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비상은, 자기가 낯선 방에서 잠들어있었단 걸 깨달았다. 게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비상의 품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토끼인형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비상은 눈앞이 흐리단 걸 알아챘다. 자는 동안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가있었던 것이다.
사방이 환한 걸로 볼 때, 지금은 아침인 듯했다. 일단 품에서 안경집을 꺼낸 뒤 눈앞을 또렷하게 한 비상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볼 때, 지금은 아침 일곱 시쯤 되는 듯했다. 방을 둘러봐도 현이 보이지 않기에, 비상은 가만히 거실로 나가보았다.
그랬더니, 거기엔 이불 속에 돌돌 말린 채 누가 자고 있었다.
저기에 누가 있긴 한 건가.
가끔씩 움찔거리는 이불더미, 아니 현을 보면서 비상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잤는지는 비상도 알 도리가 없지만, 저걸 볼 때 지금 현이 원래 모습이란 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출근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그런 생각과 함께, 비상은 일단 필요한 물건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이 정도면 문제없이 연구소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부터 큰 짐을 들고다니는 일은 아니었지만.
“벌써 일어났어?”
현도 그걸 알아챘는지, 이불에서 머리만 쏙 빼고는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 그게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비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나도 일은 가야지. 그런데 그 인형은 네가 안겨준 거니?”
“응.”
현의 말에 따르면, 어제 달을 본 뒤 집에 돌아와서, 비상은 갑자기 무척 피곤해진 듯 곧바로 쓰러지듯 잤다고 했다. 현은 그런 비상을 ‘안아서’, 자기 방 이불 위에 옮겨놓았다. 그 다음, 자기, 즉 비상이 자는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고 했다. 아무 까닭도 없이 그냥.
“그건 또 왜니?”
“신기해서.”
물론, 그 때 현은 원래 모습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 눈으로 보면 우습기 그지없는 광경이지만, 그 때 현이 진심이었단 건 비상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잠에 빠진 비상을 가만히 지켜보던 현은, ‘어쩐지 그러고 싶어서’ 자기 인형 중 하나를 안긴 뒤, 그걸 또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했다. 그걸 보다 자기도 졸려서, 거실에 이불을 편 뒤 거기서 몸을 말고 잔 듯했다. 그렇게 해서, 비상은 아침에 그런 모습으로 잠이 깬 것이었다.
“날 깨우면 됐을 텐데.”
“내가 거실에서 자고 싶었거든.”
비상의 말에, 현은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말했다. 언제 모자를 다시 썼는지, 후드티에 달린 곰귀가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
“솔직히 나도 그런 거 하고 싶었어. 내 방 내주고 난 거실에서 자는 거.”
“불편할 텐데.”
“아냐. 재밌었어. 나는.”
그게 어디가 재밌는 걸까.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비상은 연구소로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보냈다간 제 때 못 다다르겠다 여긴 것이다.
“아무튼 고맙다.”
“일가는 거야?”
자기 뒷모습을 보며 물어오는 현한테, 비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식으로 출근할 날이 올 줄은 전혀 몰랐지만, 아무튼 지금은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녀올…아니, 갈게.”
그 말과 함께, 비상은 현의 집을 나섰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자기도 모르게 말실수를 했구나, 란 생각과 함께.
-오늘은 경기 없다. 그치만 꼭 나와라.
그렇게 연구소에서 자기 일에 빠져있던 비상은, 강산한테서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 문득 전에 영화를 ‘본’ 기억이 떠오른 비상은, 이번에도 그런 건가, 라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지금 자기가 알 도리는 없었지만.
-알았어.
그렇게 답한 뒤, 비상은 다시 일에 열중했다. 아무튼 지금은,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었으니까.
일이 끝나자, 비상은 곧장 그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오늘도 강산이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아주 여유롭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뭐야?”
“시끄러. 우린 오늘 진짜 재밌는 걸 하는 거다.”
대체 뭘 들은 건지, 강산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진지했다. 물론 진지하다고 해봤자 목소리가 좀 무거워진 것쯤이었지만, 아무튼 뭔가 재밌는 게 있는 건 틀림없어보였다.
“전처럼 영화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지리는 거야, 인마.”
강산의 말을 듣고 옆을 보니, 역시 저쪽에서 난간에 팔을 괴고 있는 의영도 평소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대체 오늘은 무슨 날이지. 아무 사정도 모르는 비상은 그 때가 오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하늘의 도움으로, 조금 색다른 ‘놀이’를 할 거다.”
드디어 붉은 밤 팀원들이 대충 모이자, 의영은 그렇게 입을 뗐다. 물론, 다른 이들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의영도 어떤 식으로 분위기를 이끌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뒤에 있던 강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강산아, 대신 말해줄래?”
“뭐 별 거 아냐. 그냥 하늘을 나는 거지. 둥둥 떠다니는 식으로.”
“어?!”
“지금처럼 옥상을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정말 하늘 위에 둥둥 떠있는 거라고. 그런 걸 하늘이 하게 해 준대. 의영이 형 말로는.”
“그게 무슨 소리…”
강산의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는 눈치였다. 물론 그건 비상도 마찬가지였다. 저 형은 천사한테 또 무슨 말을 들은 걸까.
비상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이런 건 해봐야 안다니까. 야, 나와봐라.”
그 말과 함께, 갑자기 강산이 비상 쪽으로 오더니 팔을 끌고 난간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비상은 쓴웃음이 절로 나오는 걸 느꼈다.
“이 형, 벼르고 있었구만.”
“시꺼. 나한테 니가 제일 만만하니까 그렇지.”
그 말과 함께, 강산은 비상을 난간 쪽으로 데려왔다. 물론 비상은 영문을 모른 채였다. 잠시 가만히 서 있을 때, 비상은 갑자기 자기가 ‘떨어지는’ 걸 느꼈다. 갑자기 난간 뒤에서, 강산이 뒤로 비상을 세게 친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비상의 몸은 곧장 아래쪽으로 떨어질 터였다. 하지만 비상은 ‘놀이’를 하는 사람이었다. 비상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을 ‘박차고’, 그 위로 뛰어올라갔다. 이젠 너무 익숙해서 생각할 일조차 없는 동작이었다.
그 때, 뒤쪽에서 강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껏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야, 앞으로 누워!”
물론, 비상은 바로 그러지 못했다. 도무지 자기가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강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 번 더 이렇게 외쳐댔다.
“팔을 양쪽으로 크게 벌려! 비행기처럼!!”
결국 어쩔 수 없단 생각에, 비상은 앞으로 쓰러지듯 누우며 양쪽 팔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도무지 믿기지 않는 ‘느낌’이 비상을 둘러쌌다. 자기는 지금, 정말로, 공중에 둥둥 뜬 채,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이렇게 떠있는 비상도 자기를 믿을 수 없었지만, 뒤에서 보고 있는 같은 팀원들은 더 믿을 수 없는지, 다들 입을 모아 그렇게 중얼댔다. 사실, 이미 옥상을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이들이 ‘고작’ 이런 걸로 놀라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비상은 그 까닭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겪고 있지만, 이 경험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의 극치라서였다.
그 뒤, 강산이 뒤를 이은 걸 시작으로, 붉은 밤 팀원들은 하나둘씩 하늘을 ‘날았다’. 강산은 ‘날자마자’ 비상의 왼쪽 손을 잡고는, 아주 신나게 킬킬댔다.
“어때. 죽여주지?”
비상은 어쩐지, 저 형의 자랑스런 표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믿을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세상의 온갖 불빛이, 모두 자기 아래에 뿌려져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떠있는데도’, 묘한 안정감이 비상을 둘러싸고 있었다. 오늘은 바람이 약간 세게 분단 게 몸으로 느껴지는데도.
“이렇게 보면 지구도 아직 살만하구나.”
언제 왔는지, 강산 옆에 다다른 별밤이 그렇게 말하며 킬킬대고 있었다. 물론 비상 일행이 정말 지구를 내려다보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사람이 사는 곳’은 틀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대체로 무해한 곳이니까요.”
“누가 그래?!”
“내가 아는 믿을 만한 정보통에서…”
“그 망할 정보통이 뭔지나 알려줘라. 한판 붙고 오게.”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강산은 비상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아무튼 참 이 형답다니까. 비상은 그런 강산이 항상 우스웠다. 물론 전혀 싫어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형은 존재 자체가 소시민이라니까.”
“뭐라고, 이 자식아?!”
하지만 이 말엔 견딜 수 없었는지, 강산은 짜증을 내며 비상을 잡은 손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 와있던 건지, 옆에 있던 별밤이 그걸 보며 공중에서 눈물까지 흘리면서 킬킬대고 있었다. 그것도 배를 잡은 채.
“존재 자체가 19금인 사람은 아는데, 존재 자체가 소시민인 사람은 또 처음 듣네.”
“그건 또 누구야?!”
“비밀이다, 인마.”
“아무튼 저 놈은 날 반쯤 죽이려고 작정한 거 같아. 에라이…”
별밤이 고개를 돌리자, 강산은 그 말과 함께 열받는다는 듯 씩씩댔다. 하지만 비상은 더 이상 저 형한테 신경써줄 여유가 없었다. 바로 오른쪽에, 언제 왔는지 현이 나타나서는 자기 손을 꽉 잡았던 것이다.
현은 여전히 곰귀 후드티를 눌러쓴 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하늘에 둥둥 떠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 현은 이 상황을 상당히 즐기는 것 같았다. 비상의 짐작이 맞다면 말이지만.
“이것도 처음 겪는 게 아니니?”
“응.”
그렇게 말한 뒤, 현은 잠시동안 눈을 감은 채 하늘을 느끼고 있었다(그런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아, 맞다’란 말과 함께 이런 말을 꺼내놓았다.
“아까 승지랑 얘기했는데.”
“그건 또 왜?”
“나중에 말할래.”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놓고선 빠지는 게 좀 비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비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눈앞에 펼쳐진 ‘밤’을 가만히 쳐다봤다. 마치 지금, 비상은 깊은 밤을 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꿈을 꾸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 너머에 궁전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비상이 모르는 세상은 펼쳐져있을 것만 같았다. 마치 어릴 적으로 돌아간 듯한 두근대는 마음이, 비상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비상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자기가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나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성격까지 들여다보이는 것만 같았다. 일단 강산은 자기 바로 옆에서 여전히 별밤과 말싸움 중(‘그래 이 잘난 놈아. 난 아직 대학도 안 나온 놈이다’이란 말이 방금 나온 참이었다)이었으며, 의영은 뭔가 생각이라도 하는 듯, 손을 크게 위로 편 채 가속도를 내서 하늘을 나아가고 있었다. 평소엔 점잖은 의영의 과감한 모습을 보며, 비상은 첫날 이 형한테 받은 인상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한편, 현은 아예 지금이 기분좋은지, 눈을 감은 채 몸을 하늘에 맡기고 있었다. 물론 비상의 손을 잡은 채였지만, 그 표정을 보면 마치 세상에 현 한 명만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현한테는 하늘이야말로 마음 속 고향이 아닐까. 문득 비상은 그런 생각을 했다.
다시 주위를 보면, 어디서 많이 본 몸집이 하늘에서 스크류바를 시전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지? 라 생각하다, 비상은 전에 본 스페어 사건을 떠올렸다. 문득 강산이 전에 저 친구를 두고 한 말이 떠오르지만, 아무튼 비상은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리기로 했다.
이 밖에도, 주위를 둘러보면 여러 팀원들이 있었다. 마치 무중력 체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팔을 벌린 채 그저 가만히 있는 군청이나, 서로를 떨어뜨리려고 난리인 잎새 및 파랑. 전에 자기한테 시비를 건 바 있는 세림(연소자로 보이는 무리와 같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의지 및 승지가 서로 손을 잡은 채 뭐라 말하고 있는 게 비상의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보면, 참 평화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저쪽 아래에선 아예 공중에서 뒹굴고 있는 위험한 연소자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평온’이란 말이 어울리는 풍경도 없으리라 비상은 생각했다.
그 때, 갑자기 옆에서 아무 말도 없던 강산이 이런 말을 꺼냈다. 아주 신난 표정으로.
“솔직히 우리가 다른 사람 눈으로 볼 때 재밌을진 모르겠는데, 이 경험은 재밌지 않냐?”
“전에 말했잖아. 형은 웃길 거라고.”
“내가 동물원 판다냐?!”
“솔직히 몸집은 얼추 비슷…”
거기까지 말한 뒤, 비상은 얼른 현 쪽으로 몸을 휙 돌렸다. 물론 강산의 손은 뗀 채였다. 저 형이 자길 한 대 세게 치려는 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저 형이 자길 때리는 건 자기 마음이겠지만, 비상도 그걸 얌전히 맞아줄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누가 나가는 거지?”
“‘또 너처럼 질까봐 무섭냐?”
“저 형은 뒤끝도 심해요. 나 참.”
“이 자식이 진짜…”
강산이 화내거나 말거나, 아까부터 죽 곁에 있던 별밤이 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라도 좋으면 대신 대답해주겠단 표정이었다.
“내일은 의영이 형이다. 비상아.”
“형은 돌아오는 게 빠르네요.”
“주장은 원래 그렇대.”
그 말을 듣던 강산이, 갑자기 별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급하게 물을 게 있단 태도였다.
“그러고 보니 모레는 도진이가 나간다 하지 않았던가?”
“웃기는 거 하나는 예약한 거나 마찬가지지.”
그렇게 킬킬대는 둘을 보며, 비상은 전에 은솔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때 들은 ‘붉은 밤은 이상한 팀’이란 말도, 이렇게 보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거기서 자길 빼놓을 수는 없지만.
비상은 다시 고개를 들어, 평소보다 훨씬 크게 보이는 달과, 아래를 둘러싼 수많은 불빛을 번갈아 쳐다봤다. 자기가 지금 여기에 있단 것 자체가, 마치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전에 강산이 한, ‘니놈 머리카락은 왜 은빛섞인 파란색처럼 보이냐? 검은머리 주제에’란 말이 갑자기 비상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체 자기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비상도 알 수 없었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밌는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바람, 현을 잡고 있는 이 손, 그리고 공중에 떠있다는 ‘느낌’은 틀림없이 지금이 현실이라는 가장 또렷한 증거였다. 다시 한 번 하늘이 왜 이 놀이를 하려 하는지 생각하면서, 비상은 가만히 눈을 감고 ‘하늘’에 모든 걸 맡겼다. 무척 자기답지 않은 행동이긴 했지만.
그 때였다.
“으, 으, 으아악!!”
“잠깐. 저기 아래 뭐야?!”
너무나 갑작스런 소리가 ‘저만치 아래’에서 들려오자, 비상과 강산, 별밤은 서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대체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될 수 있는 대로 가속을 붙여서, 비상 일행은 소리가 들린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이젠 바닥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인데도, 신기하리만치 무섭진 않았다. 어쩌면 ‘하늘이 지켜줄 것이다’란 생각이 비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소리가 난 곳에 내려앉아보니.
“이 자식들이 미쳤나…”
강산의 말대로, 어떤 건물에 돌진하다 머리를 부딪친 연소자 몇 명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다행히도 주위에서 이상하게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죽고도 남을 만큼 세게 부딪친 듯했다. 누군가는 ‘형, 머리가 울려요. 머리가’라며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술도 안 먹고 이런 거냐. 요즘 애들은 담도 세요. 아무튼.”
별밤이 킬킬대던 중, 뒤에서 급히 온 의영이 연소자들한테 상황을 묻고 있었다. 비상은 그런 광경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론 묘하게 정겹기도 했다.
그래, 이래야 붉은 밤이지.
평온한 마무리만큼, 이 붉은 밤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