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밤의 짧은 이야기.

“응? 휴지 가지고 오라고?”
밤이 어둑할 때쯤, 미아한테서 온 전화를 받은 세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뒤.
“세진아 미안. 밤중에 이런 데로 불러내서…”
세진의 집에서 조금 걸으면 나오는 버스터미널 안쪽. 화장실 옆에 멀찌감치 떨어진 채 뻘쭘하게 서있던 미아가, 세진을 보고는 미안하단 듯 그런 말을 걸어왔다. 한밤중이라서 그럴까, 사람도 드문 편인 터미널 화장실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20대 남성을 멀리서 바라보는 느낌은 참 묘했다.
“아니. 난 괜찮은데, 그…휴지는 왜?”
그 말을 듣자, 미아는 바로 민망하단 듯 세진한테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가만히 화장실 안쪽, 그러니까 남자화장실 안쪽에 있는 그 곳을 가리켰다. 멀리서도 미아가 자꾸만 신경쓰여하는 게 눈에 들어오던 바로 그 곳이었다.
“미안한데 나 대신 갖다줄래? 그, 화장실 안쪽으로 가면 봄이 있거든.”
“…응?”

세진이 안쪽에 있는 여자화장실로 들어가자, 거기선 어디서 많이 들은 누군가가 힘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밖에서까지 잘 들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세진은 미아한테 들은 말을 떠올렸다.
-봄이가 밤에 큰거 마려워서 화장실에 가려고 했는데, 변기 물이 안 내려가서…
-여기밖에 떠오르는 데가 없어가지고 일단 오긴 왔는데 안에 휴지가 없대.
-그, 내가 갖다줄 수는 없으니까 세진이가 대신…

난 대체 밤중에 뭘하고 있는 거지.
여전히 안쪽에서 아무렇지 않게 새어나오는 힘쓰는 소리를 들으며, 세진은 잠시 멍하니 그런 생각에 잠겼다.


“아. 맛있다.”
그렇게 봄이가 큰걸 마친 뒤, 가까운 데에 있던 24시간 패스트푸드점.
봄이는 아무렇지 않게 눈앞에 있는 햄버거 하나(밤중이라서 차마 세트를 시키진 못했다)를 꿀꺽하고 있었다. 방금 자기 몫인 쉐이크를 마신 세진은, 그저 눈앞에 있는 그걸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그건 봄이 옆에 앉은 미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밤중에 저걸 먹을 기운이 대체 어디서 솟아난 걸까. 세진 및 미아한테 그건 봄이를 둘러싼 영원한 수수께끼 중 하나였다.
그 때, 갑자기 햄버거를 먹던 봄이가 뜬금없는 말을 입에 담았다.
“응가응가.”
“응?”
“우물우물. 응가한 뒤 먹는 햄버거 진짜 맛있다. 미아야.”
“아, 그래?”
이 말을 듣자, 세진은 물론 미아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뭘 먹는 게 봄이밖에 없는 건 사실이었지만, 이건 어쩐지 좀 아닌 거 같았다.
봄이 쟤는 먹으면서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드는 걸까. 세진은 이제 마치 희귀동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봄이를 멍하니 쳐다봤다. 얘는 여러 모로, 다른 애들과 달리 비범한 데가 있었다.

“아, 세진아. 오늘 고마워.”
“응?”
그렇게 세진이 얼빠진 표정으로 앞을 가만히 보고있을 때, 갑자기 미아가 이런 말을 걸어왔다. 미아는 아까 전과 달리, 한결 마음편한 표정으로 세진을 보며 웃었다.
“봄이가 폰으로 휴지가 없다고 했을 때 엄청 걱정했거든. 휴지는 어떻게 한다고 치더라도 지금 내가 화장실에 들어갈 순 없으니까. 누구 부탁할 사람 없을까 생각했을 때 세진이가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
“아, 응.”
“그러니까 겨우 마음이 편해지더라구. 세진이한텐 믿고 맡길 수 있으니까. 고마워.”
“아, 으, 응.”
아무렇지 않게 응가응가를 중얼거리며 햄버거를 다시 한입 베어무는 봄이가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 걸 느끼며, 세진은 멍하니 고 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오늘 밤은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