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다음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낯선 천장이었다.
애초에 덜깬 눈으로 본 천장이 낯선지 어떤지 금방 깨닫는다는 건 이상한 얘기였지만, 아무튼 여기가 낯선 곳이란 건 틀림없었다.

아직 잠이 덜 깬 미아 귓가로, 낯선 목소리들이 소근대는 게 들려왔다.
목소리가 조금 떨어진 데서 들리는 걸 보면, 아마 이 목소리들은 미아가 살짝 깨어있단 걸 깨닫지 못한 모양이었다.

“딱하기두 하지. 결국엔 제 부모가 자길 버렸다는 말이잖아.”
“아직 어린애한테 뭐하는 짓인지 원…”
“어쩌긴 어쩌겠어. 살아야지.”
“그렇다고 애만 저렇게 만들어놓고 가면 뭐가 어떻게 된대? 나 참.”

솔직히 말하자면, 미아는 지금 들리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건 아직도 미아가 졸린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의식이 좀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미아는 금방 다시 잠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졸렸다.

의식이 흐릿한 미아의 머릿속에, ‘의식을 잃기 전’ 기억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그러고 보면 미아는 달리고 있었다. 집을 떠난 엄마와 아빠를 찾기 위해. 어디에 있는지는 알 길도 없었지만.
‘앞으로는 너 혼자서 살아가라’란 편지를 읽고 있었다.
자꾸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긴 어디였더라.
“……아.”
지금 자기가 깨어있단 걸 저기 너머에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는 걸 떠올린 미아는, 얼른 입을 다물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렇다. 틀림없이 미아는 무작정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을 터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힘이 빠져서, 정신을 잃었던 것까진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럼, 지금 자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때 정신을 잃은 미아를 누가 이리로 데리고 온 걸까?

그렇게 거울 앞에 선 미아는, 눈앞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틀림없이 눈앞에 있는 건 거울이었는데, 비친 건 만날 거울에서 보던 자기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미아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거울에 비친 건 자기보다 열 살은 더 나이가 있어보이는, 살짝 허름한 체크무늬 남방을 걸친 성인 남성이었다.
“…어?”
미아가 그렇게 고개를 갸웃댔더니, 눈앞에 있는 남자도 고개를 똑같이 갸웃댔다. 그와 함께 들린 낮은 목소리는, 자기 목에서 나온 것임이 틀림없었다.
즉, 이건 거울이나 미아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 정말로 자기자신이 ‘그렇게 비치도록’ 되어있다는 말이었다.
이건 정말 꿈이 아닐까.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기 자신’처럼 느껴지는 누군가가, 미아의 손짓과 몸짓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 거울 앞에서 중얼거려 본 미아였지만, 그 조그만 목소리마저 지금 미아는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미아가 얼떨떨해하고 있을 때였다.
“어유. 일어났네?”
“우, 우앗!”
갑자기 그런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나머지, 미아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마, 맞다. 아까 아줌마랑 아저씨들이 여기서 뭐라고 얘기하고 있었지.
자기 일에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미아는 아까 여기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단 사실마저 깜박하고 있었다.
그렇게 벙쪄있기만 했던 미아는, 바로 옆에 놓인 거울에 ‘칠칠치 못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누군가가 비친 걸 깨닫고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구. 나땜에 깜짝 놀랐어?”
“아, 네. 괘, 괜찮아요.”
낯선 아주머니 앞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게 괜히 민망해져서, 미아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건 이 아주머니뿐만이 아니었지만, 일단 그건 냅두기로 했다.

“이제 정신은 차린 겨?”
안으로 들어온 아주머니는, 미아를 보며 대뜸 그렇게 물어왔다.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미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뭐 불편하거나 그런 건 없고?”
“저기, 그, 옷이…”
“아, 거 옷이 좀 허름하지? 미안하네. 여기에 지금 그런 거밖에 없어서.”
어르신의 말에, 미아는 어색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옷이 아니라 다른 게 문제가 있다는 말은 이만큼도 꺼내지 못했다.
“사정은 다 알어. 어유, 딱한 것. 길바닥에서 쓰러져있다가 이리로 왔다며?”
“아, 네. 그, 그런가 봐요.”
자기가 기절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아도 잘 몰랐지만, 아까 여기서 어른들이 했던 얘기를 보면 그런 것 같았다.
…설마, 미아가 ‘왜’ 밤중에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었는지도 이미 알고 있는 걸까?
그 생각을 하자, 미아는 자기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벽에 걸린 시계로 볼 때 ‘그 때’와 지금은 다섯 시간 정도만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어쩐지 미아는 ‘그 때’가 아주 오래 전 일이었던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에그그, 딱해라.”
아주머니는 몇 번이고 그런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아한테로 가까이 다가왔다. 미아가 영문을 모른 채 가만히 있자, 아주머니는 발꿈치를 살짝 든 채 미아한테로 팔을 내밀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아직 어린애를 이렇게 만들어서는.”
그 때가 되어서야, 미아는 아주머니가 자기 머리를 ‘발꿈치를 든 채’ 쓰다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미아가 만약 ‘원래 모습’이었다면, 아주머니가 자기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굳이 발꿈치를 들 필요는 없었다.
…지금, 자기 자신이 ‘원래와 다른’ 모습이란 건, 이제 모른 척하기 힘든 사실이 됐다.

“갑자기 낯선 데 와서 놀랐지? 아줌마는 나가있을 테니까, 거기서 푹 쉬고 그래.”
“아, 네.”
아주머니의 말에, 미아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정신을 차린 뒤부터, 처음 오는 낯선 곳에다가 낯선 이들의 목소리까지 겹친 탓에, 미아는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배고프면 거기 컵라면 있으니까 먹고. 그럼 푹 쉬어. 알았지?”
미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주머니는 알았다는 듯 몇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 이걸 보면, 아주머니는 정말로 미아를 걱정하고 있었던 듯했다.
“후유…”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가자, 미아는 그런 한숨과 함께 아까 누워있던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주머니와 같이 있을 때 괜히 긴장한 탓에 힘이 빠져서였다.
그렇게 조금 마음이 놓이자, 미아는 다시금 “자기 자신”한테로 눈길을 돌렸다. 걸치고 있던 남방을 벗은 뒤, 미아는 자기 아래쪽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 입고있는 옷은, 아까 벗은 남방만큼이나 허름한 반팔 티셔츠 및 검은색 바지였다. 맨 처음 집을 나올 때 입었던 옷은 당연히 이게 아니었지만, 워낙 ‘다른 데’에서 받은 충격이 더 컸기에, 미아는 거기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맨 처음 받은 충격은, 평소보다 팔뚝이 더 굵다는 점이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반팔이라서 특히 더 두드러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굵어보이는 팔뚝은 미아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팔뚝뿐만 아니라 손도, 그리고 다리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발도 미아가 기억하던 ‘원래 크기’보다 두 배는 더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아는 ‘어떤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
미아는 잠시 동안, 아래를 내려다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자기가 느끼고 있는 ‘그 감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감각.
이대로 가다간 그 ‘무언가’가 있다는 걸 자꾸 신경쓰게 될 거 같아서, 미아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댔다.
그러고 보니, 정신을 차린 뒤로 자기 몸에 손을 댄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 몸에 손을 대곤 했는데, 왜 이렇게 된 뒤론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미아는, 문득 자기 손에서 느껴지는 게 지금까지와 다르단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가슴에 손을 댔을 때, 어딘지 모르게 말랑말랑한 느낌이 들곤 했다. 하지만 지금, 미아의 손가락 너머로 느껴지는 건 지금까지와 아주 정반대인 ‘딱딱한’ 느낌이었다.
마치 자기 가슴팍이 뭔가 딱딱한 걸로 덮인 듯한 묘한 느낌.
다른 이들에게는 별거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느낌은 미아한테 있어 ’자기가 다른 존재가 되었다’라는 가장 큰 증거였다.

꾸르륵.
미아가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정신을 차린 뒤, 미아가 처음으로 느끼는 ‘바뀌지 않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깐 급하게 집에서 나오느라고 밥도 제대로 안 먹었네.
이제서야 미아는 자기가 일어난 다음 아무것도 안 먹었으며, 따라서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까 아줌마가 배고프면 컵라면이라도 끓여먹으라고 하셨지.
눈앞 책상 구석에 컵라면이 있는 걸 알아챈 미아는, 천천히 그리로 다가간 뒤, 포장지를 뜯고 항상 해온 것처럼 스프를 부었다.
정수기로 가서 물을 붓고 뚜껑을 덮은 뒤 제자리로 돌아오자, 미아는 이상하리만치 주위가 조용하단 걸 깨달았다. 무서우리만치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시곗바늘 소리만이, 지금 여기서 시간이 흐르고 있단 걸 미아한테 알려주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자꾸만 지금 자기 자신을 생각할 것만 같아서, 일부러 아무 생각도 안 하려 신경쓰며 3분을 버텼다.
배가 너무 고파서 미처 기다리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자꾸 ‘지금 이 상황’을 생각할 것만 같아서 빨리 손을 대서인지 어떤지, 컵라면은 조금 설익어 있었다.
면발이 좀 딱딱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너무나 배가 고팠던 탓에 미아는 그런 데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낯선 곳에서, 소파에 앉은 채 허겁지겁 먹는 설익은 컵라면.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맛이 느껴질 리 없었으나, 굶주린 미아한테 지금 맛이 어떤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