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맹호는 오래 전 그 순간에 있었다.
때는 맹호가 여기로 오기 전, 그러니까 산속에서 솔이와 같이 지낸 지 얼마 안 될 무렵이었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묘하게 더운 느낌이 맹호를 감쌌다. 산길 깊은 곳에 있는 집이라서 그런지, 온갖 벌레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다.
맹호는 그 때, 솔이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딱히 뭘 잘못해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저 맹호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랬을 뿐이었다. 물론 맹호의 생각일 뿐이지만, 어쩐지 편하게 앉으면 예의를 안 지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다리가 저렸지만 그건 꾹 참았다.
맹호가 처음 만난 뒤 대개 다정했던 솔이의 아버지도 오늘은 조금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맹호가 뭘 잘못한 건 결코 아니었다. 다만 지금부터 할 얘기가 이런 표정이 될 만큼 ‘진지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맹호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솔이 아버지의 마음도 잘 알고 있었다.
잠시동안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음. 맹호도 맹호지만, 솔이 아버지도 뭐라 말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드디어 솔이 아버지가 입을 뗐다. 방금 전처럼 여전히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 너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아리라 생각하지만…”
맹호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솔이 아버지도 그런 맹호를 믿었는지 어떤지, 말을 이어갔다.
“맹호 네게 다시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우리 솔이는 조금 사정이 있어서…”
솔이 아버지는 그런 말과 함께 말꼬리를 흐렸다. 맹호는 그 말에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야 고맙지만, 맹호 네게 너무 부담을 지우는 거 같아서 미안하다.”
맹호는 솔이 아버지가 말하는 ‘그 사정’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말대로라면 솔이 부모님이 이렇게 걱정하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맹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맹호도 자기가 솔이한테 도움이 될지 어떨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맹호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이런 말을 입에 담았다.
“저는 괜찮아요. 그…”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맹호는 솔이와 같이 있고 싶었다. 서투를지도 모르지만, 자기가 도움이 될 수가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솔이와 헤어진다는 것 자체가 맹호한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때 일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맹호 입장에서 그 날은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따가운 햇살도 집안 특유의 냄새도, 온갖 것들을 맹호는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렇게 꿈을 꾸는 중이라 하더라도.
그 생각과 함께, 맹호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부신 햇살이 창문 너머로 여기까지 들어오는 게 곧장 느껴졌다.
그렇게 잠에서 깬 맹호는 마치 그 때 일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까지도 그 때 일을 잊어버렸다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꿈속에서도 이렇게까지 잘 기억하고 있을 줄은 맹호도 미처 몰랐다.
사실 맹호는 솔이한테 이 때 들은 말을 전하지 않았다. 물론 솔이 부모님이 비밀로 해달라 말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맹호 자신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기도 솔이한테 숨기는 게 원래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자, 맹호는 다시 한 번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맹호가 그런 마음으로 씻은 뒤 학교로 갈 채비를 하고있을 때였다.
“맹호야. 맹호야.”
그런 말과 함께, 솔이가 뭘 두손에 든 채 맹호가 있는 거실에 나타났다. 평소보다 훨씬 더 눈을 반짝이면서였다. 자세히 보니, 솔이가 두손에 든 건 물이 담긴 컵이었다.
맹호가 그걸 멍하니 보고만 있자, 솔이는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을 건넸다.
“맹호야. 우리 복불복하자.”
“어?”
그 순진무구한 표정을 보며, 맹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되묻고 있었다. 솔이는 무척 흥미진진하단 표정으로 두손에 쥔 컵을 맹호한테 내밀었다.
“그냥 재밌을 거 같아서. 안 돼?”
사실, 이렇게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면 맹호도 안 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곤 솔이가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데?”
“있지. 여기다가 한쪽에만 소금을 섞은 다음에, 둘 중 하나가 마시는 거야.”
“그럼 솔이 너도 마시는 거야?”
“응.”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솔이를 보자, 맹호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머금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단 생각에, 맹호는 이렇게 물었다.
“솔이가 섞으면 어떤 건지 알잖아.”
“그럼 맹호가 할래?”
이 말에 솔이는 가지고있던 수저를 맹호한테 내밀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럼 내가 아는데…”
“음…어쩌지…”
그렇게 둘은 아침부터 물이 든 컵 두 개를 앞에 둔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가만히 서있는 컵 두 개가 아침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이, 이건 나중에 다시 생각하는 게 낫겠다. 그지?”
결국, 이 일은 맹호가 이렇게 말하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과연 정말로 나중에 다시 할지 어떨지는 맹호도 잘 몰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