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아침, 비상은 일어나자마자 엉뚱한 소리를 전해들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붉은 밤의 주장 의영한테서.
“뭐라구요?”
비상은 다시 한 번, 자기가 방금 들은 말을 되짚었다.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틀림없이 방금 의영은 ‘오늘은 금빛 밤 대 파란 밤만 경기하지만, 또 전같은 일이 터지면 머리아프니까 붉은 밤은 안 와도 된다’란 말을 했을 터였다. 정말로 비상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래도 돼요?”
“적어도 지금은 그게 더 나을 거 같더라. 비상이 너도 그런 생각 안 드니?”
그 말에, 비상은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어제 그런 일이 연달아 있었는데, 또 비슷한 일이 터지면 상황이 더 꼬인단 걸 알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의영의 말투를 보면, ‘놀이’를 하는 건 아니지만 오늘 붉은 밤 몇몇이 모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세한 건 비상도 알 수 없었지만.
오늘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비상은 눈앞에 놓인 자기 일에 몰두했다. 그게 지금 자기가 해야 할 일이니까.
그렇게 비상이 일을 끝마치려 할 때였다.
“뭐야?”
저녁 늦게 강산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비상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입에 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몇몇이 모인다’는 말을 의영한테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몇몇이 누군지는 전혀 듣지 못했지만.
그리고 전화를 걸어온 강산은, 비상이 전화를 받자마자 뜬금없이 이런 말을 퍼부어댔다.
“뭘 뭐야, 란 거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우리 집에 쳐들어와라. 알았냐?”
“쳐들어오라니, 내가 무슨 도둑이야?”
“그딴 게 무슨 상관이야. 암튼 빨리 와. 안 오기만 해 봐라.”
전화를 끊은 뒤, 비상은 잠시동안 정신이 멍해지는 걸 느꼈다. 너무나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저 형은 바로 저번 술자리를 기억조차 못하는 건가. 비상 생각보다 강산은 딛고 일어나는 게 빠른 남자인 듯했다.
저런 말까지 들었는데 늦게 갔다간 어떻게 될까.
쓴웃음을 지으면서, 비상은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품에 집어넣었다. 자기한테는 지금 당장 가야 할 곳이 있었으니까.
“어유. 우리 엘리트님 오셨구만.”
비상이 강산의 집으로 ‘쳐들어가자’, 강산은 일어나지도 않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서 고개를 돌렸다. 이 사람은 그렇게 일어나기가 싫은 건가. 굳이 앉아서 손님을 반기는 강산을 보며, 비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대체 왜 사람을 이런 식으로 부르는 거야?”
“내가 부르고 싶은데 불만있냐?”
“다른 사람도 이런 식으로 불렀어?”
“그럼 이렇게 부르지 어떻게 부르냐?”
강산의 아무렇지도 않은 대답에, 비상은 속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 사람의 사고는 대체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 성격상 그게 궁금해진 비상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다.
시간은 벌써 저녁 일곱 시 오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산도 죽 집에 있었던 건 아닌지, 아주 지친 표정으로 비상을 내버려둔 채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안에서 들리는 소리로 볼 때, 샤워를 하고 있는 듯했다.
“젠장, 이렇게 더운 날에 밖에서 뭘 한다고…”
잠시 뒤, 강산은 이런 말과 함께 밖으로 나온 뒤 곧장 에어컨 온도를 낮췄다. 강산의 말에 따르면, 요즘엔 날이면 날마다 과활동을 도우러 밖에 나갔다오는 듯했다. 여전히 언덕이 어떠니 불만을 늘어놓는 강산이었지만, 그 말투로 볼 때, 그리 싫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집은 밤마다 에어컨을 이렇게 트는 거야?”
에어컨이 너무나 잘 듣는 나머지 살짝 추워졌단 생각을 하며, 비상은 그렇게 물었다. 강산은 그게 불만이었는지, 투덜대며 이렇게 대답했다.
“신발. 더운데 이럴 때 쓰지 언제 쓰냐? 모처럼 아늑한 집에 왔구만.”
저 말로 볼 때, 강산은 집에 있을 때(대개 저녁)면 항상 이렇게 에어컨을 트는 듯했다. 사실 가만히 보면 강산은 항상 묘하게 더위를 타는 데가 있긴 했다. 어제 일이라도 말해볼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가, 비상은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저렇게 술을 ‘제대로’ 마시는 데 얽매이는 걸 보면, 아마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을 터였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으니, 이윽고 다른 연장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점차 늘어나는 걸 보자, 비상은 어이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을 입에 담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부른 거야?”
“이 놈 집은 만날 올 때마다 에어컨이 틀어져있단 말이야. 비상이 너도 잘 지냈고?”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잎새가 이런 말과 함께 신발을 벗자, 강산은 열받는단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보면 이 형도 참 성질을 많이 내는 성격이었다.
“신발, 그럼 더운데 어떡해?!”
“아니. 넌 그렇게 더위를 잘 타나 해서…”
“더위 잘 타는데 니가 보태줬냐? 게다가 이럴 때 창문을 열어놓으면 밤인데도 찰싹 달라붙는 커플들 목소리가 막 들린다고. 사람 염장 터지게시리.”
그 말과 함께, 강산은 꽉 닫힌 베란다 문을 가만히 노려봤다. 거기까지 가서야, 비상도 왜 이 형이 이렇게 짜증을 내는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
다른 연장자들도 그렇게 여겼는지, 뒤에서 들어오던 별밤이 이런 말을 불쑥 꺼냈다.
“결국 그거 때문이네?”
“시꺼!!”
강산은 고개를 휙 돌리며, 난 모른단 모습을 보였다. ‘아무튼 이 사람들은 밤에도 사람이 일어나있단 걸 모르고…’라 중얼대는 걸 보면, 그런 데에 당한 적이 꽤 많았던 듯했다.
그렇게 연장자들이 항상 그렇듯 시시덕대고 있을 때였다.
“어?”
강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들어 그 쪽, 즉 현관문을 쳐다봤다. 거기엔 비상은 물론, 다른 이들도 짐작치 못한 사람이 가만히 서있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현이었다.
“누, 누가 알려준 거야?!”
평소보다 두 배는 더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며, 강산이 이렇게 외쳤다. 지금은 검정 야구모자를 눌러쓴 ‘비상 일행과 별 차이가 없는’ 모습인데도 동요하는 강산을 보며, 잎새가 소리를 죽인 채 킬킬댔다.
“저 놈도 알고 보면 참 좋은 자식인 거 같아…아야!”
“얘기듣고 왔는데.”
“누구한테?!”
옆에서 자길 놀려대는 잎새를 때린 뒤, 다시 당황하는 모습으로 강산이 그렇게 물었다. 현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가만히 곁에 있던 잎새 및 별밤을 손으로 가리켰다.
“야, 이 놈들아!!”
그 말과 함께, 강산은 재빨리 먼저 도망간 둘을 뒤쫓기 시작했다. 이 좁은 집에서 뭘하고 있는 건지 어이가 없어진 비상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자, 여전히 멀뚱하게 서있던 현이 이런 말을 걸어왔다.
“이렇게 된 다음 와도 안 되나?”
“저 형은 아마 자기 집을 이런 꼴로 해두고 널 부르려 하지 않을 걸.”
사실, 그건 지금껏 강산이 여성진(연장자라 할지라도)을 자기 집에 안 부른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너무 당연해져서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당연히 방은 강산의 옷이나 속옷이나 교재나 술병으로 어지러워져 있었던 것이다. 전엔 현뿐만 아니라 승지도 강산의 집에 온 바 있었지만, 그 땐 어쨌든 지금보단 방이 훨씬 더 말끔했다. 제아무리 강산이라 한들, 이런 데 이성을 부르는 건 있을 수 없다 여기는 게 틀림없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뭔가 찔리는지, 강산은 저 둘을 뒤쫓다말고 비상을 돌아보며 이렇게 소리쳤다.
“지금 남의 보금자리 까는 거냐, 너?”
“맞는 말인데 뭘.”
“이게 진짜…”
강산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비상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아무렇지 않은 모습에 반쯤 포기했는지, 강산은 잎새 일행을 쫓는 걸 그만두더니 왜 여성진을 안 불렀는지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 말에 따르면, 강산은 아침에 의영한테 들은 말에 괜히 화가 나서(‘우리가 무슨 문제아냐?!’라 생각한 듯했다) 이렇게 모이자 말했다는 듯했다. 오라고 한 건 좋았지만, 여성진한텐 차마 용기가 안 나서 못했단 말도 덧붙였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가만히 있던 별밤이 이런 말과 함께 킬킬댔다.
“이제 현이가 있으니 여기서 한 말 다 새어나가겠네.”
“시, 시꺼.”
그걸 보던 비상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사람은 자기 밤 여성진을 대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워하는 건가, 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강산은 그걸 들킨 게 정말 민망했는지, 이런 말과 함께 눈길을 돌렸다.
“다, 다음부턴 차 끌고와서 부를 거니까 그렇게 알어. 엉?”
“차가 생기는 게 먼저 아닌가?”
“아, 암튼 면허만 있음 됐지 무슨 상관이야. 잎새 너도 없으면서.”
찔린 곳이 그렇게 아팠던지, 강산은 아예 잎새한테서 등을 돌려버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올 사람은 하나둘씩 오고 있었다. 연소자인 비상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뭣했지만, 아무리 봐도 죄다 연장자들뿐이었다.
“연소자들이 불편해하는 건가?”
여전히 이런 자리에 우직하게 끼어있는 군청을 보며, 비상은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연소자는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군청은 고개를 젓고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아닌데, 강산이 형이 무섭단 말이 많이…”
“크하하하. 저 불쌍한 놈.”
이 말이 나오자마자, 연장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기에, 비상도 이런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는 있겠네.”
“뭘 그럴 수가 있어?!”
비록 화가 머리끝까지 난 강산이 비상의 멱살을 잡긴 했지만, 아무튼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 뒤로 들은 말에 따르면, 이제 더 올 사람은 당분간 없는 듯했다. 일단 의영도 오겠단 말은 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다들 가만히 있을 때였다.
“야, 큰 거 건졌다.”
“뭔데?”
잎새가 갑자기 강산 방 안에서 이런 말을 꺼내자, 별밤이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그 쪽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자기도 강산 방 쪽으로 휙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강산은 미심쩍단 눈빛으로 저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니들 또 뭐하는 거야?”
“이쯤이면 큰 거 아니냐?”
강산이 그리로 달려가자, 잎새는 아무렇지 않게 그 ‘큰 거’를 내밀었다. 강산의 어깨너머로 보니, 구멍이 숭숭 뚫린 동그란 막대기 비슷한 게 눈에 띄었다. 비상이 뭘 크게 착각한 게 아니라면, 저건 아마 죽부인이 틀림없었다.
잎새도 그게 신기한지, 아까부터 죽 그 죽부인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야, 이게 강산이의 죽부인…”
“시꺼. 만지지 마!”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강산은 얼른 그 죽부인을 뺏으려들었다. 잎새는 그 속내를 알아챘는지, 반쯤 놀리는 말투로 이런 말을 입에 담았다.
“왜, 니가 만날 안고 자서 그러냐?”
“남의 물건에 누가 막 손대래. 엉?”
“하긴 너도 외롭겠지. 혼자 사느라 고생이…야, 때리지 마!!”
“야 이 자식아. 더우니까 쓰지, 그럼 뭐하러 써?!”
아까부터 죽 언짢은 표정이었던 강산은, 잎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공격을 퍼부었다. 잎새가 죽을 힘을 다해 그걸 막아내는 동안, 강산은 정말 열받았는지 혼자 씩씩대고 있었다.
하지만 잎새는 여전히 농담을 할 기운이 있었는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들었다.
“근데 이거 진짜 시원해보인다. 야, 나도 한 번…아야!!”
“이 자식이. 뭐라고? 미쳤냐?!”
“넌 여름에 이런 것도 누리고 얼마나 좋냐. 이게 그 껴안는 베개…야! 발로 차지 마!!”
가까이 다가간 비상은, 강산한테 발로 차이고 있는 잎새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잎새는 그래도 저 죽부인을 시험해보고 싶었는지, 여전히 품에서 떼어놓지 않고 있었다. 덕택에 강산의 발차기가 평소보다 더 세지긴 했지만.
“부러우면 자기가 사지, 뭘 남이 쓰던 걸 가지고 놀아?”
“내가 그렇게 껄끄럽냐?!”
“근데 이거 어디서 살 수 있어?”
비상의 말에 엉뚱하게 강산이 화를 내자, 이번엔 가까이 다가온 현이 이렇게 물어왔다. 아마 현은 저 신문물(에 가까운 것)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암튼 니가 안고 있음 더러워지잖아 이 자식아. 당장 안 내놔?!”
“야야, 알았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발로 그만 좀 차. 나 죽겠다.”
강산의 발길질을 더 참을 수 없었는지, 잎새는 앓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죽부인은 주인한테 돌려준 뒤였다. 강산은 다시 한 번 이를 부드득 갈더니, 죽부인을 ‘안전한 데’에다가 고이 모셔놓았다.
“근데 오늘 여기서 뭘하는 거냐. 밤샘? 술먹고 떠들기?”
“일단 과자는 좀 있는데, 술만 먹긴 아깝고…”
상황이 좀 진정된 뒤에 잎새가 이렇게 묻자, 강산은 잠시 생각하다 말꼬리를 흐렸다. 이 형은 정말 거기까지 생각하진 못한 것 같았다.
“친구. 설마 여기서 텔레비전만 보고 가는 건 아니겠지?”
“시, 시꺼. 뭔가 할 게 있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별밤이 놀리듯 묻자, 강산은 얼른 그렇게 말한 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늘은 사정상 파랑도 없어서인지, 강산은 진짜 어쩌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걸 지켜보던 별밤이,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뭐하면 우리도 로봇이나 만들어서 먼저 부수는 놈이 이기는 걸로 할까?”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이야. 그건 진짜 재밌었는데. 뒤집고 긁고…근데 솔직히 강산이 쟤가 만들 수 있는가는 둘째치고, 조종은 못 할…으아악!”
별밤의 말에 잎새가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끼어들자, 강산은 곧장 잎새의 뒤를 쫓았다. 이젠 저런 모습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만난 지 한 달이 겨우 찼을 뿐인데, 비상은 이 어이없는 풍경에 익숙해진 것이다.
“뭐, 그럼 난 일이나 하지.”
그렇게 일을 벌여놓고 수습도 안 한 별밤은, 탁자 위에 자기 짐을 얹어놓으며 대뜸 그렇게 말했다. 그 짐은 별밤이 쓰는 노트북, 그리고 언뜻 봐도 꽤 두꺼운 종이뭉치였다. 강산은 잎새를 쫓다 말고, 불만스런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넌 남의 집에서 뭐하는 짓이야?”
“내 부업한다. 책 옮기는 일.”
“그런 식으로 하는 거냐?”
잎새가 관심을 보이자, 별밤은 자기 어깨를 치운 뒤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노트북에 띄워진 워드, 그리고 외국어가 빼곡히 쓰여진 A4용지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혼자서 메모라도 했는지, 빈 공간엔 별밤의 글씨체가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이렇게 크게 복사된 걸 갖다주면 컴퓨터로 옮기는 거지. 별 건 아냐.”
“니도 참 징하다. 세로쓰기만 봐도 두드러기 생길 거 같은데.”
“야, 빨리 정해. 안 그러면 이 사람냄새나는 방에서 내 속옷들하고 뒹굴며 노는 거밖에 없잖아!”
“그럼 좀 생각을 하고 부르지 그랬냐. 니가 먼저 불렀으면서.”
“뭣이?!”
잎새가 이렇게 놀리자, 강산은 투덜대던 걸 멈추고 그 쪽으로 달려들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오늘 저 둘은 유난히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그 때였다.
“그럼 이거라도 하지 그래?”
“뭘 하는데?”
또 갑자기 끼어든 별밤을 보며, 강산이 힘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별밤은 이런 말과 함께, 갖고있던 종이로 뭔가 말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60계단이라고 들어봤냐?”
“신발. 그건 또 뭐야?!”
“넌 그 성질 좀 어떻게 해라. 아무튼 보드게임인데…”
그렇게 강산을 놀려대며, 별밤은 그 60계단이란 놀이를 설명했다. 별밤의 말에 따르면, 자기는 컴퓨터로 몇 번 해 봤는데, 이왕하는 거 실제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하는 게 더 재밌지 않을까, 란 생각에 꺼내본 이야기라 했다.
“그러니까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누가 먼저 60계단을 넘느냐를 겨루는 거예요?”
“그렇지.”
“윷놀이네. 완전.”
“어디가?”
비상이 강산한테 딴죽을 거는 가운데, 말판은 느릿하게나마 만들어져가고 있었다. 다들 할 일도 없으니, 그거라도 하자고 마음이 모인 듯했다. 대체 어디서 가지고 온 건지, 별밤은 놀이에 쓸 주사위 두 개를 말판 옆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어디서 가지고 온 큰 종이에 대충 말판이 만들어지자, 다들 놀이를 하기 위해 둘러앉았다. 이 게임의 특징은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나온 수까지 ‘계단’을 올라갈 수 있다는 거지만, 같은 눈이 나오면, 즉 주사위를 던져서 둘 다 같은 숫자가 나오면 미리 마크해둔 데로 굴러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참고로 마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 0으로 떨어지게 되어있었다. 물론 1등으로 60계단에 다다른 사람이 이기지만, 그래도 불쌍하다고(?) 두 명까진 이긴 걸로 해주겠단 말로 별밤은 대략 설명을 끝냈다.
“저 자식은 무슨 잘난 척을 하냐.”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강산은 이내 ‘내가 이래뵈도 운은 무지 좋단 말이야’라 자신감을 보였다. 아무튼 일단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한 뒤, 놀이를 시작하기로 했다.
처음엔 그럭저럭 무난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참고로 처음이 강산, 두 번째가 별밤, 세 번째가 잎새, 네 번째가 비상이었다. 이번엔 얼마 안 되는 사람끼리 해보잔 의견으로 모였기에, 현과 군청은 졸지에 심판에 가까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참고로 진 사람, 즉 3~4위는 별밤의 의견대로 근쳐 편의점에서 자기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오는 벌칙이 주어진다. 물론 1~2위의 아이스크림도 같이 사오는 게 조건이었다.
일단 맨 처음 주사위를 던졌을 때, 가장 높이 올라갔던 건 강산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 수를 기록할 때, 무려 11계단이나 앞으로 올라갔던 것이다. 잎새는 처음부터 같은 면이 나와서 제자리걸음이었으며, 별밤이 6, 비상이 7이었다. 자기 말대로 처음 느낌이 좋자, 강산은 곧바로 어깨를 으쓱댔다.
“거봐라. 내가 운이 무지 좋댔지?”
하지만 강산이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건 여기까지였다. 이 뒤, 주위사람들이 어이없다 못해 진짠지 의심할 만한 일이 연달아 일어났던 것이다. 이 뒤 강산은 20계단까지 올라갔지만(그리곤 승자의 여유라며 유유자적하게 마킹했다) 그 뒤가 문제였다.
주위에서도 눈을 동그랗게 뜰 만큼, 유독 강산한테만 ‘같은 눈’이 연달아 나왔던 것이다.
처음엔 ‘이런 젠장’으로 끝났던 강산이지만, 주위가 20은 물론 40에 다다를 때도 똑같은 것만 자꾸 나오자 ‘신발, 이거 뭐야?!’라며 애꿎은 주사위한테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비록 같은 눈이긴 하지만, 나온 숫자 자체는 높았기에 더더욱 화가 났던 것 같았다. 이건 아무도 어쩔 수 없는 대목이었지만.
그 때, 갑자기 별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르게 좋아죽겠단 목소리였다.
“카레빵~. 카레빵~”
“뭐야, 이건 또?”
강산은 어이없단 표정으로 별밤을 노려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잎새는 이 상황 자체가 웃긴지, 이런 말과 함께 킬킬대기 시작했다.
“잘 모르겠는데 암튼 강산이 너를 위한 노래 아냐?”
“안 먹을 거야~안 먹을 거야~다 먹으면 없어지니까~”
“그러니까 그 노래 뭐냐고!!”
“널 위한 응원가다. 이 자식아.”
여기까지 노래를 부른 뒤, 이를 부드득 가는 강산을 모른 체하던 별밤은 그 자리에서 앞으로 쓰러져 미친 듯이 웃어댔다. 강산이 열받아할만한 건 맞았지만, 상황이 자기한테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단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한편, 꼴찌였던 잎새는 그 뒤 주사위 운이 좋아서 1등으로 올라섰다. 그게 그렇게 기뻤는지, 잎새는 위로 올라가자마자 곧바로 강산을 놀려댔다.
“야, 니 손은 개손이냐?”
“시꺼!!”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산은 자기 차례가 되자 주사위를 던졌다. 이번엔 그나마 같은 면이 아니었지만, 1+2라는 참으로 낮은 눈이었다. 별밤은 ‘이 놈은 하늘도 버렸나 보다’며 바닥을 치며 끅끅대고 있었다. 물론 잎새는 자지러지기 직전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잎새는 30쯤까지 갔다가 마킹을 제때 안 해서 19계단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물론 비상은 원래 마킹이 꼼꼼한 성격이므로, 27이라는 안정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세 번이나 같은 자리에 있었던 강산은 이제 이를 부드득 갈기 시작했다. 때마침 다음 차례에서 잎새가 또 마킹을 안 했기에 49에서 39로 떨어지자, 강산은 그걸 마치 자기 일인마냥 기뻐했다. 아마 멀리서 보면 자기가 잘된 줄 알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산한테 하늘이 웃어주는 일은 없었다.
“이게 뭐야. 엉?!”
남들이 6계단 넘게 올라갈 때 자기 혼자 3~4걸음을 하는 걸 보고, 강산은 드디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운이 연달아 나쁜 건 오히려 드물 지경이었다. 잎새는 ‘넌 참 운이 좋은 거 같다. 크하하’라 웃으면서 50에 다다랐다. 그 뒤를 별밤이 바짝 좇고 있었으며(48), 비상은 40에 머물러있었다. 강산은 마킹 운까지 더해서 30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남들은 저만큼 갔는데도 자기 혼자 여기란 게 무척 불만인 듯했다.
“카레빵~카레빵~”
“좀 안 닥칠래?!”
이젠 마치 강산이 꼴찌라도 되길 바라는 것처럼 별밤이 노래를 이어가자, 강산은 핏줄을 바짝 세우며 짜증을 냈다. 하지만 진정되긴커녕, 잎새마저 ‘다 먹으면 없어지니까~’라며 별밤의 노래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잎새는 그걸 다 외운 게 그렇게 기쁜지, 이런 말과 함께 무척 기뻐했다.
“이거 입에 착착 붙는데?”
“니들 다 죽었어. 젠장. 감히 누굴 놀려?”
물론 강산이 주먹을 쥔다 한들, 불리한 상황이 뒤집히는 건 아니었다. 강산은 이제 핏줄까지 세운 채로 주사위를 던졌지만(‘쟨 왜 이런 놀이에서 저만큼 진지한 거냐?’라 낄낄대는 잎새는 둘째치고), 아무리 봐도 역전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결국 모두 짐작한 대로, 잎새가 60계단을 먼저 올라섰다(61로).
“아싸! 내가 인생의 승리자다!!”
이런 소리와 함께 두 손을 번쩍 든 채 신나게 헛소리를 하는 잎새는 둘째치고, 둘째인 별밤은(51) ‘나 여기서 2등 못 하면 누구한테 맞을 거 같은데’라면서 강산을 피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무슨 헛소리야?’라 외치는 강산이었지만, 자기 차례가 되어 겨우 다다른 숫자는 고작 42였다.
“심오한 숫자에 다다랐는데 좀 기뻐하지 그래.”
“뭐라고, 이 머리좋은 개자식아?!”
비상이 옆에서 끼어들자, 강산은 이 말과 함께 멱살을 잡으려들었다. 참고로 비상은 53이었으며, 다음에 던지는 주사위에 따라 셋의 운명이(여러 모로) 갈리는 상황이었다.
“하느님 제발!!”
강산은 이제 이렇게까지 외치며, 자기가 질 운명이든 아니든 주사위를 힘차게 굴렸다. 그렇게 해서 숫자가 나오자, 다들 미친듯이 웃거나 할 말을 잃었다.
“1하고 2?”
“이런 젠장!!!”
잎새가 그렇게 중얼대자, 강산은 드디어 폭발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같은 눈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운은 이만큼도 따라주지 않았다. ‘젠장. 내가 여기서 그만둘 줄 알아?!’라 자리를 박차려던 강산이었지만, 아직 둘의 순서가 남아있었다.
“아무튼 3등만 안 해라…”
별밤은 그 말과 함께, 조심스레 주사위를 굴렸다. ‘이제와서 그딴 소리냐?’라는 강산은 둘째치고, 다들 주사위의 눈에 온 신경을 모았다. 데굴데굴 굴러가던 주사위는 이윽고 둘 다 여기가 자기 자리란 듯 딱 멈춰섰다. 나타난 숫자는 5+4. 즉 60계단에 딱 맞춰서 골인하게 된 것이다.
“젠장!! 이 세상에 신이 어딨어!!”
“일단 저도 던지죠 뭐.”
강산이 활화산이라도 된 듯 폭발하는 건 둘째치고, 비상은 얼른 주사위를 쥔 뒤 굴렸다. 사실 비상은 이 때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벌칙을 당하고 올 때 저 형을 어떻게 달래나, 란 것만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숫자는 4와 3. 역시 절묘하게 60계단에 들어오는 숫자였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뭐 이딴 게 다 있어! 신발!!”
이 상황을 보고 혼돈과 파괴에 깊이 빠진 강산이 그렇게 외치거나 말거나, 그 밖의 관계자들끼리 얘기한 결과 둘은 공동 2등이 되었다. 즉, 강산 혼자 밖에 나가서 아이스크림을 죄다 사와야한다는 무시무시한 상황이 된 것이다. 여전히 이성을 잃은 강산한테 비상이 이 사실을 전하자, 강산은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이런 신발…이런 신발…’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너무나 짠 것같은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놀랄 것도 아니었다.
“자. 이제 됐냐?!”
잠시 뒤, 밖으로 나갔던 강산은 이 말과 함께 아이스크림이 든 봉투를 바닥에 내던졌다. 봉투를 자세히 보니, 아이스크림 모두가 하 모 브랜드였다. 즉, 이 사람은 일부러 비싼 걸 사들고 온 것이다.
“차마 싼 건 못 사겠디?”
“신발. 이 게임 승리자는 나야. 니들 이만큼 돈 있어? 내가 쏜 거야. 자식들아!!”
잎새가 놀려대자, 강산은 이렇게 큰소리치며 잘난 체했다. 물론 그렇다고 강산이 졌단 게 뒤집히는 건 아니었다. 그 증거로, 강산은 여전히 억울하단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오…”
이렇게 해피엔딩이 된 뒤에도, 군청 및 현은 그걸 옆에서 끼어들지도 않은 채 얌전히 구경하고 있었다. 군청은 자긴 도무지 끼어들 수 없겠다 포기한 표정이었으며, 현은 그냥 이 상황이 신기하단 표정이었다.
“너희들도 할래?”
“전 이렇게 격한 건 좀…”
“그냥 친구들이랑 할래.”
비상이 묻자, 둘은 각자 그렇게 대답했다. 현은 그 대답 뒤, 강산이 사온 아이스크림(이 사람은 놀이를 안 한 사람한테도 아이스크림을 쏜 것이다)을 손에 들었다. 너희들도 참 좋은 생각을 했구나. 비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별밤은 이제 가라앉았다 여겼는지, 다시 자기 작업으로 돌아가있었다. ‘솔직히 다 저 놈 때문 아냐. 이런 젠장’이란 강산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근데 신기하다.”
“뭐가?”
갑작스런 현의 말에, 비상은 그렇게 물었다. 현은 자기가 손에 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말을 이었다.
“나랑 친구들하고 노는 거랑 여기랑 비슷한 거 같아서.”
“뭐, 어른들이라고 점잖은 놀이를 할 리가 있니.”
“그럼 어른은 뭐지?”
누가 봐도 어른임이 틀림없는 모습으로, 현은 그렇게 물어왔다. 거기에 뭐라 할 말이 없어, 비상은 자기도 모르게 눈길을 돌렸다. 사실 비상도 그걸 잘 알 수 없어서였다. 지금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하는 현만큼이나.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때였다.
“내가 너무 늦게 왔나?”
“형, 게임 하나 해. 빨리.”
“쟨 어떻게든 안 이기면 몸이 근질거린대냐?”
뒤늦게 의영이 현관문을 열자, 강산은 곧바로 의영을 방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잎새가 킬킬대거나 말거나, 저 눈빛만 보면, 강산은 진짜 한 번 이겨야지 이 자리를 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여기가 강산의 집이긴 했지만.
“이 자식아. 똑바로 안 해?!”
그렇게 강산한텐 처절한 60계단이 다시 시작되자, 처음엔 어쩔 줄 몰라하던 의영도 금방 익숙해졌는지 이렇게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강산도 그걸 되받아서 외치는 걸 보면, 둘 다 이기는 데 집착이 큰 듯했다. 이미 진 바 있는 강산은 둘째치고, 손목에 핏줄까지 세우며 주사위를 돌리는 의영은 우스울 정도였다. 물론 아직(의영이 사온) 술병은 따지도 않은 채였다.
“둘 다 이런 게임은 진짜 좋아한다.”
잎새는 멀찍이 앉은 채, 그런 둘을 보며 킬킬대고 있었다. 이미 둘은 진 사람이 술과 안주를 모두 쏘는 걸로 내기까지 건 듯했다.얼마나 놀이에 깊이 빠졌는지, 고작 두 명밖에 없는 방구석이 뜨겁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야, 너 자꾸 이렇게 게임할래?”
“형은 나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
이제 저 자리에서 욕까지 막 나오기 시작하자, 잎새가 ‘우리 당분간 저기 옆엔 가지 말자’라 속닥댔다. 물론 다들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비상은, 이렇게 보면 의영의 ‘미친 개’란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란 생각을 했다. 이 별 것도 아닌 주사위놀이에서 어떻게든 이기려 눈빛을 번쩍이는 걸 보면 학창시절에도 ‘빡돌았을’ 땐 어떻게 했을지 눈에 훤했다.
저 형은 대체 어떤 길을 걸어온 걸까. 비상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신발. 내가 이러자고 니들 불렀냐?!”
“지가 좋아서 부른 걸 갖고 왜 남 탓…”
“그래. 내가 너한테 ‘니’란 말을 들어야겠냐?”
“어, 형. 그건 미안. 내가 좀 정신이 없어서…”
어이없단 듯 그렇게 외친 강산이었지만, 의영이 노려본 순간 얼른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중간에 끼어든 잎새는 마치 코미디라도 보는 것처럼 낄낄대고 있었다. 아무튼 강산을 빼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정말로 ‘강산만’ 뺀다면.
그걸 멀리서 보던 비상은, 문득 의영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지금까지 봐왔던 것들 중에선’ 드문 일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저 형이 사람이 많은 데서 이렇게 편한(그렇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인 건 그다지 없었던 것 같아서였다. 어쩌면 거기엔 항상 승지가 있었기 때문일까. 비상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껏 비상이 봐왔던 의영은, 사회생활 탓에 어쩔 수 없이 이것저것 참고 ‘멀쩡한’, 즉 어른스러운 척해야 했던 의영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자기를 억눌렀을지도 모른다’는 대목에서 묘하게 마음이 짚이는 걸 느끼며, 비상은 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시간 속에 자기 몸을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