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봄이야, 있잖아.”
“응?”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인지, 옆에서 같이 걷고있던 봄이는 고개를 들고 미아를 빤히 쳐다봤다.

“그,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이 그렇단 말인데.”
“뭔데?”
이런 말을 휴일 대낮에, 그것도 길거리를 거니면서 해도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미아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 만약에 내가 지금 죽는다고 하면, 나는 이미아가 아닌 거잖아.”
“진짜 이런 데서 하면 안 되는 얘기였네.”
“치…”
살짝 말만 꺼냈을 뿐인데, 바로 딴죽을 걸고 들어오는 봄이가 미아는 얄밉게 느껴졌다. 하지만 미아가 처음부터 걱정했던 대로, 그건 맞는 말이었다.
“아무튼, 나는 지금 그렇게 되면, 그…아무도 나인 줄 몰라주는 거잖아.”
“그러게.”
“그러면.”
미아는 어쩐지, 숨이 턱 막혀오는 걸 느꼈다.
자기가 앞으로 꺼내려 하는 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러면, 그, 이 세상에 남는 거는 백홍준이란 사람밖에 없잖아.”
“그러게.”
“그게, 생각해 보니까 좀 그래서…”

미아는 더 이상, 자기 생각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졌다.
방금 봄이한테 한 말이, 마치 지금 자기 처지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였다.

아마, 보통 사람들이라면 죽을 때까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실을 고민하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한테 이미아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는 지금, 미아한테 이건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문제였다.
만약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자기 자신이 사라진다고 치면.
자기 마음속에 있는 이 수많은 감정들은, 아무도 모른 채 그대로 묻히고 마는 것이다.

물론, 아직 아무 일도 없는데 그런 걸 걱정하는 건 말 그대로 기우였다.
하지만, 사람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는 걸 ‘이렇게 된’ 자기 자신으로 알게 된 미아는,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찌할 수가 없었다.
왜 난 이런 걸 걱정해야 하는 거지?
몇 번이고 되풀이한 생각이, 다시 쳇바퀴처럼 미아의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어쩌면 미아는, 이런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로 고민하는 게 억울한 건지도 몰랐다.
애초에 이런 일로 고민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미아 빼곤 아무도 없을 게 틀림없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놓인 사람 마음을, 대체 누가 알아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만약 이런 마음을 알아줄 이가 아무도 없다 할지라도, 지금 미아가 느끼고 생각하는 걸 세상에 남기지도 못한 채 사라진다면, 그것보다 더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비록,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 마음을 알아줄 이가 아무도 없다 할지라도.
이런 마음을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 때 가서 후회하기 전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엔 뭐가 있을까?
그저 파랗기만 한 하늘을 바라보며, 미아는 혼자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