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또 그 소리냐?”
다음 날, 수업이 끝난 뒤 정태는 풍물동아리 대표 형한테 어제 불만을 줄줄 털어놓고 있었다. 이 형은 자기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라서 힘든 걸 털어놓기 편했다.
“형 아님 이런 거 털어놓을 사람 없단 말이에요. 말할 사람 자체가 없는데 뭘…”
“그렇다고 그걸 만날 나 하나한테만 털어놓냐? 안 듣는 날이 없네, 아주.”
“그 하나하나 그러지 마요. 걔 떠오른단 말이야.”
“야, 나보고 어쩌라고?!”
형은 오늘도 눈살을 찌푸리지만, 정태는 그래도 자기 말을 들어주는 이 형이 고마웠다. 여러 사정상, 이 형은 자기 말을 무시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형과 있으면, 자기가 원래 모습대로 보이는 거 같았다. 아마 동아리 인원이 자기네들뿐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넌 말이야, 걜 좋아하는 거야. 좋아해서 이러는 거라고.”
“무, 무슨 헛소리예요?!”
만날 그렇듯 핀잔을 주는 형 앞에서, 정태는 무심코 큰소리를 질렀다. 저 형 눈에, 자기네들은 무지 다정한 사이로 보이는 듯했다. 사실은 이만큼도 그렇지 않은데.
“그럼 솔직히 까봐라. 왜 나만 보면 걔 말만 하는데? 너 걔 좋아하냐?”
“아니, 그러니까 아까부터 무슨 소리냐구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렇게 손을 내젓는 정태였지만, 자기가 그만큼 형한테 걔 말을 많이 힌 건 사실이었다. 물론 둘은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그건 앞으로도 그대로일 터였다. 그건 너무 당연해서…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걸까.
결국 정태는 형 말에 고개를 휙휙 돌리는 걸로 그 답을 대신했다. 어떻게든 그 질문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