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미아는 친구들이 보는 가운데 화장실에서 뚫어뻥으로 변기를 펌프질하고 있었다.
사정은 이랬다.
아이들이 미아네 집에서 배부르게 먹은 것까진 좋았지만, 아이들, 특히 봄이가 너무 많이 먹은 나머지 큰걸 거하게 하고 만 것이다. 덕택에 휴지를 너무 많이 변기에 집어넣은 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요즘 휴지가 아무리 물에 잘 녹는다 한들, 한꺼번에 주먹만한 걸 구겨넣으면 다 녹을 리가 없었다.
“홍준이 홍준이 힘내라 힘!”
그렇게 만든 당사자인 봄이는 아무렇지 않게 옆에서 생전 처음으로 펌프질을 하는 미아를 응원하고 있었다. 사실 여기서 가장 힘이 센 것도, 펌프질하기 알맞은 것도 미아이므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미아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이 이걸 알고 딱딱하게 굳어있을 때, ‘이거쓰면 빠르대’라며 집에 있는 뚫어뻥을 가지고온 것도 봄이였다.
물론 미아도 다른 아이들만큼이나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았다. 맨 처음 봄이한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자기가 어떻게든 이걸 해결해야겠다 마음먹은 뒤, 미아는 폰으로 변기 뚫는 법을 찾고선 서툴게나마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화장실에 있는 샴푸를 몇방을 떨어뜨린 뒤, 시간을 조금 두고 나서 뚫어뻥으로 펌프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될지 어떨지는 미아도 알 수 없었지만.
“어떡해. 다 나 때문이면…”
한편, 백설은 혼자서 구석에 주저앉은 채 울고 있었다. 봄이 직전에 화장실에 다녀온 게 백설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장 큰 까닭은 봄이의 큰일이었겠지만, 백설은 자기도 미아를 힘들게 한 책임이 있단 생각에 울먹였다. 원래 이런 모습을 그다지 안 보이던 백설이었지만, 미아가 얽히자 많이 힘들었던 듯했다. 그 옆에서 시간이 백설을 가만히 지켜보며, ‘괜찮아. 미아도 아무렇지 않은 걸 뭐’라 달래고 있었다.
“근데 홍준아. 이대로 또 물 올라오면 어떡해?”
사실, 지금 미아가 펌프질을 서두르는 덴 까닭이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대로 내버려두면 화장실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척 솔직히 말해서, 지금 미아는 무척 볼일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물이 올라오는 변기에서 그걸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아이들한텐 비밀로 하고 있었기에, 미아는 자꾸만 아래가 간지러운 걸 어떻게든 참으려고 애썼다.
게다가 그, 변기 위로 올라오는 물도 문제였다. 미아는 어릴 적, 변기가 막히는 걸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마치 변기에서 넘칠 것처럼 올라오는 물이 어쩐지 미아는 무척 무서웠다. 고작 물일 뿐인데, 변기에 물이 가득 차는 게, 그게 점점 올라오는 게 자꾸만 무서워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 변기 바로 옆에서, 미아는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막힌 까닭은 휴지 하나뿐이었기에 변기 자체가 꺼려지진 않았지만, 그 가득 찬 물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아는 도망가고 싶었다. 여기에 서있는 거 자체가, 이 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게 미아를 무척 두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걸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미아는 물이 가득찬 변기에 샴푸를 집어넣고, 물을 내려본 뒤, 그래도 변기가 안 뚫린 걸 알고 나서 펌프질을 했다. 사실 물이 또 차오를 때는 정말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지금 자기가 다른 아이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어쩐지 꺼려졌다.
다시 차오를지도 모르는 물과, 자꾸만 몸이 앞으로 숙여지고 마는 느낌.
미아는 지금, 다른 아이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열심히 막힌 변기를 펌프질하는 젊은 남자 및, 그걸 지켜보는 중학생쯤 되는 아이들.
대체 다른 이들의 눈으로 보면 이건 무슨 풍경일까, 란 생각을 하면서도 미아는 펌프질을 마친 뒤,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가다듬었다.
“…안 내려가는데?”
바로 옆에서 구경하던 봄이의 말에, 미아는 속으로 몸을 부득부들 떨었다. 그럼 난 이제 어떡해야 하지. 그, 그, 설마 이대로…
“미아야. 괜찮아?”
화장실 문 옆에서 이걸 보고있던 세진은, 그런 미아를 알아챘는지 이런 말을 걸어왔다. 만날 그렇긴 하지만, 세진은 이렇게 조금 멀찍한 데서 미아를 가만히 지켜보곤 했다. 하지만 그런 세진이라 한들, 지금 이건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미아가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를 때였다.
“어, 소리난다!”
쿠콰콰콰쾅하는 큰소리와 함께, 드디어 물이 깨끗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이걸 보자, 봄이는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듯 좋아했다.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니 그 역시 이상한 건 아니었다. 거실에 주저앉아있던 백설 및 시간도 이 소리를 듣자 ‘됐어?’란 말과 함께 화장실 쪽으로 달려왔다.
한편, 이걸 본 미아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풀린 나머지, 변기에 기댄 채 화장실 바닥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미, 미아야 괜찮아? 왜 그래, 힘들었어?”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미아는 차마 입밖에 낼 수 없었다.
드디어 자기가 화장실을 쓸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기뻤다는 걸.
대체 왜일까.
그저 볼일 하나 보고싶어서 몸이 근질거렸을 뿐인데, 마치 기쁨에 겨운 합창곡이 미아의 머릿속에서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