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

미아한테 눈뜨고 나니 자기 모습이 달라져있었단 말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상이 뒤바뀐 것만 같은 말이었다.
덕분에 미아는, 하루아침에 자기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면 어떤 느낌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미아 입장에선 전혀 바란 일이 아니었지만, 자기 생각이 어떻든, 이게 현실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미아가 맨 처음 그걸 깨달은 건, 밖에 나가려고 신발을 찾을 때였다.
…어, 왜 신발이 이렇게 크지?
맨 처음 ‘자기’ 신발을 본 미아는 잠깐 놀랐지만, 정말로 눈이 동그래진 건, 망설이면서도 그 신발에 발을 집어넣었을 때였다.
마치 아빠 신발만큼이나 덩치가 있는 그 신발이, 지금 미아한테는 딱 맞았던 것이다.
아, 지금 나는 ‘이런 모습’이구나.
눈앞에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미아는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을 실감헀다.

물론, 이런 순간이 한 번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런 모습이 되고 난 다음 날, 미아는 눈을 비비며 사무실 안을 멍하니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두리번대고 있을 때, 미아는 사무실 안쪽 바닥에 어디서 많이 본 옷이 떨어져있단 걸 알아챘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미아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옷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정신이 들었을 때 입은 옷은 처음 본 거였는데…
그 옷이 눈에 들어오고 나서야, 미아는 ‘이렇게 되기’ 전 자기가 입었던 옷이 저거란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렇게 된 뒤로는 정신을 차릴 겨를이 없어서, 자기가 지금 그 때랑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마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낸 ‘원래 입었던 옷’은, 미아가 기억하던 것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늘어났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옷가지를 손으로 주운 미아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원래대로라면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할 옷가지가, 마치 거인이 힘을 줘서 세게 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축 늘어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미아 눈으로 보기에, 자기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원래 옷’은 더 이상 입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늘어난 옷을 빤히 보던 미아는, 문득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자기가 이 사무실에서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보면, 적어도 길가에 쓰러졌을 때, 미아는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이 옷차림이었을 터였다.
…설마, ‘지금 이 모습’으로 바뀐 탓에 옷이 이렇게 말도 안 될 만큼 늘어진 건 아니겠지?
처음엔 그런 생각도 해본 미아였지만, 머리가 핑글핑글 도는 바람에 더 이상 생각할 힘이 나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집을 뛰쳐나왔을 때 미아가 입은 옷은, 보통 아이들처럼 평범한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에 긴 바지였다.
어릴 적엔 귀여운 옷도 자주 입곤 했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미아 역시 무난한 옷을 자주 골라입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띄는 옷 안 입길 잘 했다.
눈뜨고 볼 수 없는 꼴이 된 ‘원래 자기’ 옷을 손에 든 채, 미아는 혼자 얼굴을 붉혔다.
그 때 입은 옷이 이렇게 늘어난 게 ‘이런 모습’이 된 자기 탓이라는 초현실적인 사실은 물론 전혀 실감나지 않았지만, 지금 미아한텐 그거 말고 이 상황을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얼마 지나고 나서야, 미아는 어른들한테 이런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거야 미아 니가 쓰러져있었을 땐 원래 입은 옷이었지. 니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원래 옷이어도 줄어들지 않도록 힘을 썼던 거야.”
“…제가 입었던 옷이요?”
“그렇지. 옷만 내버려두고 미아 너만 바뀌면 이상하게 보일 거 아냐. 그 사람도 그런 생각을 할 마음씀씀이는 있었던 거지. 나 참.”
즉,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미아가 원래 입었던 옷은 미아의 모습이 바뀜에 따라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려고 같이 늘어났지만, 이건 물론 옷한테 무리가 가는 힘이기 때문에, 벗은 뒤엔 마치 거인이 억지로 늘리기라도 한 것처럼 못볼 꼴이 되는 거라고 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구나.
뭐라 말할 수 없는 마음으로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서, 미아는 이게 그런 마음씀씀이라도 있었던 ‘그 사람’한테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 한참 고민했다.

누가 봐도 뻔한 그 가장 큰 문제를, 지금까지 미아는 애써 못본 척했다.
말 그대로 매일매일 부닥치는 문제인데도, 미아는 될 수 있는 대로 그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 사실을 인식하면 할수록, 미아는 다리가 후들거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론 살 수 없으니까,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치 그렇게 지내는 게 당연한 것처럼, 미아는 지금 ‘자기자신’의 모습을 대하고 있었다.

아마 드라마나 영화라면 청소년한테 부적절한 묘사는 쓸 수 없었을 테지만.
드라마나 영화라면 모를까, 현실이 중학생 여자애한테 부적절한 상황이나 묘사를 생각해줄 리 없었다.

이런 모습이 되고 나서야, 미아는 세상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둘로 나뉘어있단 걸 알았다.
하나는 물론 원래부터 알고 있던 현실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지금껏 미아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데에 있었다.
그 ‘또 다른 세상’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미아한테는 미아한테 주어진 자기 몸이, 다른 이들한텐 다른 이들한테 주어진 그들의 몸이 ‘또 다른 세상’이었던 것이다.
보통 때엔 의식할 일도 없었던 그 ‘다른 세상’이, 이렇게 모습이 바뀐 뒤에야, 원래 지니고 있던 그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미아한테 알려주고 있었다.
마치,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세상을 난도질당한 것만 같은 느낌.
자기도 모르는 ‘누군가’ 때문에 바뀐 자기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아는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