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미아는 이런 생각한 적 없어?”
“응?”
봄이가 평소엔 안 보이는 진지한 표정을 짓자, 미아는 이상하단 듯 그렇게 되물었다.
“갑자기 엄마가 잘해줄 때 있잖아. 맛있는 거 사주고. 그럴 때 괜히 안 무서워? 엄마가 언제 죽는 거 아닌가, 우리 버리려는 거 아닌가.”
“…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
라고 말하긴 했지만, 미아는 사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자기도 그런 생각한 적이 있단 말은 차마 민망해서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아. 미아야 이거 좀 봐라. 이런 의자 지하철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버스에도 있네.”
버스정류장에 다다르자, 봄이는 미아를 보며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흔히 보는 것과 달리, 은빛으로 빛나는 특이한 의자였다.
“어. 진짜다. 여기 앉으면 겨울에 따뜻해지는 거 맞지?”
“응. 근데 엄청 아깝다. 여름에 앉을 때 시원해지면 딱인데. 그지?”
“…그런가?”
이제 봄도 한창인 날씨를 생각해서인지, 봄이가 그런 말을 꺼냈다. 그걸 보던 미아는, 아직 봄이라서 밤엔 많이 추워진단 걸 떠올렸다.
그럴 때 잠깐 앉아볼 수 있을까.
추위를 잘 타서 겨울엔 장판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미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봄이 몰래 그 의자를 빤히 바라봤다.
“있잖아 미아야. 그거 알아? 나는 이대로 어른이 되면 설거지도 서투르고 십자수도 못하고 화장하는 것도 싫으니까 좋아해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서 그냥 혼자 살다가 죽을 거야. 진짜로.”
“버, 벌써부터 그렇게 딱 잘라말할 것까진 없지 않을까?”
미아가 민망하단 듯 그런 말을 꺼내자, 봄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거니 이내 ‘아 맞다’란 표정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아, 근데 미아하고 시간이처럼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럼 나 오랫동안 잘먹고 잘살 거야. 아마.”
“…이번엔 너무 거꾸로 간 거 아닐까?”
이제 추운 날도 다 지나간 것만 같은 4월 중순.
“홍준아. 홍준아.”
그 날, 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아네 집에 들어섰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봄이 눈에 띈 건, 장판이 깔린 침대 위에 푹신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채 웅크려 누워있는 미아의 모습이었다. 오늘 바람이 센 건 사실이었지만, 추위를 잘 타 겨울엔 대개 장판 위에 있는 미아한테는 견디기 힘든 날씨였던 듯했다.
미아가 꿈쩍도 하지 않자, 봄이는 희한하단 듯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걱정하는 건지 궁금해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말투로 이렇게 물었다.
“홍준아. 왜 그래. 죽었어?”
“…어? 내가 왜?!”
그저 추워서 웅크리고 있었던 미아는, 그 말에 고개를 내밀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아 – 라면 자체는 좋아하지만 너무 매운 건 못먹음. 순한 라면을 좋아함
봄이 – 불닭볶음면 레벨도 아무렇지 않게 먹음
시간 – 라면 자체는 좋아하지만 매운 걸 즐겨먹진 않음. 따라서 매운 것도 잘먹는 봄이한테 감탄함
백설 – 라면 자체는 먹지만 매운 걸 먹는 사람 심리를 이해하지 못함. 국물에 밥은 말아먹음
세진 – 있으면 먹음. 가끔 밤에 무척 라면이 당길 때가 있는 듯
“그럼 이렇게 하자. 지금 더위를 사면 봄이 애교하고 심부름권까지 해서 2만 2천원…”
“응?”
봄이의 머릿속엔 지금이 대보름이든 아니든 더위를 ‘팔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듯했다.
“어? 이거 무슨 사진이야?”
백설 폰으로 사진을 슥슥 넘기던 봄이는 문득 뭘 보고 이렇게 물었다. 다른 아이들이 미아한테 달려들어 억지로 엿을 먹이고 있는 장면이었다.
“미아가 운전면허 시험볼 때 찍은 거.”
“아, 그래서 얘들이 엿을 막 먹이고 있구나.”
그 말에 백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하던 봄이는, 이윽고 뭔가 떠오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 사진 이름은 ‘엿이나 먹어라’로 할까?”
“뭐?!”
“근데 다들 외국하면 어디가고 싶어?”
시간이 이렇게 묻자, 아이들을 제각기 답을 쏟아냈다. 북유럽. 남국. 사막. 남극. 우주. 이웃나라. 그 밖에 여러가지 대답이 오가는 가운데, 갑자기 봄이가 이렇게 소리쳤다.
“금강산!!”
그 말을 듣자, 신나게 떠들던 다른 아이들이 입을 딱 다문 채 봄이를 빤히 쳐다봤다.
“우아, 고등학생 되면 밤 열 시까지 학교에 남아있을 수 있다고?”
“그렇대.”
“그럼 밤중에 같은 반 애들끼리 막 모여서 귀신놀이같은 거 할 수 있겠네?”
“얜 또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아 맞다. 밤중에 막 불 껐다켰다하면서 나이트놀이같은 거 하면 엄청 재밌겠다. 그지?”
“…넌 대체 학교에 왜 가냐?”
“우아 진짜? 이름이 봄이야?”
“에헴.”
갓 버드내마을에 이사온 풍이가 그런 말과 함께 눈을 반짝이자, 봄이는 자랑스럽단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댔다.
“그러고 보니까 나도 봄이 아는데. 걔도 엄청 귀엽다. 애교도 잘 부리고.”
“진짜?”
“응. 머리도 엄청 좋아. 내 말을 얼마나 잘 듣는지…”
“엉?”
“아 맞다. 봄이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거든.”
이 말을 듣자, 혼자 어깨에 힘을 주던 봄이의 표정이 갑자기 확 바뀌었다.
“월월! 월월월!!”
“미, 미아야. 봄이가 갑자기 개가 됐다?”
“…봄이라면 그게 당연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