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용은 그 어두운 밤, 마치 죽은 것처럼 고요한 골목에서 ‘누군가’를 피하기 위해 하염없이 도망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눈이 짙게 내리는 날, 자기도 모르게 바뀌어있는 모습으로.
주위는 온통 눈, 눈, 눈. 어딜 봐도 오직 눈뿐이었다.
마치 액세서리점에서 파는 스노우돔처럼 눈발이 빗발치게 내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만 같은 어두운 골목에, 그 눈덩어리만이 색깔을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건, 밤이면 당연히 있어야 할 눈부신 형광빛이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불이 켜진 가정집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눈에 띄는 건 가로등 특유의 묘한 불빛, 그리고 그 불빛을 받아 빛나는,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만 같은 짙은 눈뿐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눈 탓인지, 초점이 안 맞는 카메라 렌즈라도 되는 것처럼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눈에 들어오는 그런 모습은, 지금 이 상황에서 현실감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상황을 더더욱 부채질하는 건, 대체 언제부터인지 ‘바뀐’ 것이 틀림없는 자기 모습이었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 그런 모습이 얼른 눈에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준용은 직감으로 그걸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처음 오는 곳이라 한들 마치 으리으리한 성처럼 큰 골목길. 어깨를 간지럽히는 ‘있을 수 없는’ 머리카락의 느낌. 아무리 갑작스런 누군가한테서 도망치고 있다 한들 이상하리만치 빨리 닳는 체력. 이렇게 어두운 데서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짧아진 팔다리의 느낌. 그 밖에도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퇴근하면서 입고 있던 양복도 어쩐지 애들 옷만큼이나 줄어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을 뿐더러, 그런 걸 생각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준용은 그저 저 알 수 없는 존재한테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상황에 놓였는지는 자기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흐릿하게 느껴져서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일단 어떻게든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틀림없이 자기는 여느 날처럼 만날 걷는 길로 퇴근하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 골목은 난생 처음 오는 곳이었다. 왜 자기가 이런 알지도 못하는 곳에 있는가, 왜 자기는 갑자기 ‘이런 모습’이 되어있는 것인가, 그리고 자기는 대체 누구한테 쫓기고 있는 것인가. 준용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차가운 바람은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준용을 마구 몰아붙였다. 뒤에서 자기를 쫓아오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바람이라도 되어 여기까지 찾아온 것만 같았다. 어두운 밤에 불어오는 거친 바람은, 마치 살을 에는 듯 준용의 체력을 점점 닳게 하고 있었다.
진공상태라도 된 것처럼 아무 소리도 느껴지지 않는, 귀가 아파올 만큼 어두운 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런 어두운 골목길이라 한들, 오히려 이런 골목길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죽은 골목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골목 자체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 끝없이 내리는 눈이 소리를 모두 묻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바람이 이렇게 거칠게 부는데, 신기하게 그 소리조차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거센 바람이란 걸 알 수 있는데도.
그러던 도중에도, 그 알 수 없는 무언가는 점점 준용과의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마치 그림책 속 괴물이 실제로 나타난 것처럼, 마치 누군가의 상상이 현실이라도 된 것처럼,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언가는 틀림없이 준용 뒤쪽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체 저게 무엇이며, 저 존재한테 잡히면 자기가 어떻게 될지는 준용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절대로 잡히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마치 본능과도 같은 느낌. 목숨의 위기. 준용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대략 그런 말들이었다.
이런 현대사회에서 떠올릴 만한 생각은 결코 아니지만, 지금 자기가 겪고있는 건 틀림없이 현실이었다. 맹수한테 쫓기는 초식동물이 된 것처럼, 매한테 쫓기는 아기새라도 된 것처럼, 준용은 그저 아무 생각도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눈은 마치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펑펑 소리를 죽인 채 내리고 있었다. 이 눈은 언제쯤 그치는 걸까. 어쩐지 이 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내리기 시작한 것만 같았다. 이 ‘세상’은 과연 언제쯤 끝이 보이는 걸까. 이대로 달릴 수밖에 없는 걸까. 아니면.
그 때였다.
준용은 자기도 모르게, 마치 뭔가에 걸려넘어진 것처럼 몸이 앞으로 기우는 걸 느꼈다. 이렇게 어두운, 짙은 눈이 내리는 골목을 미친 듯이 달리던 나머지 눈앞에 누군가 있단 걸 전혀 몰랐던 듯했다. 지금껏 사람이라곤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으니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즉, 지금 자기는 눈앞에 있는 누군가를 들이받고 쓰러지는 중이었던 것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에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와 함께 준용은 묘하게 마음이 놓이는 걸 느꼈다.
드디어 누군가와 만났구나.
그렇게 마음이 놓이자, 준용의 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천천히 감기고 있었다. 마치 잠이라도 드는 것처럼. 여전히 눈이 내리는 이 골목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