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비상은 지금, 자기 방에 주저앉아 있었다. 사실 ‘그 일’ 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니었다. 겉으로만 보면 일주일은 지난 것같지만, 사실은 고작 세시간쯤 지났을 뿐이었다. 비상의 핸드폰에 비치는 시계는 지금 새벽 두 시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은 어두웠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비상은 지금, 자기 방에 불을 켜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창문엔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저 멀찍이 있는 녹색 간접조명만이 비상을 어스름하게 비출 뿐이었다.
그 어둑하면서도 딱 맞는 불빛이, 지금 비상한테는 가장 편하게 느껴졌다. 딱히 아까 전 그 일에 절망한 것도 아니었으며, 침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밝기의 불빛이 가장 편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비상은 아주 오랜만에 ‘작아져’ 있었다.
이미 다른 이들이 많이 말하긴 했지만, 이런 자세는 참으로 마음이 편했다. 이렇게 하고있는 모습이 마치 태아와 같기에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비상은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비상이 잘못 알고 있는지 어떤지는 둘째치고, 정말 그 말대로였다. 누군가는 그걸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라 할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그걸 약한 꼴을 보이는 것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비상의 마음은 참으로 잔잔했다. 적어도 아까보단 훨씬 더.
이렇게 앉아있는 동안, 비상의 머릿속에선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물론 생각뿐만 아니라, 온갖 감정들도 비상의 마음을 헤치고 지나갔다. 지금까지였다면 그냥 넘겨버렸을 그러한 생각이나 감정들이, 이번엔 평소보다 심하게 비상을 뒤흔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상은 사실 자기가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강하다고 알게모르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을 보면, 그건 자기를 너무 높게 잡은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이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상도 자기가 모르는 사이 ‘센 척’을 할 때는 많았던 것이다. 그게 지금 와서 이런 식으로 밝혀졌을 뿐이었다.
이런 자세를 하고 있기에, 그리고 ‘이런 모습을 하고 있기에’, 비상의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지금껏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이 이 어둠 속에서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비상도 그걸 받아들일, 똑바로 바라볼 용기는 지금 없었다. 아마 사람마다 제각기 ‘그러한 것’이 있을 터였다. 비상은 지금 그 앞에 서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미 이 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미 거친 길일지도 몰랐다.
잠시 뒤, 비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만히 불을 켠 뒤, 전신거울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지금껏 마주보려하지 않던 그 모습과, 다시 눈을 마주쳤다. 이렇게 자기자신의 ‘다른 모습’을 마주보는 건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고, 비상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바뀐 자기’를 가만히 보는 건 특히 더더욱 오랜만이었다. 아무리 비상이라 한들, 그걸 자기가 나서서 하는 건 좀 꺼려졌던 것이다.
이젠 시간이 지나서인지, 안경을 안 써도 눈앞이 잘 보이는 건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목은 여전히 마주보기 껄끄러운 곳투성이였다. 이제 두 달 남짓 지났는데도 그것만은 그대로였다. 다른 사람의 ‘바뀐 모습’이라면 그래도 바라볼 수는 있을 텐데, 그 바뀐 모습이 자기자신이라면 그렇게 안 되는 게 사람인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거울 너머에 있는 비상은 머리도 짧은 데다가 안경을 벗었단 걸 빼면 자기란 걸 쉽게 알 수 있는 생김새라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마치 ‘다른 방식으로 자라난 자기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상이 어느 정도 좋은 집안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그 밖에 뭔가 다른 일이 있었다면, 마치 그런 ‘만약’의 상징을 보는 것만 같았다. 사람에 따라 그다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그런 느낌은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더했다. 어쩌면 비상이 ‘다른 모습’인 자기를 마주보고 싶지 않았던 것도, 그 ‘아래쪽’때문일지 모르는 일이었다. 비상이 지금 입고있는 건 평소 집에 있을 때 입곤 하는 가벼운 티셔츠와 바지. 그래서인지 어떤지, 평소와 다른 부분이 여러 모로 눈에 띄었다. 사실 보이는 곳뿐만 아니라, ‘안 보이는’ 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눈에 안 보인다 한들, 비상은 그러한 곳도 바뀌어있단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걸 쑥쓰럽다고 해야 할까, 껄끄럽다고 해야 할까.
그런 자기를 가만히 보다가, 비상은 맨 처음 ‘이런 모습’과 맞닥뜨렸을 때를 떠올렸다. 앞서 말했듯 아득한 먼날처럼 느껴졌지만, 비상은 그 때 일을 아직 잘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잘 기억하고 있는 대목은, 이렇게 바뀌긴 했지만, 비록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비상만은 눈앞의 이게 자기 모습이란 걸 금방 알아채리라는 것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민망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비상은 아무튼 눈앞의 이 모습이 ‘자기가 바뀐 것’이란 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건, 그 ‘민망하다’는 감정 그 자체일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비상은 그런 감정을 느낀 게(특히 성인이 된 뒤부터는) 그다지 없었던 것이다. 딱히 자기가 부끄럽다는 생각도, 모자라다는 생각도(실력이 모자랄 때가 있단 건 물론 느끼지만,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가 모자라단 생각을 한 적은 없음) 하지 않은 비상한테 그건 특별한 일이었다. 물론 무의식 속에서 그러한 느낌을 모른 척했을지도 모르지만, 비상은 지금, 정말로 자기자신과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비상은 드디어 누군가와 만날 마음이 섰다. 아마 지금 놀이가 이뤄지는 옥상으로 가면, 비록 놀이는 끝났더라도 누군가 있을 터였다. 이제 이 달이 지나면 ‘놀이’도 끝이었다. 그게 아쉬워진 이가 한두 명쯤 남아있다 한들,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아무도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비상은, 지금 나가고 싶어졌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걸 기다릴 생각조차 없었다. 드디어 바깥과 마주볼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때가 됐다.
그런 생각에 다다르자, 비상은 바로 채비를 한 뒤 가만히 집을 나섰다.
자기 마음속의 ‘답’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와 다른 눈길로 자기 자신과 마주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