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꽃잎은 어찌할 바 모른 채 눈앞의 풍경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한 채.
지금 꽃잎 앞엔, 한 남자가 쓰러져있었다.
나이는 30대 중반쯤 되었을까. 흰 셔츠에 정장바지를 입은 채, 남자는 아주 의식을 잃고 있었다. 몸집은 아마 보통에 가까웠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았다. 이건 꽃잎이 모든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자상한 아버지’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의식을 잃은 상황이었지만, 어쩐지 남자의 표정은 무척 편안했다. 적어도 꽃잎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자기가 품고있던 깊은 고뇌에서 이제야 벗어난 듯한, 그 표정이 꽃잎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실 꽃잎은 눈앞에 쓰러져있는 이 남자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도 이렇게 되기 훨씬 전, 10년을 훌쩍 넘길 만큼 옛날부터.
남자를 보며, 꽃잎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진 어쩌면 좋을지 몰라 혼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지만, 이젠 꽃잎도 이 사태를 어떻게든 풀어야만 했다.
꽃잎의 주위는 그저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긴 ‘현실’이 아니니 그 역시 당연한 이야기였다. 꽃잎은 아까 전, 실수로 이 사람을 여기로 ‘끌고오게’ 된 것이다.
꽃잎이 바라서 이런 상황이 된 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꽃잎은, 대체 어쩌면 좋을지 몰라 혼자 헤매고 있었다.
이럴 땐 어쩌면 좋을까.
지금 꽃잎은 그걸 가장 알고 싶었지만, 그걸 가르쳐줄 사람은 여기에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꽃잎 탓이란 것만은 틀림없었다.
꽃잎은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죽 지켜보고 싶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퍽 오랜 시간 동안, 꽃잎은 정말로 그렇게 해왔다. 그러니까 오늘도 아무 일없이 지나갈 터였다. 꽃잎이 방금 전과 같은 ‘사고’를 내지 않았다면.
이제 어쩌면 좋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 뜨려하지도 않는 남자를 보며, 꽃잎은 아주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한다고 뭔가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게 아니란 건 꽃잎도 잘 알았다. 하지만, 정말로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꽃잎은 여전히 그걸 잘 알 수 없었다. 그저 ‘현실세계’, 즉 이 남자가 사는 세상을 만날 하던 대로 지켜보고 있었을 뿐인데, 오늘은 다른 날과 달랐다. 꽃잎은 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현실세계를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을 터였다. 딱히 뭔가 사고가 일어날 까닭은 틀림없이 없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꽃잎은 몇 번이고 그 남자, 영준을 다시 봤다. 자기가 지금 얼마나 잘못했는가는 잘 알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꽃잎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으니 자기 책임인 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을 바닥에 늘어뜨린 채, 꽃잎은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 그리고 자기자신과 영준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