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에

미아는 아직도, 그 날 있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날’까지만 해도, 미아는 이제 5학년 가을에 접어드는 그냥 보통 여자애였을 뿐이었다.
만약 일년 뒤, 아니 몇달 뒤에 자기가 이런 모습으로 낯선 데에 있단 걸 들으면 오래 전 자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아는 지금도 그걸 상상하는 게 무서웠다.

그 날 늦은 낮에, 미아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만날 그랬던 것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을 오른손으로 정리한 채 집에 다다른 미아는, 어쩐지 뭔가 이상하단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이상하단 생각이 든 건, 대문에 들어선 뒤, 현관에 신발이 두켤레 놓여있는 걸 봤을 때였다.
이런 시간에 집에 있는 건 엄마밖에 없는데, 왜 신발이 한켤레 더 있는 걸까?
게다가 자세히 보면, 엄마 신발 옆에 놓인 건 틀림없이 아빠 신발이었다. 즉, 원래 이 시간이면 일하러 가계셔야 할 아빠가 집에 있다는 말이었다.
…만약 미아 생각이 맞다면, 대체 왜일까?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미아는 어쩐지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

그럴 때 미아는, 그저 자기 방에서 조용히 잠드는 걸 고르곤 했다.
아무리 졸립지 않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잠은 모든 걸 해결해 줬다. 조금만 눈을 붙이면 금세 시간이 지나가는 건, 미아한테 타임머신, 아니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미아는, 이럴 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다음 가만히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도록, 오직 어둠만을 느낄 수 있도록 몸을 꽁꽁 웅크렸다.
지금 이 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속으로 빌고 또 빌며.
…가슴이 조여오는 것만 같은 두려움을 모른 척하면서.

정신을 차려보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어?”
집안 상황을 살피러 방 밖으로 나온 미아는,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었다.
이제 어둑해질 무렵인데, 이 큰 집에 미아만 홀로 남겨져 있었다.
몇 번이고 집을 돌아보고 또 돌아본 미아는, 자기가 잘못 본 게 아니라, 정말로 이 집엔 자기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는, 아빠는 어디 간 거지?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미아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바뀌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도 부모님이 싸운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집이 텅 빈 건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던 것이다.
난 어쩌면 좋을까?
미아는 자기도 모르게, 이미 어두워진 집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어둡다…”
무작정 집을 뛰쳐나온 다음에야, 미아는 주위가 빨갛게 물들어있단 걸 알게 됐다.
틀림없이 사방은 이렇게 어두워졌는데, 어쩐지 세상이 여기저기 붉게 물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아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대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아빠는 또 어디로 간 걸까?
미아가 달리면 달릴수록, 빨간 불빛이 점점 번져가고 있었다. 지금껏 참아왔던 눈물이, 언제부터인지 하나둘씩 눈에서 흘러내렸다.
그리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미아는 자꾸만 잠이 오는 걸 느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졸리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미아의 눈꺼풀은 점점 감겨오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요?”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듯한 목소리를 듣고, 미아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맨 처음엔 전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기가 놓인 상황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지금 미아는 쓰러져있었다. 바닥은 차가웠다. 정신을 잃기 전까지 길거리를 헤맨 것 및 바로 옆에서 들리는 차들이 지나다니는 소리로 생각해볼 때, 여긴 길바닥인 것 같았다. 즉, 지금 말을 건 사람은 지나가다 미아를 알아챈 사람이 틀림없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길거리에서 정신을 잃은 거지?
그런 생각에 먹통이 된 머릿속을 견디며, 미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그런가, 지금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다시 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 일어났다. 괜찮아요?”
미아가 어떻게든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자, 지금껏 자기를 깨워온 낯선 사람은 그런 말을 걸어왔다.
“아, 네. 괜찮아…요?”
대답을 하려고 입을 뗀 미아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정신을 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맨 먼저, 미아의 목소리는 이렇게 낮지 않았다. 감기에 걸렸다면 모를까, 자기 목소리가 이렇게 이상하리만치 낮아질 리는 없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지금 미아를 깨운 사람은 아무리 봐도 자기보다 훨씬 어른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지금, 미아는 그 언니뻘인 사람을 틀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론 미아도 또래랑 견주면 고만고만한 키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 큰 어른하고 맞먹을 만큼 키가 크진 않았다. 그런 미아한테, 지금 이 상황은 당혹스러운 건 물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혹시 난 아직까지 기절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가을밤에 걸맞은 차가운 바람 및 지나다니는 차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이건 꿈이 아니란 걸 미아한테 말해주고 있었다.
“그, 병원에 가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괘, 괜찮아요. 고, 고맙습니다.”
길바닥에 쓰러져있던 낯선 사람을 생각해 이런 말까지 건네주는 여성한테, 미아는 몇 번이고 그렇게 고개를 저었다.
그 마음씀씀이는 무척 고마웠지만, 미아는 눈앞의 언니와 얼른 헤어져야겠단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방금 대답한 목소리며 ‘기절하기 전하고 대볼 때, 자기 시야가 너무 다른’ 점 때문에, 자기가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바뀐 거 같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뭔가 꺼림칙하다는 표정으로 여성이 자리를 떠나자, 미아는 숨을 가다듬고 지금 주위 상황 및 자기 자신을 찬찬히 살폈다.
미아가 집을 뛰쳐나온 시간 및 주위가 훨씬 어두워진 걸로 볼 때, 지금은 한밤중에 가까운 듯했다. 핸드폰을 집에 놓고 온 바람에 몇 시인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미아가 기절한 뒤로 그럭저럭 시간이 흐른 건 틀림없었다.
그건 그렇고, 여긴 대체 어디일까?
날이 어두워진 지 오래라서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미아가 태어나서 처음 본 곳이란 것만은 장담할 수 있었다.

대체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런 당혹스러운 마음도 모른 채, 미아의 눈꺼풀은 천천히 다시 감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