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미아는, 얼떨결에 홀로살기라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미아는 지금껏, 혼자살게 되면 가장 중요한 건 침대나 의자같은 큼직큼직한 가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혼자 지내게 된 지금, 미아는 가장 중요한 건 그런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혼자사는 이한테 가장 중요한 건, 그저 두루마리 휴지와 같은 사소한 생활용품이었다. 의자가 없어도 바닥에 앉으면 되고, 침대가 없어도 이불을 깔면 어떻게든 되지만, 두루마리 휴지는 없으면 다른 걸로 때우기가 어려웠다.
…부모님이랑 지낼 땐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두루마리 휴지가 이렇게 중요한 물건이었구나.
마트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한묶음 손에 들면서, 미아는 속으로 몇 번이고 그렇게 생각했다.
심지어, 혼자사는 이한테 중요한 건 생활용품뿐만이 아니었다.
미아가 혼자살게 되면서 깨닫게 된 건, 무엇보다도 자기가 당장 입을 옷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원래 입던 옷이 있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무슨 특별한 사정이라도 아닌 이상, 누구나 원래 입던 옷 한벌쯤은 있을 터였다.
하지만, 미아한테는 그게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모습이 된 뒤로는’ 그런 게 없었다.
미아가 처음 혼자살게 되었을 때 가지고 있던 옷가지라곤, ‘이렇게 된’ 다음 어른들한테 일단 이거라도 입으라고 받은 게 다였다.
물론, 그렇게 받은 옷가지만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한테는 살아가기 위해 생각보다 더 많은 옷가지가 있어야 한다는 걸, 미아는 혼자살게 되면서 새로이 깨달았다.
양말도 웃옷도 속옷도, 더러워진 다음 빨 걸 생각하면 한두 벌로는 모자랐다. 지금껏 엄마가 사준 옷만 아무 생각없이 입고 자라온 미아한테, ‘자기가 옷을 골라야 한다’는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갑작스러웠다. 게다가 골라야 하는 옷이, 지금껏 입어온 적이 없는 남성복이면 더더욱 그랬다.
…혹시 주위 사람들한테는 만날 똑같은 옷만 입는다는 말을 듣는 게 아닐까.
아직 얼마 안 되는 옷을 돌려입으며, 미아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황스러운 건, 물론 이런 ‘다른 모습’이 된 미아 자신이었다. 자기 모습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큰일일 줄 미아는 미처 몰랐다.
마치 지금까지 딛고있던 땅이 송두리째 무너진 것만 같은 느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듯한 그 느낌에, 미아는 어떻게 해서든 기를 쓰고 적응해야만 했다.
그렇게 일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는데도, 거울 너머로 보는 ‘자기’ 모습은 아직 미아한테 익숙하지 않았다.
거울 너머에 있는 건 언제나 어른으로선 좀 모자란 것만 같은 ‘미아’의 모습이었다.
원래 자기 모습과 닮은 구석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그런 모습.
하지만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미아가 이 모습 그대로였다는 건, 아무리 싫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 미아의 지금 ‘다른 모습’은 순수한 미아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했다. 즉, 미아가 만약 정말 성인 남성이었다고 해도, 지금 이 ‘다른 모습’과 아주 똑같은 모습이진 않았을 거라는 말이었다.
“…저,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미아 니한테는 다른 사람 정보가 좀 섞여있다 이거지. 니를 그런 모습으로 만드려고 누가 자기 정보를 살짝 섞어뒀다 이거야.”
맨 처음 어른들한테 그 말을 들었을 때, 미아는 하늘이 노래지는 줄 알았다.
이런 모습으로 바뀐 것만으로도 앞길이 막막한데, 자기가 이젠 순수한 자기 자신조차 아니라니.
미아는 지금껏 자기 자신을 보증해주고 있던 무언가가, 깡그리 무너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미아를 일으켜세워준 건, 지금 이 ‘다른 모습’은 미아의 원래 모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거라는 어른들의 말과, ‘다른 모습’을 찬찬히 살펴본 미아 자신의 실감이었다.
그래도 왼쪽 어깨랑 오른쪽 새끼손가락 점같은 건 다 그대로구나. 옛날에 크게 넘어져서 왼쪽 무릎에 생긴 상처도 그대로고.
만약 그런 실감조차 없었다면, 지금 미아는 온전히 제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아를 구해준 사무소에서는, 집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미아를 극진히 챙겨줬다.
가끔은 너무 끔찍이 대해주셔서 미아가 다 민망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진 미아한테 사무소 어른들은 무척 고마운 존재였다.
미아가 ‘다른 모습’이 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어른들은 미아한테 이렇게 말해줬다.
“우리가 어떻게 말을 들어보니까, 미아 너희 부모님은 니가 그런 모습이라도 되면 어떻게든 혼자 먹고 살겠지란 생각에 그렇게 했다더라. 나 참.”
“…진짜요?”
그 말을 듣고, 미아는 어떤 반응을 보이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대체 어른들은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들은 걸까? 정말로 그 말이 사실인 걸까?
“너희 부모님은 그렇게 여겼다나 보더라구.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자기 자식한테 이게 대체…”
그렇게 어른들은 미아의 부모님을 탓했지만, 미아는 어쩌면 좋을지 몰라서 우물쭈물 그 자리에 앉아있기만 했다.
정말로 어른들의 말이 사실일까.
…엄마랑 아빠는 정말로, 미아가 이런 어른 남성이라도 되면 혼자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걸까.
그리고 미아는 이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기를 구해준 바로 그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아직 중학교에도 못가본 자기가 출근이라니.
아마 이렇게 되기 전 미아한테 말해줬다면 절대로 안 믿었겠지만, 정말 미아는 그런 현실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물론 어른들도 미아의 사정은 잘 알고 있는지라 어려운 일은 거의 없었지만,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는 삶을 살아온 미아한테, 어른들이 보내는 직장생활은 생각지도 못한 세상이었다. 그저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던 미아의 삶이, 하루아침에 천지개벽이라도 한 것처럼 송두리째 바뀌고 만 것이다.
지금까지는 또래 친구들하고 편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나날을 보내게 된 거지?
낯선 사무실 안 자기 자리에 앉아있을 때면, 미아는 그런 생각이 저절로 머리를 맴도는 걸 느꼈다.
만약 이 뒤로 자기와 비슷한 처지(‘다른 모습’을 가진 건 아니지만)인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미아는 죽 사무소에서 넋이 빠진 것처럼 지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처음엔 오랜만에 만난 ‘자기 사정을 아는’ 또래 친구들이 반갑기만 했던 미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반가운 마음은 두려운 마음으로 바뀌어갔다.
아무리 ‘신기한 일’이 몸이 밴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 모습인 자기가 또래 여자애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까?
실제로 얼굴을 마주본 첫날, 미아는 그런 생각에 몸이 딱딱하게 굳는 걸 느꼈다. 또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미아한테 거리를 둔 채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그 때, 원래 모습인 미아보다도 땅딸막해 보이는 여자애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저 사람 우리랑 또래 맞는 거 같은데. 좀 나사빠져 보이잖아.”
“봄이 너 처음 보는 사람한테 뭐라는 거야?!”
바로 옆에 있던 여자애가 날카롭게 화를 냈지만, 미아는 어쩐지 그 말에 마음이 놓이는 걸 느꼈다. 이런 모습인 자기가 또래한테 처음으로 받아들여진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정말로 봄이라는 아이가 그렇게 말한 뒤로, 다른 아이들도 머뭇거리며 미아한테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이라도 친구를 만들 수 있구나.
미아는 그 때만큼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기뻤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자기를 이해해주는 친구나 어른들이 있다고 한들, 지금 미아가 원래와 ‘다른 모습’이라는 건 틀림없었다.
사무소에서 지내게 된지 얼마 안 돼서, 미아는 자기가 앞으로 써야 할 ‘다른 모습’의 이름을 어른들한테 받게 되었다.
엄연히 자기 이름이 있는 미아가 밖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니.
지금도 ‘다른 모습’이 되어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름까지 바꿔야 한다는 사실에 미아는 맨 처음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백홍준이요?”
“그래. 전에 다른 애가 쓰던 이름이니까 미아 니가 두번째겠다.”
미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묻자, 어른들은 웃으며 그런 말을 꺼냈다. 그 말로 볼 때, 이 이름은 자기 말고도 전에 쓰던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듯했다.
…이름을 그렇게 써도 되나?
가면 갈수록 수수께끼같은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지만, 지금 미아는 그 ‘다른 이름’이 없으면 바깥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였다.
이렇게 해서(전엔 누가 이 이름으로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아는 백홍준이라는, 다른 모습에 걸맞은 이름을 물려받게 되었다.
게다가 미아가 다른 무엇보다 신경써야 하는 건, 바깥에 나와있을 때 ‘사정을 모르는’ 다른 이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진짜 미아가 어떤 사람인지는 둘째치고, 지금 사회에 나와있는 미아는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20대 중반쯤 되는 성인남성’이었다.
2000년 뒤에 태어난 자기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21세기 전에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살아가야 한다니.
처음엔 가슴이 막막하기만 하던 미아였지만, 살기 위해 발버둥치다 보니 어떻게든 그러한 삶이 몸에 배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한 삶이 몸이 배면 밸수록, 미아는 마음 한켠이 자꾸만 복잡해졌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지금까지 살아온 이미아라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다른 모습’으로 사는 데 익숙해져도 되는 걸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 자기는 살아갈 수 없단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미아는 가끔 그런 생각에 혼자 끙끙 앓곤 했다.
그렇게 일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이제 간신히 미아가 ‘다른 모습’, 백홍준이란 이름으로 사는 삶에 익숙해졌을 때쯤.
미아는 세진이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