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언제적 일이었던가.
2년쯤 전 일일 뿐인데, 미아는 어쩐지 너무나 아득한 세월을 되돌아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그저 빨갛게 물든 하늘이었다. 다른 것도 떠오를 만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때 일을 되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것뿐이었다.
밤이었다. 온갖 빛이 눈부신 밤이었다. 그 날, 미아는 어두운 길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눈물을 머금은 채 이를 악물며 달리고 있었다.
나 혼자 내버려두고 어디로 간 걸까.
어느 날 밤 잠에서 깨어보니, 부모님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날은 이상했다.
원래 한참 어두워져야 집에 돌아오곤 했던 맞벌이 부모님이, 그 날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집에 있었다.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니고 평일인데 이상하다고 미아는 그 때 생각했을 터였다. 요즘 다투는 일이 많은 부모님이 둘 다 집에 있다는 것도 미아한테는 특이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미아가 돌아온 건 알아채지도 못한 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미아는 그 날도 스스로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웠다.
만날 자는 것보다 훨씬 이른 열 시쯤에 이불로 들어가려 할 때도, 부모님은 안방에서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 아무렇지 않게 넘긴 게 모든 것의 시작일지도 몰랐다.
평소보다 더 감정이 실린 목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는 그, 별것도 아닌 실수가.
새벽 두 시. 묘한 시간에 눈이 뜨여 물이라도 마시러 밖으로 나온 미아는 그 때가 되어서야 상황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단 걸 깨달았다.
집에, 아무 것도 없었다. 부모님만 사라진 게 아니라, 온갖 생활물품이나 그러한, ‘살아가는 데 꼭 있어야 할’ 것들조차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마치 미아의 방과 그 밖의 세계가 아주 딴판이기라도 한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미아는 눈이 동그래지는 걸 느꼈다. 불이 꺼진 집. 겨우 몇 시간만에 팔린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텅 빈 거실과 그 밖의 모든 것. 당황한 자기 목소리도, 발소리도, 어쩐지 묘하게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아까 안방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둘 다 평소보다 감정이 담긴 것만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미아는 어쩐지 여기 있는 게 무서워졌다. 만날 아무렇지 않게 혼자 있던 집인데, 지금 이 순간만은 정말 버틸 수 없었다.
그래서 미아는 이 어두운 밤중에 집을 뛰쳐나왔다.
어디라도 좋으니, 이 알 수 없는 상황을 누가 어떻게 좀 해줬으면 했다.
그 붉은 세상엔 미아만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어두운 밤중에 길거리를 헤매는 게 무섭다, 뭐 그런 생각은 이만큼도 들지 않았다. 사실 어느 순간, 미아는 자기가 대체 뭘 찾으러 이렇게 달리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부모님을 찾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아무튼 이 알 수 없는 상황을 말해줄 사람?
이 때, 미아는 자기 폰으로 부모님께 연락하면 된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만큼 미아는 넋이 단단히 나가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 미아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들, 도움은 이만큼도 되지 못했을 터였다. 뒤에 미아가 ‘새’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그 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말만 되돌아왔으니까. 게다가 미아는 당황한 나머지, 핸드폰을 자기 방에 둔 채 집을 뛰쳐나온 상황이었다.
계절은 언제였던가. 미아는 이제 그 때 기억이 흐릿해지는 걸 느꼈다. 너무나 붉은 하늘만 눈에 들어왔기에, 거기까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지만, 미아는 울지 않으려 애썼다. 지금 울면 모든 게 다 끝장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미아를 감쌌다.
아무도 없었다.
미아를 달래줄 사람도, 마음놓게 할 수 있는 사람도, 그 누구도 없었다. 지금 미아한테 있는 건, 가지고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자기 자신.
그것이야말로 미아가 지금 딱 한 가지 ‘가지고’ 있는 거였다.
그렇게 마냥 달리기만 하던 미아는, 어쩐지 뭔가 이상하단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까닭은 어쩐지, 이렇게 엄청 달리고 있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숨이 가쁘지 않다는 거였다. 그다지 운동신경이 좋지도 않은 미아가,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도 지치지 않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물론 아까 전까지만 해도 그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미아는 그게 신경쓰여 견딜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게 아니라도 이상한 게 더 있었다. 예를 들자면 몸집이 그랬다. 미아는 결코 또래 여자애들보다 몸집이 큰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살이 더 붙어야겠다고 어른들이 걱정할 만큼 마른 편이었다. 키도 그렇게 큰 편은 아니라서, 반에서도 키로 줄을 세우면 중간쯤에 들곤 했다.
하지만 지금, 미아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세상이 자기보다 조금 줄어든 듯한, 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어두운 밤인데도, 미아는 지금 자기가 ‘커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껏 봐왔던 세상이 조금 줄어든 듯한,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이 미아를 사로잡았다.
뭔가 달라진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미아는 아까 전부터, 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가면 갈수록 몸이 민감해지는 듯한 묘한 느낌이었다. 마치 라면이 끓는 듯한 느낌이라고 미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제 저녁에 먹은 게 컵라면이라서 그런 걸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마치 자기 몸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만 같은, 뭔가가 ‘바뀔’ 것만 같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느낌이 미아를 감쌌다.
그런 느낌이 절정에 이르자, 미아는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어딘지는 미아도 몰랐다. 뛰다가 지쳐서 멈춘 것도 아니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다른 어딘가가 아닌, 미아의 몸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미아는 천천히 ‘바뀌고’ 있었다. 마치 새로 돋아난 잎이 몸을 뒤덮는 것처럼, 미아는 자기 몸 속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똑똑히 느꼈다.
먼저, 머리카락이 살살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마치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쩌면 그건 정말 미아가 무서운 나머지 떨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미아한테는 지금 이 상황이 그저 두려웠던 것이다.
마치 몸을 흠씬 두들겨맞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의 근육이 눈물이 날 만큼 아파왔다. 이게 오랫동안 달려서 그런 게 아니란 건 미아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오래 뛰었다 한들, 이런 식으로 숨도 못 쉴 만큼 온몸이 저리진 않을 터였다.
이대로 죽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미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있었다. 여기서 죽긴 싫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죽고 싶진 않았다.
왜 오늘 나는 이런 꼴을 당하는 걸까. 만약 하느님이 도와주셔서 앞으로도 살 수 있게 된다면 난.
거기까지 생각하다, 미아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괜찮아?”
거기까지 듣고 나서야, 미아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아직도 멍한 탓에 이 상황이 얼른 와닿지 않았다. 아마 아까 잠시 멍하니 있는 동안 시간이 조금 흐른 듯했다.
얼른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자, 미아는 아까와 달리 지금은 몸이 하나도 안 아프단 걸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몸이 쑤셔서 정말로 죽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다.
미아가 멍하니 있는 동안, 어느새 눈앞엔 처음 보는 사람이 서있었다. 대략 20대쯤 되어보이는 남성이었다. 그 사람은 미아가 누군지 안다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미아는 이 사람과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자한테 괜히 걱정을 끼치는 것 같아서, 미아는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려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러며 마음을 다듬다가, 미아는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물론 몸은 아까보다 훨씬 좋았다. 그렇게까지 쿡쿡 쑤셔댔단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 미아는 멀쩡했다. 하지만 그게 미아의 불안한 마음을 더더욱 부추겼다. 마치 뭔가 다른 존재가 된 듯한. 지금까지 자기가 아니라.
그러고 보니, 왜 지금 자기는 이 오빠(라 보이는 사람)와 키가 비슷한 거지?
그동안 깨닫지 못하던 데 눈길이 가자, 미아는 점점 더 뭔가 이상한 걸 찾아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장난감처럼 느껴지는 주위 풍경.
왜 그럴까.
미아는 지금, 하루에도 몇 번씩 봐오던 ‘자기자신’을 확인하는 게 자꾸만 무섭게 느껴졌다.
“그래서 넌 누구지?”
그 처음보는 남자는 미아한테 그렇게 물었다. 지금껏 미아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묘한 질문이었다. 내가 누구냐니. 대체 왜인진 모르겠지만, 미아는 그걸 태어나서 처음 들은 것만 같았다.
나는 누구였더라.
그런 갑작스런 질문이라 처음엔 멍하니 그런 생각에 빠졌지만, 이내 미아는 마치 새학기에 자기소개라도 하는 것처럼, 천천히 입을 뗐다.
“유미아. 7월 7일생…인데요.”
“그럼 너는 남자애니? 아니면 여자애?”
가면 갈수록 너무나 낯선 질문이었다. 자기소개를 하라는 말이라면 모를까, 미아는 이런 질문을 정말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만약 평소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미아는 영문을 알 수 없단 표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봤을 터였다.
하지만 미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방금 귀에 들린 낯선 ‘자기 목소리’를 다시 확인하려고.
마치 방금 전 들은 목소리가 꿈이나 뭐, 그런 거라 여기기 위해서.
“여자애…”
귀에 들린 그 목소리는, 틀림없이 꿈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이었다.
그 때, 다시 한 번 귀에 들린 자기 목소리로 미아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마, 지금 자기가 하고있는 모습은.
지금까지 죽 미아 자신이었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걸.
그건 혹시 꿈이 아니었을까.
난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나고 자랐으며,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건, 겪었다고 여기고 있는 건 모두 지어낸 게 아니었을까.
미아는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자기 기억보다 현실이 더 무겁게 느껴질 때, 미아는 가끔 그런 생각에 빠졌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왜 내가 아니어야 할까.
‘나’는 왜 이렇게 바뀐 걸까.
몇 번이고 고민했지만 나오지 않는 답을 잊으려고, 미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내일은 또 웃으면서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