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바라는 건, 사랑하는 이를 구하고 더럽혀진 자신을 죽이는 것, 단지 그것뿐.
어느 세상에, 영웅이 있었다.
그 영웅은 세상의 온갖 무서운 존재를 혼자 해치울 만큼 강하고, 누구보다 존경받는 존재였다. 튼튼한 몸과 뛰어난 마술실력, 그리고 검기는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누구하고도 바꾸지 못할 만큼, 아끼는 여성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웅은 ‘높은 이’들의 욕심으로 모든 걸 잃게 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웅은 자기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것’을 ‘연구’란 목적으로 잃게 되었다. 명예로운 죽음 대신, ‘거짓된’ 영광과 평생에 걸친 ‘감금’에 가까운 상황에 놓이고 만 것이다.
자기 자존심에 금이 간 건 물론, 자기가 가장 ‘지키고 싶어하던’ 것마저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이, 영웅에겐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죽음’을 고를 수도 없는 괴로운 상황.
이런 상황에 쐐기를 박듯, 영웅이 사랑해 마지않던 여성이 ‘어둠의 주인’에게 납치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어둠의 주인은, 영웅이 아직 우습게나마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영웅이 물리치지 못한 단 하나의 악, ‘어둠의 주인’-혹은 어둠의 지배자.
그 어떤 이도, 심지어 ‘살아있는 성자’ 성녀조차 어찌할 수 없다 알려진,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
그렇게 해서 영웅은, 지금껏 아무도 공략하지 못했던, 난공불락의 ‘끝없는 미궁’ 앞에 서게 된다.
이 미궁은 어둠의 주인이 지배하는 곳으로, 그 깊이나 구성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곳을 공략하려던 수많은 모험가들 중, 단 한 명도 제대로 살아나온 이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이를 감싸안는 성녀의 따스한 힘조차, 그 미궁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묘지’. 그것이 바로 ‘끝없는 어둠의 미궁’이었다.
아무리 영웅이라 한들, 이런 미궁을 공략해, 사랑하는 여성을 구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성기의 자신이라 한들, 이 미궁을 함부로 건드리는 건 죽 피해왔던 것이다. 그 미궁이 보통 위험한 게 아니란 건, ‘그 세상’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었다.
하지만, 영웅은 평소보다 약해진 몸과, 미궁의 ‘특수한’ 환경을 각오하면서도, 미궁 앞에 선다.
영웅에게 있어 그 미궁은, 어떻게 해서든 구해내야 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잡혀간 곳이니까.
그리고, 모든 악의 뒤편에서 움직이는 ‘어둠의 주인’이, 이 미궁 가장 깊은 곳에 있다.
물론, 여성 역시 그 곳에 있을 터였다.
어쩌면 자기를 ‘원래대로’ 죽게 만드는 비법 역시,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영웅은 ‘달라진 모습’으로 각오를 하고, 미궁 속으로 들어간다.
아무도 제대로 살아나오지 못했다는, 심지어 성녀의 축복조차 닿지 않는, 끝없는 어둠만이 있는 미궁 속으로-
정의도 평화도, 명예도 그 무엇도 아닌, 단 하나, ‘목숨을 바쳐 아끼는 상대’만을 위해.
@예전 응모작 설정 중 몇 가지를 발전시킨 것. 참고로 비슷한 발상은 예전부터 줄곧 했음.
@천사도 여신도 다 써봤기 때문에 이번엔 성녀. 참 알기도 쉬움.
@주인공에 관해
온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영웅이었으나(어떤 마물이든 처치한다는 점에서), 그 마물과 싸우다 실수로 높은 곳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영웅의 재능을 안타까워한 높은 분들은, 자기 멋대로 금지된 주술까지 써서 영웅을 되살린다. 단, ‘원래 모습이 아닌’ 불완전한 모습으로.
이를 알게 된 주인공은 당연히 화가 났지만, 이제와서 어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전성기보다 훨씬 약해진 힘과 ‘자기가 바라지 않는 모습’은, 주인공에게 굴욕감을 주기 충분했다. 결국 주인공은 자기의 마음을 알아챈 성녀의 도움으로 자기를 가둬둔(‘모시고 있던’) 곳에서 빠져나와, 어둠의 주인의 미궁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어둠의 주인이 납치한 여성을 마음 속 깊이 아끼고 있으며, 그 여성을 구한 뒤 자기도 명예롭게 죽고자 바라고 있다.
침착한 야수 비슷한 성격이며, 아직 바뀐 모습에 익숙하지 않기에 실수를 보일 때가 간혹 있다.
@미궁에 관해
어둠의 존재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곳. 이 곳에 들어서면 얼마나 실력이 뛰어나든 ‘최저(레벨 1)’로 내려가게 되는데, 바깥보다 훨씬 더 살벌한 마수들이 미궁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수를 물리쳐 ‘경험’을 쌓게 되면, 점점 더 위험한 마수들에게도 덤빌 수 있게 된다(레벨업).
@등장하는 캐릭터에 관해 간단히 설명.
- 주인공을 존경하는 평범한 남성. 주인공의 소문을 듣고 미궁 속으로 따라들어온다. 진짜로 실력이 없음. 참으로 순진무구한 인물이지만(게다가 좋은 집안 출신) 아무튼 주인공의 힘이 되고싶은 듯.
- ‘어둠의 존재’의 부하 (주인공을 감시하기 위해). 원래 마물이었으나, 어둠의 존재와 만난 뒤 상위마족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미궁의 마물 대다수는 ‘어둠의 존재’가 직접 만들어낸 것. 어둠의 존재에게 도전하는 주인공을 아주 우습게 생각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끔 도와주곤 한다. 주인공의 존재 자체가 흥미진진한 듯.
- 역시 어둠의 존재의 부하. 하지만 위와 달리, 주인공을 아주 우습게 여기고 있음. 어둠의 존재를 매우 존경하며, 그 분한테 폐를 끼치는 그 누구도 용서치 않는다. 주인공한테 걸린 ‘쇠사슬’을 일부러 잠깐 풀어서 굴욕을 맛보게 하기도 한다.
- 미궁 속 마을 입구에서 약을 파는 ‘평범한’ 여자애. 언젠가 미궁에 잘못 들어와 갇힘. 조금이나마 주인공한테 힘이 되기 위해 움직임. 마을에 관해선 잘 알지만, 어둠의 존재는 무척 겁내고 있음.
- 미궁에 사로잡힌 채,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여성 모험가. 미궁 사이사이에 있는 ‘생활구역’에서 지내고 있음. 어둠의 존재를 물리치는 건 자기라 생각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좌절.
- ‘어둠의 존재’와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성 사이에서 낳은 아이. 출생 특성상(당연히 어둠의 존재가 멋대로 여성을 덮친 것이므로) 자기 자신을 죄악처럼 느끼고 있음. 어둠의 존재의 피를 반쯤 잇고 있기에, 성장도, 철드는 것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빨랐다. 참고로 본래 딸이지만, 주인공을 괴롭게 하기 위해 모습이 바뀐 상태. 어둠의 존재에게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자기가 ‘아버지’한테 괴로운 존재란 걸 알고 있음. 미궁을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상당한 전력이 된다(단, 밖으로는 나갈 수 없다). 지금 모습의 특성 탓인지, ‘원래 주인공’과 상당히 닮은 모습이다(이 역시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데 한몫하는 듯).
@성녀 에스테리아
지금 ‘어둠의 주인’한테 대적할 수 있다 알려진 유일한 존재. 물론 혼자서 ‘어둠의 존재’를 물리칠 수는 없다. 그저 어둠의 주인이 유일하게 ‘직접 손댈 수 없는’ 존재라 하는 것이 더 맞다. 성녀는 어둠의 존재에게 ‘사랑받은’ 존재이니까.
어릴 적 가문 대대로 신에게서 신성한 힘을 물려받았으며, 이에 따라 나이와 달리 꽤 깊은 지식을 지니고 있다. 자상하긴 하지만 현실적인 성격이라서, 주인공이 어둠의 주인을 물리치리라 전혀 여기지 않는다. 단, 언젠가 어둠의 주인을 자기 손으로 막아야 한다 여기고 있으며, 그러한 까닭으로 주인공을 뒤에서 도운다.
나이와 달리, 라곤 했지만 (옛)어둠의 존재와 만난 뒤 신성한 힘을 물려받아, 사실상 불로불사가 되었다. 성녀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냉정한 모습도 보이지만, 주인공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또한, 어둠의 존재가 ‘저렇게’ 된 건 자기 책임이라 여기며, 이 때문에 자기 수호자 중 한 명을 미궁 속으로 보내 주인공을 돕게 했다. 성녀는 미궁에 들어갈 수 없지만, 그 구조에 관해서는 거의 꿰뚫고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성녀답지 않게 냉정한(현실주의자)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둠의 존재와 주인공을 같이 걱정하고 있다. 그와 함께, ‘이 세상’을 지키려는 의지도 강하다. 어둠의 존재와 맞서서 이길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어둠의 존재가 가장 경계하는 이란 건 틀림없다. 자기가 직접 답을 내기보다, 주인공한테 알아서 생각하게 만드는 성격.
- 사실 미궁은 ‘어둠의 존재’ 그 자체이며, 심상세계라 말할 수도 있음. 물리현상과 맞지 않는 기이한 일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곳.
- 어둠의 존재는, 한떄 영웅과 비슷한 자리에 있었음(아주 오래 전에). 하지만 배신당한 뒤, ‘어둠의 존재’로 바뀌어 바깥세상을 공격함. 미궁이 생긴 것도 이 때.
- 어둠의 존재와 성녀는 원래 가까운 존재였으며, 특히 어둠의 존재는 성녀를 사랑하고 있었음. 하지만 이러한 까닭으로 둘의 관계는 나락으로 치달음. 어둠의 존재는 여전히 성녀와 둘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나, 성녀는 그걸 알면서도 어둠의 존재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음.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주인공/여성의 관계와 비슷하지만 다름. 어둠의 존재가 바라는 것도.
- 어둠의 존재가 여성을 납치한 건, 주인공이 자신과 비슷한 존재라 여겼기 때문. 즉, 일종의 도전에 가까움. ‘옛날 자기’와 똑같은 주인공을, 다시 한 번 눈앞에서 만나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