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드룩스 수도원의 죄인과 죄인 (미리읽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날 차갑게 쏟아지던 비를, 세이나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숨이 막힐 만큼 차가웠던 공기. 사방을 둘러싼 깊은 어둠. 그리고 그런 ‘둘’을 비추던 눈부신 번갯불.
산 특유의 깊은 냄새가 너무나 또렷하게 느껴진 나머지,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만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거센 바람이 이끌어낸 나뭇잎들의 소리, 우렁찬 천둥소리가 귀를 몇 번이고 따갑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때 정말 정신을 빼놓았던 건 그런 자연의 소리가 아니었다. 수도원에서 살고 있는 생활환경 덕에 그런 소리엔 이미 익숙해져있었다.
자기가 지금 ‘다른 사람’이 되어있단 것.
그리고 눈앞에 ‘자기 자신’이 넋나간 표정으로 서있단 게 무엇보다 세이나의 마음을 거세게 휘저어놓고 있었다.
거세게 내리는 비와 깊은 밤이란 까닭 때문에, 주위는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어두웠다. 그렇게 사방을 어둠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세이나는 눈앞에 있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의 정체를 똑똑히 깨달을 수 있었다.
상대방도 그걸 알고 있는지, 세이나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저 사람도 자기처럼 눈앞을 보고있는 걸까. 비가 거센 탓에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어두운 밤에, 저 사람이 어딜 보는지 세이나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처음부터 없었다.
마치 그대로 시간이 멎은 것 같았다.
이렇게 거센 비 속에서 이상한 말이긴 했지만, 정말로 세이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시간이란 건 자기 마음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세이나가 시간이 흐르는 걸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더라.
이상하리만치 그 전과 뒷일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짙은 어둠이 여전히 둘을 깊게 감싸고 있었다. 그 어둠 속, 나뭇가지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가느다란 달빛이 둘을 어렴풋이 비췄다.
자기 자신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마치 못 볼 걸 본 것처럼, 마치 죽은 자와 마주친 것처럼, ‘자기 자신’은 굳은 표정으로 세이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세이나가 생각을 잘못하지 않았다면,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눈앞에 몇십 년을 지내온 자기자신이 있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터였다.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이나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비는 그칠 줄 모른 채 퍼붓고 있었다. 마치 그 때,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란 걸 똑똑히 느끼게 해주겠단 듯이.
그리고 세이나는 이제 더 의심할 생각도 없었다.
이 숨이 막힐 만큼 진한 공기, 차가운 바람, 눈앞에 있는 ‘지금껏 보지 못한’ 자기자신. 그리고, 무엇보다 똑똑히 느껴지는 ‘자기 몸’.
그 때 그 순간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자기는 절대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아주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을 잊을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그 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1. 죄지은 자들의 나날

 

“짜잔. 이거 봐라! 나 뽑기에서 울트라레어 카드 나왔다. 부럽지?”
(이하 생략)