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밤 언리미티드 25. 여자 여럿이 모여도

역시 쉬는 날인 다음 날.
비상은 현의 집에, 낯선 아이들과 함께 모여있었다. 자기가 이런 곳에 있어도 될까. 속으로 비상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마 이 아이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을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상은 지금 ‘바뀐 모습’이었으니까.
참고로, 이런 상태인 건 비상뿐만이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여자애들로 바글바글한 방에 남자 한 명이 달랑 있는 것도,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비록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르다 해도.
대체 이건 어떻게 된 일인가.
비상은 잠시, 아까 있었던 일을 가만히 떠올렸다.

때는 어제 저녁으로 거슬러올라가, 비상이 현과 같이 강산의 집을 나올 때였다. 현은 강산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 꽤 재밌었는지, 갑자기 비상한테 이런 말을 건넸다.
“이번엔 우리 집에 안 갈래?”
“그건 또 무슨 소리니?”
현 말에 따르면, 내일 자기 친구들이 자기 집에서 모이는데, 비상도 오지 않겠느냐, 라기보다 왔으면 좋겠다, 는 말이었다. 대체 저 형 집에서 뭘 느낀 거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비상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설마 이런 모습으로 가라는 건 아니지?”
“어쩐지 하늘이 어떻게든 해줄 거 같아.”
아무리 봐도 깊이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렇게 된 걸 보며, 비상은 뭐라 할 말을 잃었다. 그것도 현네 집 대문을 넘자마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현조차 바뀐 모습이 된 걸 보곤 더더욱 할 말을 잃었지만.
현의 친구들은 네다섯명쯤 되었는데(물론, 현과 비상을 뺀 나머지였다), 특이한 인상부터 보통 인상까지, 참 폭넓은 나잇대의 아이들이었다. 비상도 여기로 오면서, 설마 초등학생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현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에 만난 그 여자애는 오늘 여기에 없었다. 이걸 보면, 현의 친구는 이 방에 있는 아이들만이 아닌 듯했다. 물론, 현의 방 크기로 볼 때, 다 모인다 한들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지금 몸이 줄어들어서인지, 비상의 눈엔 이 작은 방도 평소보다 크게 보였다. 눈길이 달라지면 이렇게 다른 느낌이란 말인가. 이젠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여전히 비상한텐 그게 낯설었다.
하지만 비상이 그런 생각을 하거나말거나, 아이들은 현한테 온갖 질문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가만히 듣던 비상은, 그 질문이 ‘놀이’에 관한 거란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그럼, 그 오빠가 도와주는 거야?”
“응.”
어떤 아이의 말에, 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다른 아이가, 묘한 표정으로 현한테 이렇게 물었다.
“근데 그 오빠한테 뭘 배우려는 거야?”
“이성…그러니까 남자?”
이번엔 현의 목소리가 묘하단 걸 다들 알아챘는지, 이상하단 표정으로 아이들이 현을 둘러쌌다. 마치 궁금한 게 있어서 못 견디겠단 듯이.
“근데 현이 주위엔 우리밖에 없잖아.”
“그래도 이 세상에 동성만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오오.”
현의 말에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을 보며, 비상은 어쩐지 현의 친구들을 대충 알 것 같았다. 이 아이들한테, ‘놀이’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이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건, 대체 왜 현이 자기, 즉 비상한테 뭔가 배우려는 까닭이었다. 전에 ‘별 거 아닌데요’라고 말한 현이 친구의 말은, 그다지 틀리지도 않은 셈이었다.
참고로, 비상은 오자마자 이 아이들한테 ‘소개당한’ 상태였다. 물론 현도 그 오빠와 여기에 있는 사람이 같다는 건 말하지 않았지만, 이름 및 자기 친구란 건 이미 말한 듯했다. 이쯤되면 친구들도 놀랄 만한데, 다들 현한테 새 친구가 생긴 게 그리 놀랍지 않은 듯, 정말로 ‘아, 그렇구나’ 란 식으로 넘어갔다. 너무 자길 신기해하지 않는 탓에, 오히려 비상이 뭐라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 때, 누가 갑자기 비상한테 말을 걸었다.
“그럼 뭐 재밌는 얘기 좀 해 봐.”
“어?”
그 말에 비상은 깜짝 놀랐지만, 여자애, 즉 현의 친구 중 한 명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비상의 한쪽 팔을 잡으며, 자꾸만 뭔가 해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현이 친구면 재밌는 거 하나는 알고 있을 거 아냐. 아무거나 해 봐. 응?”
“그럼 너희들은 다 갖고 있단 말이야?”
“응.”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저 쪽에서 뭔가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여자애가 자기 품속에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여자애는 그 카드를 손에 쥐곤, 갑자기 마술을 하기 시작했다. 다들 그걸 보고 ‘오오’라 감탄하는 가운데, 비상은 이제야 현의 친구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비상은 마술에 관해선 잘 몰랐지만, 적어도 자기가 아는 것 중 하나는 말하는 게 낫겠다 여긴 것이다.
“그럼, 이게 재밌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비상은 그렇게 입을 떼어놓았다. 이젠 다른 아이들은 물론, 현도 기대하는 표정으로 비상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작은 방에서 모든 이들이 자길 지켜보고 있단 게 참 묘한 느낌이었지만, 아무튼 비상은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들 중에, 가지고 있는 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배운 사람 있니?”
비상이 그렇게 말하자, 모든 아이들, 심지어 현마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나 그렇구나. 비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난 아버지한테 어릴 적 그런 걸 배웠거든. 아버지가 어디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라서. 돈이란 건, 안 쓴다고 잘 썼다 말할 수 있는 게 아냐. 자기한테 투자할 줄 알아야 하는 거지. 자기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거라면 뭐든 투자라 할 수 있을 거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라 한들, 자기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된다면 그건 투자겠지.”
“어쩐지 경제학 강의 같다.”
거기까지 말하자, 어떤 여자애가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다. 비상도 그 점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그런 말투가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안 딱딱하게 말하려곤 하는데…어쨌든 돈을 잘 다루려면 무조건 안 쓰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곳에 투자해야 한단 말이야. 주식이나 뭐 그런 걸 할 것까지도 없이. 어떠니?”
“무슨 20대 오빠가 말하는 거 같은데.”
비상이 말을 끝내자, 어떤 여자애가 정곡을 찔렀다. 또 다른 여자애는, 마치 신문물이라도 본 것처럼 눈이 동그래져있었다.
“우아. 나 살면서 투자란 말 처음 들었어.”
“나도.”
이 말을 듣자, 비상은 괜히 민망해지는 걸 느꼈다. 이 나잇대 여자애들이 관심있어할 법한 이야기가 아닌데, 비상은 결국 이것밖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아. 재미없지? 넌 너희들한테 그런 사람일 테니까…”
“아니. 특이한 게 우리랑 딱 맞는데.”
“그건 그렇구나.”
비상도 이 말은 부정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현은 아주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비상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현 역시 뭔가 신문물을 만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이 근처 비싼 아이스크림 사먹는 것도 투자야?”
“글쎄. 네 마음이 즐거워진다면 그렇겠지.”
저런 모습으로 그런 걸 진지하게 묻는 것도 묘한 일이었지만, 비상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현의 눈빛이 갑자기 기쁨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이 아이는 정말, 진심으로 그게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다 비상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바로 현이 살고 있는 세상이구나, 란 생각이. 어쩌면 어제, 현은 강산의 집에서 자기와 같은 느낌을 받았을지도 몰랐다. 틀림없이 둘은 같은 현실에 살지만, 말 그대로 사는 세상이 달랐던 것이다.
이제 신문물을 만난 건, 여기있는 아이들이 아닌 비상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경험’이었지만, 비상한테는 문화충격만큼이나 인상깊은 일이었다. 이건 아마 여깄는 아이들도 같은 생각일 테지만(방금도 ‘특이한 게’란 말을 들었으니까). 어쩌면 아이들이 비상을 자기와 ‘동류’라 여기는 것도, 그런 까닭일지 몰랐다.
그 뒤, 현의 방엔 한없는 침묵이 깔렸다. 정말 놀랄 만큼,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밖을 보고,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또 누군가는 자기 핸드폰을 꺼내선 게임을 하고 있었다. 물론 자기들끼리 소근대는 애들은 있었지만, 대다수는 정말로 ‘아무 말도’ 입에 담지 않았다. 비상이 생각하고 있던 크게 떠드는 목소리는, 적어도 여기선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현조차, 벌써부터 잠잘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시간이 자그만치 30분 넘게 흘러가자, 비상조차 저절로 눈꺼풀이 감기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비상은 이 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무척 편하게 느껴졌다. 비상도 원래 말이 그리 많은 성격은 아닌 것이다. 이런 분위기엔, 이미 무척 익숙해져있었다.
그리고 비상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기엔 놀랍다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거 참…”
대체 언제부터 그랬는지, 다들 늘어진 채 곤히 잠들어있었던 것이다. 아까 잘 채비를 하던 현은 물론, 다른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옷장에 기대서 자는 아이부터 해서, 남의 무릎을 벤 채 자는 아이, 아예 팔자로 몸을 죽 펴고 자는 아이, 구석에 있는 이불을 끌어와서 자는 아이까지, 각자 자는 자세도 참으로 폭넓기 이를데없었다. 현도 방을 뒹굴대며, 다른 아이들과 섞여 잠들어있었다. 그거야 이 방의 주인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까 자려던 채비는 대체 뭐였는지 비상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여자애들이 잡담만 한다는 것도 자기 편견이었나.
그 생각에, 비상은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세상엔 여러가지 여자애들이 있고, 현과 그 친구들 역시 그 중 하나인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하나만 가지고 모든 걸 말할 수는 없었다. 어쩐지 비상은, 지금 그걸 무척 잘 알 것 같았다.
낮 세 시였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창문에서, 여름 특유의 눈부신 햇살이 들어왔다. 다들 덥지도 않은지, 코골이도 안 하고 푹 잠들어있었다. 발디딜 수조차 없이 엉망진창인 이 방에서, 아이들의 숨쉬는 소리만이 가만히 울려퍼졌다.
어쩌면 지금, 자기는 그 노르웨이 기차예능인가 뭔가하는 걸 몸으로 겪고있는 게 아닐까.
저 멀리에서 들리는 골목 속 소리를 들으며, 비상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대고 있단 걸 알아챘다. 아마 이대로라면, 자기 역시 잠들 게 뻔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게 뭐가 나쁠까.
결국 비상 역시, 옆으로 엎어진 채 곤히 잠들고 말았다. 이럴 땐 안경이 없어 편하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야야, 일어나.”
문득 그런 말이 들어, 비상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체 시간이 언제 지난 건지, 벌써 해가 저물어가는 게 창문 너머로 또렷하게 느껴졌다. 다들 이제야 일어난 건지, 하나같이 눈을 비비고 있었다. 물론, 현도 아직 잠에서 안 깬 듯 연신 하품을 늘어져라 하는 중이었다.
이거 참 질서없는 모습인데.
비상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을 때였다.
“아, 오늘은 현이네 집에서 씻고 싶은데.”
그 말에 비상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칫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하지만, 상황은 비상과 아무 상관없는 데서 돌아가고 있었다.
“오, 씻을 사람?”
“나!”
“나도. 나도 씻을래.”
물론, 비상은 여기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여기서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비상의 팔을 붙잡았다. 마치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너도 갈 거지?”
결국 비상은, 자기가 빠져나갈 길이 없단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현조차, 아이들과 같이 씻으러 들어가는 듯했다. 물론 바뀐 모습 그대로.
이거 정말 괜찮을까.
비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미 일은 자기 손을 떠난 뒤였다.

그렇게 해서.
“현아, 여기 의자 어딨어?”
“응? 아마 저 쪽에…”
비상은 결국 다른 아이들과 함께, 현네 집 욕실 안에 들어와있었다. 물론, 다들 아무렇지 않게 옷을 훌훌 벗어제낀 뒤였다. 비상도 중고등학생(개중엔 초등학생도 있었다) 상대로 그런 마음은 전혀 가지지 않고 있었지만, 오늘은 눈을 감는 것조차 하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국 고민 끝에 될 수 있는 대로 아래만 보고 있었더니, 옆에서 누가 이런 말을 걸었다.
“왜 자꾸 아래만 봐?”
이젠 이것도 못 쓰게 되어, 할 수 없이 비상은 될 수 있는 대로 눈길을 피하는 식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려 했다. 물론 이게 들키면 또 어떻게 될지는 자기도 모르지만.
비상 역시, 여자에 관해 그렇게 모르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여기 있는 상대’들’은, 연애대상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어렸다. 비상이 현을 그렇게 보는 것처럼.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민망한 건 민망한 것이었다. 아마 이런 걸로 고민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비상밖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와 반대로, 여전히 ‘바뀐 모습’인 현은 태연하기 이를데없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비상이 당황스러워질 지경이었다. 그건 현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이들은, 지금 이 상황이 대체 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다들, 현 옆에 찰싹 붙어서는 ‘뭔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뭔가’를 감탄하고 있었다. 물론 비상은 모른 척했지만, 귀로 들려오는 것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오오, 이렇게 느낌이 다르구나.”
“그렇게 생긴 거야?”
이제 비상은 더 이상 이 얘길 들을 용기가 없었지만(사실 여기 있을 정신력도 없었다), 일단 모른 척하고 씻는 수밖에 없었다. 현은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그지?’라면서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살색(현의 친구들은 물론, 자기 자신도)을 어떻게든 피하려 하며, 비상은 자기 상식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걸 느꼈다. 이 아이들은, 틀림없이 자기와 다른 세상에서 자란 게 틀림없었다. 아무리 사는 현실이 같다 한들, 사는 ‘세상’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였다.
“그럼 좋겠다. 생리도 안 하고.”
옆에 있던 현의 친구 중 한 명이, 부럽기 짝이 없단 말투로 그런 말을 꺼냈다. 하지만 현은 오히려 고개를 가로젓더니, 비상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을 입에 담았다.
“아니, 그건 아니던데.”
“진짜?!”
여기엔 현의 친구들은 물론, 비상조차 깜짝 놀랐다. 자기도 모르게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의 표정은 정말 진지했다. 설마 저 말이 진짜란 말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 그럼 어디서 나와?!”
“여기서.”
그 말과 함께, 현은 ‘뭔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걸 보자, 비상은 정말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건, 현의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헐.”
잠시 동안,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상은 이제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이 세상은 대체 어떻게 되어먹었단 말인가. 만약 천사가 자기네들을 보고 있다면, 지금 당장 캐묻고싶을 정도였다.
“그거 진짜니?”
“응. 정말로 그렇던데.”
비상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현한테, 이제 다른 아이들은 ‘신기하다’란 식으로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비상은 더 할 말이 없어,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쥐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하고 싶었지만, 지금 자기가 그럴 수 있을 리 없었다.
대체 하늘이란 작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 일이 너무 컸던 나머지, 비상은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어쨌든 비상은 잘 씻고 욕실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비상이는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
그런 현의 의아한 눈빛을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며, 비상은 드디어 현의 집을 나섰다. 이젠 현의 집을 나섰는데도, 비상은 정신이 멍한 느낌이 들었다. 틀림없이 별 일도 없었을 텐데, 비상은 어쩐지 오늘 하루가 세상에서 가장 긴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머리를 짚으며 집으로 돌아가려던 비상은, 문득 ‘뭔가’를 느꼈다. 그건 틀림없이, 누군가의 눈빛이었다. 대체 어디 있는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디선가 비상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건 단지 비상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착각이라 넘기기에, 그 ‘느낌’은 조금 많이 강했다. 골목 구석에서 느껴지는 걸 보면, 상대방은 자기가 기척을 잘 숨기고 있다 여기는 듯했다. 물론 지금 비상한테 들켰지만.
대체 누구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비상은 자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때가 되면 알게 되리라 여겨서였다. 설마 내일 저게 밝혀질 리도 없고, 언젠가 그 때가 되면 다 알 일을 지금 알려 할 건 없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비상은, 문득 하늘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도 ‘놀이’ 대신 뭔가 다른 걸 한다고 했지, 란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