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와 토끼모자.

때는 겨울도 지나가, 추운 날씨도 막을 내리려 하는 4월 초.
미아는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가느라 집을 비웠을 때, 마치 집에 누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화장실 안에 들어서고 있었다. 한쪽 손엔 뭔가 커다란, 새하얀 걸 든 채였다.
어린아이가 쓰면 딱 어울릴 것같은 흰색 토끼모자.
지금 미아는 이런 모습이 된 뒤, 처음으로 그 모자를 손에 쥐고 있었다.

미아는 거울 앞에 마주서자, 자기 손에 들린 토끼모자를 빤히 쳐다봤다. 모자는 모자였지만, 귀가 굉장히 길어서 마치 귀마개처럼 느껴지는 희한한 모자였다. 그 새하얀 모자를 미아는 보고 또 봤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다른 이의 눈길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이 모자는 미아 거라기보다, 골목아이들 모두가 쓰는 것이라 말하는 게 더 알맞았다. 맨 처음 누가 샀는지는 미아도 잊어버렸지만, 토끼모자가 그렇게 귀여웠는지 쓰고싶은 애들이 마음대로 집어다 쓰곤 했던 것이다. 물론 미아는 이 모자를 다른 애들 앞에서 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또래아이들이면 모를까, 미아도 자기가 이런 게 어울릴 리 없단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추운 겨울날, 아무렇지도 않게 토끼모자를 쓰면서 좋아라하는 친구들을 보며 미아는 괜히 마음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안 그래도 추운 날씨에 약한 미아는 자기도 그런 모자가 있으면 좋겠다 여러번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추운 날도 다 지나간 지금이긴 하지만, 이렇게 모자를 가지고 올 용기는 어떻게든 낼 수 있었다.
그렇게 거울 앞에 가만히 선 채, 미아는 몇 번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내가 써도 될까.
‘지금’ 내가 이런 걸 써도 괜찮을까.

잠시 모자를 빤히 바라보던 미아는, 이내 눈을 질끈 감고는 모자를 머리로 가져갔다. 그리곤 손을 조금 떨면서도, 어떻게든 그 모자를 머리에 뒤집어씌웠다.
그렇게 모자를 쓴 뒤, 미아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마치 공포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그저 조심스럽게.
미아 자신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이 모습으로 모자를 쓰면 대체 어떻게 될지.

그러자 눈앞엔.
미아도 이미 짐작하긴 했지만, 그저 귀가 늘어진 흰색 토끼모자를 쓰고있는 성인남성이 멀뚱하게 서있었다.

…이것도 지금은 쓰지 말라는 하늘의 뜻일까.
어쩐지 묘하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끼며, 미아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쓰고있던 모자를 벗었다.
미아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딱히 모자를 쓰면 어떻게 되리라는 기대는 사실 정말로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