째치고, 미래는 이 가게 주인(이라 생각되는 여성)한테 상황을 말해줬다. 지금 자기가 놓인 상황을 이런 식으로 듣는 건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승혁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 그런 거였어?”
이제야 사실을 알아챈 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을 비롯한 다른 여성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이는 걸 보면, 이들도 유사세계인가 뭔가를 알고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니, 오히려 알고 있는 게 당연했다.
“근데 귀엽긴 귀엽던데. 댁도 그런 마음을 잊고 산 거 아냐?”
“무슨 헛소리야?!”
마치 미래처럼 말하는 가게 주인(처럼 보이는 여성)한테, 승혁은 그렇게 큰소리쳤다. 이 흡혈귀가 아는 사람이라곤 모조리 이런 부류인가. 승혁한테 있어선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다지 반가운 세계는 아니었지만.
“물을 생각도 못했네. 우리 가게 자랑거리를 좀 빨리 먹여야겠단 생각밖에 안 들어서…그런데 정말 그 쪽, 그러니까 승혁 씨는 귀여워. 물론 내 생각이지만…”
“아니, 그러니까 그 말 좀 그만하지 않겠어?”
여전히 저 주인처럼 보이는 여자가 그런 말을 하는 바람에, 승혁은 말을 끊었다. 아무튼 자기에 관한 건 이제 좀 그만 듣고 싶었다. 지금 승혁이 듣고싶은 건, 여기, 즉 ‘이 식당’이 뭐하는 곳인지에 관한 거였다.
“야야. 승혁이가 니네들 알고 싶다잖아. 자기만 말하기 싫다고.”
“아, 그걸 안 말했지?”
“아니, 알고싶단 말은 단 한 마디도…”
라고 말하면서도, 승혁은 결국 한숨을 쉬며 그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대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싶어서였다. 여전히 승혁은 그 유사세계인가 뭔가하는 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여기가 그 유사세계라 짐작되지만,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살아온 현실과 아무런 차이를 느기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도 참. 그걸 깜박했네. 미래야, 어떻게 말해주면 돼?”
“그냥 알아듣기 쉬울 것처럼 말해줘. 어려우면 쟤가 묻겠지.”
“그래, 그럼 말해볼까?”
그 말과 함께 여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뒤늦은 이 곳에 관한 이야기를.

여자의 말에 따르면, 여기는 ‘아는 사람만 아는’ 뒷골목에 숨은 음식점이라 했다. 내놓는 건 승혁이 먹은 대로 참 평범한 음식이었지만, 바로 이걸 먹으려고 여기 드나드는 단골도 꽤 있는 듯했다. 특히 코코넛워터는 마시기만 해도 지친 마음이 건강해지는 효과가 있다면서, 이런 맛을 모르는 승혁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여줬다.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지만, 사실 승혁도 어쩐지 ‘조금’ 몸에 기운이 돌아온 것같긴 했다.
물론, 여기서 그 ‘아는 사람’이라 하는 건 보통 사람을 일컫는 건 아니었다. 여자의 말에 따르면, 이 유사세계에선 세계군을 ‘느낄’ 수 있으며, 그런 사람을 서로 알아볼 수 있는 힘을 지닌 이들이 몇몇 있다고 했다. 대략 얼마나 있냐면, 세계군 전체에서 유사세계를 느낄 수 있는 이들만큼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얼마나 적은 확률이냐고 승혁은 생각했지만, 미래 말대로 ‘벼락맞아 죽을 확률’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 보는 게 좋을 듯했다.
즉, 그런 이들이 마치 성지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게 이러한 가게란 말이었다. 그러니 ‘그런 이’들이 누군지는 안 봐도 뻔했다. 이 곳은 그런 유사세계인 것이다. 흡혈귀도 없고 사람으로 둔갑하는 호랑이도 없지만, 대신 ‘특이한 힘’을 지니고 태어난 이들이 조금 있는 세상.
대체 이 유사세계는 어디까지 있는 걸까. 일단 얘기를 끝낸 뒤 코코넛워터로 목을 축이는 여성을 보며, 승혁은 그런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우린 여기에 자부심이 있다 이거지. 별 거 아닐지 모르지만 음식 맛엔 자신있으니까. 이런 걸 먹으면서 편하게 자기 힘 얘길 할 수 있는 것도 좋지 않겠어? 게다가 이런 코코넛워터는 여기서만 마실 수 있을 텐데.”
“댁들은 대체 왜 그렇게 코코넛워터란 데 환장한 거야?”
“그 말 미래한테 망고주스로 바꿔서 해봐라. 승혁 씨가 죽어도 나는 모른 척할 거니까.”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미래를 보며, 승혁은 이마를 짚었다. 아무래도 저 둘은 성격이 참으로 비슷한 듯했다. 만약 그렇다면, 승혁이 더 이상 이야기를 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니, 근데 진짜 이건 말하고 싶어. 승혁 씨는 진짜로 귀여운 사람…”
“그 말은 하지 말자고 했지?!”
“내가 아까 좀 심한 거 같아서. 이건 진심이라고 제대로 안 말하면 안 믿을 거 아냐.”
“차라리 안 믿게 냅둬, 진짜!”
그렇게 어이없어하면서도, 승혁은 그 여성의 눈빛이 자기 생각보단 부드럽단 걸 깨달았다. 아무튼 자긴 여기서 환영받는 듯했다. 승혁이 그다지 바라는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 일 뒤로, 승혁 일행은 선물로 반숙달걀을 하나씩 얻은 채 가게 밖으로 나왔다. 밖은 벌써 어두컴컴했는데, 불빛이 여기저기 있는데도 묘한 느낌이 들었다. 미래는 아무렇지 않게 허공에 창문을 그리는 손짓을 하더니, 그리로 쑥 들어가버렸다. 이번에도 다들 알아서 하라는 것처럼.
이 여자는 대체 언제쯤 설명이란 말을 떠올릴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승혁은 이번엔 먼저 미래를 따라 그 ‘창문’으로 넘어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젠 알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창문을 넘어 원래 자리, 즉 병실로 돌아온 승혁이 가장 먼저 느낀 건 뜬금없는 라면냄새였다. 그것도 컵라면.
“뭐하는 거야?”
“뭘하긴 뭘 해. 컵라면 끓여먹고 있지.”
“아까 저녁 안 먹었어?”
“이 사람도 참. 흡혈귀한테 야식은 살로 안 간단 걸 모르나?”
가면 갈수록 어이없어졌지만, 승혁은 더 이상 묻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또 자기가 질 게 뻔해서였다. 이렇게 유치하게 구는 건 솔직히 말해서 중학교 뒤로 처음이었다. 게다가 며칠 전이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었다.
하지만 미래 옆에 놓인 음료수팩을 본 순간, 승혁은 다시 한 번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음료수팩엔 정말로 뜬금없이 망고 사진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야, 그건 뭐야?!”
“뭐긴 뭐야, 망고주스지. 내가 팩째 넣어놓고 마시는.”
“라면을 먹는데 그런 건 왜 마셔?”
“거 참, 내가 좋아하는 것도 못 마시나? 아무튼 째째하게…”
그 말과 함께, 미래는 라면을 먹다말고 망고주스 팩을 쭉쭉 빨아먹기 시작했다. 마치 목마를 때 스포츠음료라도 마시는 듯한 미래의 모습을 보며, 승혁은 결국 또 이마를 짚어야 했다.
아까 그 여자가 했던 말이 이런 뜻이었던가. 대체 왜 마실 것에 저렇게 고집하는지 모르겠단 생각을 하면서도, 승혁은 이렇게 반쯤 놀리듯 물어봤다.
“흡혈귀도 피만 마시는 건 아닌가 보지?”
“그럼 댁은 물만 마시고 사나? 목마를 땐 망고주스가 최고란 거 몰라?”
“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사실은 흡혈귀란 말도 뻥인 거 아냐?!”
승혁과 미래가 이런 식으로 유치한 말싸움을 되풀이하고 있을 때, 뒤에서 다른 아이들이 하나씩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결국 승혁은 오늘 두 번이나 어린애들 앞에서 민망한 모습을 보여야 했던 것이다. 참으로 분한 일이지만.
“자, 그럼 게임이나 다시 해볼까? 이번에야말로 라마를 내 손에…”
“넌 오늘 하루종일 여기서 지낼 생각이야?”
“그거야 물론…잠깐, 저 쪽에서 무슨 소리 안 났어?”
“무슨 소리…어?”
승혁은 정신을 차리고, 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이상한 울림을 가만히 들었다. 마치 세로로 지진이 난 것처럼, 창문 너머가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일렁이는 느낌을 보면, 어쩐지 낚시터에서 월척을 건지기 직전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갑자기 그 일렁이던 데서 월척은 나타났다. 아니, 월척이라기보단 커다란 상어에 가까웠다. 사실 상어라기보다, 저건 그냥 괴물이었다. 승혁은 그렇게밖에 여길 수 없었고, 미래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너무나 갑작스레 나타난 그 커다란 모습이, 마치 비현실이라도 되는 듯 승혁이 있는 ‘현실’을 덮쳤다.
하지만, 그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나타난 날쌘 누군가가, 자기가 갖고 있던 칼로 상어괴물의 배를 푹 찔렀던 것이다. 피와 몸뚱이는 일렁이는 공기 속에서 여기저기 갈라진 채 어딘가로 쑥 들어갔고, 그 자리에는 어떤 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애만이 남았다. 물론, 손엔 아직 칼이 들려있었다. 칼날에 붉은 피가 또렷이 물든 채.
“그러니까, 이건…”
“또 새 친구가 나타났네. 그지?”
승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자기가 뭘 봤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지금 승혁이 알게된 건, 이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것만 가득하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