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우아…”
꽃잎은 태어나서 처음 만지는 스마트폰 속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론 스마트폰 자체도 신기했지만, 그것보다 오래 전부터 봐온 ‘동경의 대상’과 만난 기쁨이 더 커서였다.
지금 꽃잎의 눈에 들어온 건, 어떤 사이트에 있는 광고였다.
현실 속 사람들이라면 이런 광고같은 데 신경쓸 리가 없겠지만, 꽃잎한테는 사정이 달랐다. 꽃잎한테 광고는 보통 존재가 아니라, 자기 세상에 있을 때부터 죽 눈을 뗄 수 없는 재미있는 존재였다. 꽃잎은 멀리서 현실세계를 바라보기만 할 때, 여기저기 눈에 뜨이는 광고가 마냥 재밌게 느껴졌다. 자기는 절대 살 수 없는 것들이 여기저기 나타나는 모습은, 마치 책 속에 자기가 절대 만질 수 없는 신기한 물건이 나왔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현실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속으로 생각하던 꽃잎한테, 그러한 광고는 귀중한 정보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나도 현실 속에 있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가슴이 두근대던 가운데, 꽃잎은 문득 그런 생각에 빠졌다. 그런 생각을 하자, 지금 눈에 비치는 광고가 전과는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이야기 속에서나 있는 줄 알았던 온갖 물건들이나 서비스가, 이젠 꽃잎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보청기처럼 지금 당장 꽃잎한테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 한들, 어쩐지 ‘손이 닿는다’는 것만으로도 전보다 더 눈길이 가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돈을 빌리거나 뭐 그런 건 하고싶지 않았지만.
화면 너머 텔레비전에서 본 대출회사의 무서운 모습을 생각하며, 꽃잎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꽃잎이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은 뒤, 영준 대신 회사에 가려 집을 나설 때였다.
“응?”
누군가 뒤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꽃잎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엔 이미 꽃잎이 알고 있는 여자애가 있었다. 나이는 초등학교 6학년쯤 될까. 나이보다는 조금 더 성숙한 느낌이 드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어깨까지 오는 검정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으며, 몸집은 보통 여자애들과 비슷했다. 눈빛이 평소와 달리 날카로운 건, 이 아이가 영준을 그다지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터였다. 이 아이, 단비는 누군가를 경계하거나 화가 날 때면 이렇게 눈빛이 날카로워지곤 했다. 평소엔 모범생같은 느낌인데, 이럴 때면 무섭게 느껴졌단 걸 꽃잎은 잘 기억하고 있었다.
화면 너머로만 본 아이를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는 생각에, 꽃잎은 도무지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없었다. 이 아이는 영준의 두 딸 중 맏이였다. 그러한 까닭으로, 물론 꽃잎도 이 아이를 잘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기만’ 잘 알고 있다는 말이었지만.
단비는, 무척 차가운 눈빛으로 꽃잎을, 이라기보다 영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꽃잎은 오랫동안 봐온 만큼 이 아이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친하게 지낼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게다가 오래 전부터 봐서 잘 아는 대로, 애초에 이 아이는 아버지인 영준을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면서도, 꽃잎은 마음 속 구석이 아파오는 걸 느꼈다.
그러기를 잠시, 꽃잎은 회사에 가려 집을 나섰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곁엔 영준 역시 있었다. 물론 꽃잎을 따라온 것이었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꽃잎이었지만, 큰길로 가면 갈수록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이렇게 평범한 거리를 영준과 같이 걷고 있단 걸 깨달으면, 꽃잎은 지금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물론 그건 꽃잎 자신이 큰 실수를 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하물며 영준 탓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가만히 생각하면 다 꽃잎 때문이었다. ‘현실세계 속에 키가 작은 긴 은발머리 여자애’는 너무나 튀는 존재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통 옷을 입은 보통 키의 사람들 속에 ‘자기 자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섞이니 그 위화감은 뭐라 말로 할 수 없었다. 바로 옆에서 하늘하늘거리는 레이스가 눈에 띌 때마다, 꽃잎은 대체 어디에 눈길을 주면 좋을지 몰라 혼자 당황하곤 했다.
지금은 자기가 아닌데도, 영준이 다른 사람들한테 보이는 것도 아닌데도, 꽃잎은 자꾸만 고개가 숙여지는 걸 느꼈다. 오히려 당사자인 영준은 그런 생각이 없는지,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큰길을 걷고 있었다. 그 작은 몸집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큰 발걸음으로.
이러다가 혹시 영준 님이 눈치채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어서, 꽃잎은 어떻게든 고개를 들고 아무렇지 않게 걸으려 애썼다. 물론 그게 쉽게 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해서 영준의 회사에 다다르자, 생각보다 느긋한 분위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말을 들어보니, 영준의 회사는 개발하던 최신작이 막 나온 상황이라서 지금 이런 분위기인 듯했다. 영준이 회사에서 하는 작업도 시나리오가 대다수였기에, 지금은 정말로 그다지 할 일이 없었다. 자잘한 일은 몇몇 있었지만.
그래서일까. 항상 화면 너머로 보던 영준의 자리에 앉은 다음, 꽃잎은 잠시 멍한 느낌에 빠졌다. 이제부터 뭘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였다. 물론 일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꽃잎이 이런 자리에 오는 건 처음이니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꽃잎이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의 모니터를 가만히 보고있을 때였다.
“저, 오늘은 그 작업을 안 하세요?”
바로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듣자, 꽃잎은 정신이 번쩍 드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영준은 틈만 나면 ‘그 일’을 하곤 했다. 오랫동안 봐온 꽃잎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꽃잎이 그 작업을 할 차례였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할지라도, 꽃잎 자신이 상황을 이렇게 만들고 말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