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바이올렛 걸 – 03. 하늘을 나는 소녀

다음 날, 형욱은 무척 묘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긴 했지만, 어제 세나와의 말을 생각하면 결코 집에 다다르지 못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세나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어제 일을 생각하면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지금껏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그 때 일만 생각하면, 형욱은 아직도 정신이 멍해지는 것만 같았다. 일단 세나 말에 따르면, 자기랑 다니는 이상 다른 이한테 이상한 눈길을 받을 일은 없을 터였다. 그건 형욱도 동의했다. 솔직히 저 세나란 여자애가 보통내기가 아니란 건 틀림없으니까.
게다가 세나는 얼마나 자비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던지, 평소, 즉 학교에 갈 땐 원래대로 돌려놓겠다 약속했다. 실제로 형욱의 지금 모습은 참으로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어제 일이 너무나 충격이라서인지 아직도 그 때 느낌이 남아있는 듯했지만, 일단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랑 만날 땐 ‘그런 모습’으로 돌려놓겠단 말이 아닌가. 형욱이 그런 생각에 막 빠져들 때였다.
덥석.
“뭐, 뭐야?!”
형욱이 그렇게 소리지를 새도 없이, 몸은 어느새 공중에 붕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틀림없이 형욱은 누군가한테 왼팔을 잡힌 것이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니, 바로 옆에 자기 왼팔을 잡은 세나의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이번엔 그냥 ‘잡은’ 게 아니었다.
지금 세나는, 형욱의 손을 꽉 쥐고있었던 것이다.
그 묘한 존재감과 달리,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너무나 또렷하기 이를데없었다. 자기 생각과 딴판인 그 느낌에 형욱은 깜짝 놀랐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앞, 아니, 형욱을 둘러싼 모든 곳이 빛으로 가득했다. 손톱보다도 훨씬 더 작은 알록달록한 빛들이, 이미 어두워진 밤하늘 쪽으로 반짝대고 있었다. 그건 더 말할 것도 없이, 형욱이 지금 하늘 위에 ‘떠 있다’는 걸 뜻했다. 지금 자길 잡아주고 있는 손을 생각했을 때 떨어질 일은 없으리라 믿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형욱은 발에 쥐가 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붕 떠있는 건, 태어나서 청츰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공중을 ‘날고’ 있는 것과 다름아니라서인지, 세나는 이상하리만치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를 되풀이했다. 즉, 형욱은 마치 자기 몸이 공중에서 요동치는 듯한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이러다가 정말 떨어지는 게 아닐까. 몸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만 같은 착각을 받을 때마다, 형욱은 몇 번이고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사방이 탁 트인 이 상황에서, 형욱은 가면 갈수록 겁에 질리는 걸 느꼈다. 주위에 기댈 데 하나 없단 게 이렇게 무서우리라 생각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모든 결정권은 자기가 아니라 세나한테 있었다. 발밑에 아무것도 없단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었구나. 형욱은 지금, 그걸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수영하듯 다리를 휘두르다가, 형욱은 자기가 ‘바닥’에 앉아있단 걸 느꼈다. 어느 새 자긴 공중이 아니라 발을 디딜 수 있는 데에 자리잡게 된 듯했다.
설마 자기가 자꾸 팔딱대서 그런 건가?
그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깐 망설이던 형욱이었지만,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 힘이 센 건 당연히 자기가 아니라 세나라서였다. 솔직히 형욱은 어떻게 반응하든, 세나가 뭐라 말할지가 무척 무서웠다.
대체 이 사람은 왜 자기한테 이렇게 해주는 걸까.
형욱은 앞으로 있을 일이 그저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아무리 해도 자긴 이 사람, 즉 세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같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자긴 이제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거기서 보는 세상은 어땠니?”
갑자기 세나가 걸어온 말에, 형욱은 순간 깜짝 놀랐다. 이런 질문이 던져질 거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어쨌든, 대답은 해야 했다. 잠깐 생각하다가, 형욱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그럭저럭 괜찮았던 거 같은데요.”
사실, 좀 무섭긴 했지만 360도에서 ‘밀려들어오는’ 야경은 틀림없이 장관이었다. 마치 자기가 수많은 불빛들한테 둘러싸인 것만 같았다. 솔직히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세나가 무서운 것도 틀림없이 사실이었지만.
“그래.”
세나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표정을 알아채기 어려웠지만, 일단 뭔가 만족한 것처럼 보이긴 했다.
그 별것도 아닌 모습에, 형욱은 묘하게 마음이 얼떨떨해지는 것 같았다. 아마 잘 된 일이라곤 생각했지만, 여전히 이 상황을 알 수 없어서였다.
괜찮겠지. 암, 그럴 거야.
그래서 형욱은 그저 그렇게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자기한텐 이 사람 마음을 알 힘이 전혀 없었으니까. 아무튼 화가 안 났으니 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