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모 아파트 12층에 자리잡은 도서관. 보통 가정집에 책꽂이를 두고, 거기에 책을 둬서 ‘도서관’이라 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 들어가보면 도서관이라기보다 보통 가정집+뭔가란 느낌이 더 세다.
이 도서관은 방 두 개로 되어있는데, 하나는 거실(이라기보다 쉼터), 다른 하나가 사방이 책꽂이로 되어있는(것처럼 느껴지는) 서가다. 골목친구들 및 이와 비슷한 사정을 지닌 이들만 알고 있는(들어올 수 있는) 이 서가엔, 뭐라고 하면 좋을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묘한 책이 한가득 꽂혀있다. 이 도서관을 누가 마련하고, 이러한 책들을 모아 정리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 틀림없는 건, 여기에 있는 책들 중 대다수는 시중에 없는, ‘세상에 한 권밖에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비출판서라는 것이다. 자비출판서라곤 하지만 장정은 가벼운 것부터 일반 서점에 섞여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제대로 된 것까지 폭넓다.
여기에 있는 책을 가져갈 순 없지만, 대신 다른 방, 즉 ‘거실’로 쓰이는 방에 가서 밝은 햇살과 함께 읽을 수 있다. 이 방은 침실로도 쓰이는데, 이 도서관에 오래 있던 나머지 버스 막차를 놓친 이들이 주로 쓴다(택시는 비싸니까).
참고로 서가에 있는 책들은 여러 모로 ‘공통점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대개 헝겊책이나 입체책처럼 조금 특이한 책이 많다…고 아이들은 여기고 있다. 대체 책꽂이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책장을 옆으로 당기면 새 책꽂이가 나타날 때도 있어서 어떤 책이 얼마나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밤중] 앞서 말했지만, 버스도 끊겨 집에 돌아가기 어려울 땐 도서관 거실(보통 가정집이라면 그렇게 쓰일 법한 방)에서 이불을 꺼내다 자는 이들이 많다. 도서관 자체에 사람이 붐비는 건 드물기 때문에(밤이면 더더욱) 자는 데 별 문제는 없음. 사실 화장실도 있고 부엌도 있기 때문에(냉장고엔 누가 넣는지 신선한 먹을거리도 있다) 하루쯤 지내는 덴 정말로 문제가 없다. 물론 충전용 케이블도 있음. 아이들 중 몇몇은 바로 옆방인 서가에서 별에 관한 책을 빌린 뒤, 어두워지면 거실 불을 끄고 바깥에 내려다보이는 차들 및 간판이나 아파트의 불빛을 보며 등불 아래서 책을 가만히 보는 즐거움을 누릴 때도 있다.
서가에 꽂힌 책의 예시
온갖 그림책
말 그대로 온갖 특이한 그림책. 크기는 물론, 만들어진 재료조차 폭넓다. 헝겊으로 만들어져 겨울에 만지면 따스한 그림책부터, 화장실에 가져갈 수도 있는 ‘젖어도 되는’ 투명 그림책, 조그만 등불이 달린 그림책, 입체로 만들어진 팝업북까지 이것저것 있음. 이러한 그림책을 발굴하는 것도 골목아이들의 취미 중 하나다.
생일을 맞은 이를 위한 책
딱히 표지에 뭐라 적혀있지는 않으므로 다들 알음알음 이렇게 일컫던 게 그대로 굳어짐. 말 그대로 오늘 생일인 사람만 읽을 수 있는(책 속 내용이 보이는) 책. 왜 그런 책인지는 아무도 모름. 대개 그 안엔 그 사람을 위한 뭔가가 적혀있다 일컬어진다.
서바이벌 가이드
온갖 위기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모아놓은 책. 마치 이 세상엔 위험한 것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온갖 기묘한 위기상황으로 가득 메워져있다. 하지만 이런 책을 좋아하는 봄이 및 풍이(태풍)는 거의 경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읽고 또 읽는 중.
충격! 시중에서 파는 물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서바이벌 가이드’ 에서
버드내마을 가이드
누군가 버드내마을의 각종 명소를 소개하려고 만든 책(판권장으로 볼 때 만들어진 건 2013년즈음). 겉으로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명소와 아무 상관없는 곳(누구네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이나 뭐 그런 데)이 적혀있을 때가 많다. 이 역시 봄이 및 풍이한텐 경전.
모 집 밖에 있는 오래된 화장실엔, 지금은 문이 잠겼지만 귀신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버드내마을 가이드’에서
누군가의 일기
말 그대로 누군가의 기록. 대체 누가 서가에 이런 걸 숨겨놨는지는 알 수 없다. 아이들 중 몇몇도 대체 이게 누구 건지 호기심을 드러낼 때가 있지만 아직 밝혀진 건 없음. 책(공책?)은 손글씨로 가득 메워져있다.
외국어로 된 책
다른 책보다 조그만 책. 제목도 외국어이므로 뭐라고 읽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안에도 외국어가 가득 있음. 책 자체는 일본어로 되어있으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어딘가엔 있겠지만, 적어도 아이들 사이엔 없으므로 아무도 어떤 내용인지 모름. 가끔 무척 궁금해하는 아이들이 있다.
북녘 문화에 관한 책
누구나 알고있는 북녘의 문화 및 살아가는 모습을 다룬 책. 옛날 책이라서 바랜 데도 많고 투박하지만 몇몇 취향이 특이한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주로 봄이가. 특히 봄이는 이 책을 무척 아끼는 나머지, 가끔 ‘원쑤의 심장에 총탄을’같은 소리를 하며 머리박치기를 하려들 때가 있다(왜 머리박치기인지는 모름).
북녘에선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 말한다.
‘북녘 문화에 관한 책’에서
작은 플로피디스크
서가 구석에 굴러다니던 검정색 플로피디스크. 라벨도 붙어있지 않을 뿐더러, 디스크를 넣을 수 있는 컴퓨터를 가진 아이도 하나 없기 때문에 뭐가 있는지는 모른다. 아이들은 대부분 게임이라 생각하지만, 몇몇 별난 애들은 야한 게 들어가있다고 굳게 믿는다.
한반도 먹을거리 길잡이
동네 빵집이나 작은 골목가게에서 파는 그 지역의 명물간식이나 먹을거리를 소개하는 책. 봄이는 언젠가 이 책에 나온 먹을거리를 모두 먹어보겠다고 눈을 반짝이곤 한다. 물론 직접 가서 먹는 게 가장 좋겠지만,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멀리서도 배달해주는 곳도 있는 듯.
편의점 앞
작중 아이들이 흔히 모이곤 하는 곳. 편의점에 올 일이 많은 것도 까닭 중 하나지만, 편의점 앞에 앉아서 얘기하거나 누워있을 수 있는(?!) 쉼터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모여있을 때가 많다. 저녁쯤 가면 누구 하나는 거기에 있을 정도. 물론 얼어죽을 것만 같은 겨울엔 아무도 없다.
[밤중] 가끔 집에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데 머리가 아플 땐 약을 먹으려고(안 먹어도 상관없다 적혀있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미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편의점에 갈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자리에 둘이 앉아 새벽부터 컵라면이나 빵을 먹는 모습이 보일 때가 가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